나만의 바다

바다를 가져가고 싶어.
그런데 똑똑한 우리 오빠는 내가 바다를 퍼 가면 바다가 줄어든대.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무한하지는 않다는 거야.

바다가 없는 지구를 상상해 보았어.
바다가 없어지면 해안선끼리 서로 부딪힐까?
알록달록한 산호는 색이 바랠까?
커다란 달을 비추던 거울이 사라져 버릴까?

바다가 있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날, 아이는 이 여행이 영 마뜩잖습니다. 그냥 늘 머물던 이곳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물밖에 없는 따분하고 지루한 그곳에 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한 아이는 바다에 도착한 순간에도 집에 돌아갈 날만 생각했어요.

셋째 날, 억지로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간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웠어요. 하지만 아이는 그곳에서 바다에 관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어요. 아침마다 오빠보다 서둘러 바닷가로 달려 나갈 만큼 말이죠.

바람이 불어 수면에 잔물결이 생기고 물결이 점점 자라 파도가 되는 멋진 바다, 바닷새들과 함께 걷는 아름다운 해안선,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바다의 소리들…… 아이는 바다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마침내 아이 마음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남았습니다.

이 바다를 갖고 싶다.

바다를 어항에 담아 도시에 있는 집으로 가져가 나만의 바다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바다를 그대로 두고 오기로 합니다. 바다의 모든 것을 마음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바다를 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내 안에 남겨진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일 테니까요. 내가 어디에 있든 나만의 바다는 언제나 나와 함께일 테니까요.

바다를 향한 아이의 마음은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처음엔 두렵고 막막했던 감정이 교감을 통해 점점 빠져들게 되고 끝내는 나만 소유하고픈 감정으로 치달았다 이해와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꼭 닮아있어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추호의 의심 없이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것, 가만히 기다려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먼저 배려하는 것 아닐까요?

철 지난 바닷가, 그곳에는 사람들이 두고 온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파도와 갈매기, 소라껍데기와 함께 지난 계절을 노래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만의 바다

나만의 바다

(원제 : The Specific Ocean)
글 쿄 매클리어 | 그림 캐티 모리 | 옮김 권예리 | 바다는기다란섬
(발행 : 2017/08/31)

처음 만나는 바다를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아이가 여름 휴가 중 진정한 바다의 모습을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책입니다. 무언가를 처음 만날 때 두려웠던 마음이 함께하는 시간 동안 차츰 동화되면서 점점 빠져드는 과정을 아이 시선에서 아주 잘 그려냈어요. 바다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그린 아이의 독백은 몇 번이고 되뇌게 됩니다.

온 세상이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바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야.
밀려왔다가 물러가기를 되풀이 하면서.

바다의 시간은 늦는 법도 없고,
급히 서두르는 법도 없어.
누가 누가 빠른가 겨루지도 않지.

오빠는 몰랐던 거야.
이름이 두 개인 장소도 있다는 걸
하나는 소리 내어 말해도 되는 이름,
다른 하나는 나 혼자 속으로 부르는 이름.

누군가 물어본다면,
바다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고 알려 줄 테야.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내뱉는 숨소리에서도
바닷소리가 들린다고 말이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렇게 켜켜히 쌓인 경험들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겠죠. 여름이 끝나가는 이 계절에 지난 시간을 추억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을 그림책 “나만의 바다”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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