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니?

그림책 “혼자 오니?”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림 속 두 아이. 한 아이는 사립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하고, 또 한 아이는 담벼락 뒤에 숨어 있습니다. 집에서 말썽 피우고 줄행랑을 친 형이 걱정돼서 따라 나와 두리번 거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온종일 따라 다니는 동생을 떼어 놓으려고 담벼락 뒤에 몰래 숨은 걸까요?

처음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가슴 벅찬 성취감

형이 안 보여요.
혼자서 집에 갔나 봐요.
형하고 같이 가야 하는데 혼자서 가 버렸어요.
오늘 처음으로 경이도 혼자서 가기로 했어요.

처음으로,
형처럼 송아지 등을 살짝 만졌어요.
송아지가 풀쩍 뛰어요.
어미 소가 ‘무에’ 울면서 다가와요.
경이는 겁이 나서 뒤로 물러섰어요.

마늘밭 언덕에 찔레나무가 있어요.
찔레 순이 또 올라왔어요.
형이 있으면 똑 따 줄 텐데
껍질도 벗겨 줄 텐데
형은 혼자서 가 버렸잖아요.

처음으로,
형처럼 찔레 순을 똑 땄어요.
이파리를 당겨서 껍질을 벗겼어요.
“앗, 따가!”
가시가 손가락을 찔러요.
그래도 새콤달콤 맛있어요.

대문 앞 감나무를 지났어요.
이제 다 왔어요.
“히유-”
경이는 숨 한 번 길게 쉬었어요.

형을 따라 동네 뒷산에 올라간 동생 경이. 우악스럽게 칼싸움질 하는 형들 틈에 끼지 못한 경이는 나물 캐러 올라온 동네 아주머니들 곁에서 제 나름대로 재미 거리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형이 온데간데없습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참을 형을 찾아 돌아다녀 보지만 집에 함께 돌아갈 형은 보이지 않습니다.

늘 형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던 경이는 하는 수 없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혼자서 집으로 향합니다. 형과 함께 가던 기억을 되살리며 가는 길엔 낯익은 친구들이 늘 있던 그 자리에서 경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미젖 먹는 송아지, 여전히 조로로 흐르는 개울물, 보리밭 둘레에 핀 민들레, 마늘밭 언덕의 찔레나무, 안골할머니네 유채밭, 고추밭을 지나면 나오는 대나무숲.

형과 함께 늘 하던대로 어미젖 먹던 송아지 등을 쓰다듬기도 하고, 개울물을 훌쩍 뛰어넘기도 하고, 민들레 꽃씨를 후우 하고 불어도 보고, 가시에 찔려 가며 찔레 순을 따기도 하고 말이죠. 늘 형과 함께 만나던 익숙한 풍경들이지만 경이 혼자서 돌아오는 길의 그것들은 이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형이 쓰다듬을 때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던 송아지 녀석은 경이가 손을 대려 하자 풀쩍 뛰어올라 안그래도 두려운 아이 마음을 놀래킵니다. 형이랑 아무렇지도 않게 들여다보던 대나무숲 뱀굴을 혼자서 들여다 보려니 새빨간 뱀이 뒤쫓아와서 뒤꿈치를 물 것만 같아 뒤통수가 간질간질합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집에 가는 길이 마냥 실패와 상처 투성이인 것만은 아닙니다. 늘 형이 손잡고 건네주던 개울물은 형처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힘껏 내달려 뛰었더니 충분히 건널만 했습니다. 물론 한 발이 빠지긴 했지만 말이죠. 가시에 찔리긴 했지만 제 힘으로 딴 찔레 순은 새콤달콤 맛있기만 했구요. 유채밭 지날 때면 형이 늘 잡아주곤 하던 나비, 형처럼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놓치고 말았어요. 그래도 나비한테 ‘안녕’하고 인사하는 순간 경이는 이 모든 풍경들을 지나 얼마든지 혼자서 집에 갈 수 있는 아이로 훌쩍 자라 있습니다.

동생의 첫 경험을 응원하는 든든한 형

그림 작가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그림 속에 숨겨두었습니다. “혼자 오니?”의 그림들 속엔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생 경이를 몰래 지켜보는 형이 여기저기 숨어 있습니다. 사실 오늘 경이의 첫 경험은 제 키만큼 자란 동생이 자신만의 삶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형의 마음이 담긴 숨바꼭질이기도 합니다.

살금살금 동생 뒤를 따라가며 형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요? 경이 혼자서 개울물을 건널 수 있을까? 저러다 빠지면 어쩌지? 민들레 꽃씨 따다 보리밭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닐까? 찔레나무 가시에 찔리면 어떻게 하지? 그냥 내가 나가서 따 줄까?

홀로서기는 동생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사히 집에 당도하길 바라며 지켜보는 형의 마음 속에서도 또 다른 홀로서기가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 오늘은 숨어서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형에게도 동생 경이만큼이나 설레이는 하루였을 겁니다.


혼자 오니?
책표지 : Daum 책
혼자 오니?

김하늘 | 그림 정순희 | 사계절
(발행 : 2017/07/21)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섬진강 시인 김용택 작가와 함께 만든 그림책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로 처음 만났던 정순희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은 “혼자 오니?”입니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 동화를 꾸준히 써왔던 김하늘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읽다보면 어릴 적 추억과 마음 한 켠에 품은 고향의 모습이 아른 거리는 글에 정순희 작가 특유의 서정미가 더해져 만들어진 느낌이 참 좋은 그림책입니다.

처음으로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담은 그림책,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돌보는 형과 그런 형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동생 두 형제간의 포근한 정이 넘치는 그림책 “혼자 오니?”. 무더운 여름이 가고 다시 찾아온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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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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