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어느 날 밤늦게 현관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시란 씨에게 총을 겨눈 채 서 있었습니다. 시란 씨는 그렇게 체포되었습니다. 자신은 아무 죄도 없다고 외쳐봤지만 군인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군인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하지’라며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시란 씨가 체포된 이유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쓰지 않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집 안에 우산이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비가 올 때 왜 우산을 쓰지 않냐고 다그쳤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걸으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고 대답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군인들의 짧은 한 마디 뿐입니다.

모두와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은 적이다!

시란 씨는 체포되기 얼마 전에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풀려나도록 편지 쓰는 일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내용의 편지였어요. 시란 씨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불쌍하긴 하지만, 만나 본 적도 없는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야. 나랑은 상관없어. 게다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던 시란 씨. 지금 그는 아무 죄도 없이 단지 비올 때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지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 줄 거라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시란 씨를 찾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시란 씨가 감옥에 갇힌지 2년이 지나는 동안 시란 씨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주 먼 나라의 바닷가 오두막에서 한 청년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장관님, 시란 씨가 벌써 2년째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장관님 나라에 있는 제 친구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란 씨는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장관님 나라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또 다른 먼 나라에서 한 아주머니가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있습니다.

시란 씨, 지금 여기는 봄꽃이 많이 피었어요. 그곳은 아직 춥겠지요? 시란 씨의 건강이 걱정되네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의 친구예요. 당신에게 친구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세요.

2년 전 시란 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갇힌 채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에 함께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었지만 읽고 난 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쓰레기통에 버렸었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버렸던 그 편지가 자신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을 위해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시란 씨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절망에 빠져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겠죠.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소외된 채 고통과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의 마음이 하나 둘 모여 시란 씨에게 다시 자유를 돌려줄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자신을 위해 애써준 수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인권의 소중함을 다룬 그림책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우리의 소중한 인권을 지키기 위한 해법으로 우리 모두 연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암흑 같았던 9년의 시간을 걷어내기 위해 지난 겨울 광장에 모여 어깨를 맞대고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은 그 연대의 의미와 힘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책표지 : Daum 책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다니카와 슌타로, 국제앰네스티 | 그림 이세 히데코 | 옮김 김황 | 천개의바람
(발행 : 2017/09/05)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국제앰네스티는 국가 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세계 최대의 인권 단체입니다. 일본 문화계에서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 다니카와 슌타로는 국제앰네스티의 활동과 그 의미를 어린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이름 ‘시란’이라는 말에는 ‘모른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모르는 사람, 나와는 상관없다’는 의미이지요. ‘누군가 아무 죄도 없이 갇혀 있다 해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걸까? 내가 자유롭게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인 ‘시란’에 그런 뜻을 담은 것이 분명합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연륜 있는 작가는 개념적이기만 할 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인권이란 단어를 우리  가슴을 콕 찌를 법한 이야기 속에 녹여냈습니다. 거기에 이세 히데코의 그림까지 더해져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꼭 읽어야 할 인권 그림책 한 권이 완성되었습니다.

재미난 건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게 1991년이라는 사실입니다. 26년이 지난 현재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조사한 2017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일본은 72위입니다(참고로 우리나라는 참여정부 시절보다 30여 계단이나 떨어졌지만 그래도 일본보다는 높은 63위입니다). 요즘 우리가 바라보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 때 경제대국이라 불렸었던 것에 비해 정치와 언론의 수준은 상당히 떨어져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사람들이 읽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갈색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