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햇볕 잘 드는 마루에서 아이가 책을 읽다 팔베개를 하고 스르르 잠들었어요. 아이 곁에 고양이도 같이 잠들었고요. 세상 모든 평화가 거실에 깃든 것 같습니다. 눈 동그랗게 뜬 회색빛 장난감 쥐, 장난감이니 당연히 눈을 감을 수도 잠들 수도 없을 테지만 이때가 기회다 하고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것 같아 보여 그림책을 보다 조용히 웃음을 터트립니다.(내 웃음소리에 혹여 아이가 깰까, 이 평화가 깨질까 싶어 조용히…)

그런데 가만 보니 이 평화로운 풍경을 장난감 쥐 혼자서만 흩트리고 있는 것이 아니군요. 아이 등 뒤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손, 아마도 잠든 아이의 친구겠지요. 그러고 보면 아이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다 잠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낮잠을 자면서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 친구랑 재미나게 놀고 있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요?

노란빛이 감도는 포근하고 따사로운 그림 옆, 하얀 여백 위에 쓰여있는 한 줄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좋아해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아서 더 좋은 말 ‘좋아해’.

잠든 고양이의 아이를 향한 마음 같기도 하고 아이가 고양이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햇살은 따뜻하고 잠은 노곤노곤 쏟아지고 잠에 빠져도 아무런 상관없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이 순간이 좋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좋아하는 친구를 부르는 간절한 마음일 수도 있겠고요.

담백하게 담긴 그림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빠집니다. 좋아해라는 말을 지금 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었던 시절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시절을……

좋아해.
좋아해.
언제나.
하고 싶은 말.


좋아해
좋아해

글/그림 노석미 | 사계절
(발행 : 2017/09/25)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제목부터 시작해 매 장면마다 ‘좋아해’라는 문장 하나와 그림 한 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그림책 “좋아해”, 단순하지만 기분 좋은 말,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 좋아해에 담긴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어 더 좋은 그림책입니다. 첫 페이지부터 시작된 다양한 상황들을 이어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게 구성된 것이 특징이에요.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친구들, 그리고 아이 근처에 항상 함께하는 친구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이에게서 풍기는 에너지의 색깔을 노란색 테두리로 보여주고 있어요. 노란색이 주는 긍정의 이미지, 따뜻한 느낌이 그림책의 전체 분위기를 평온하면서도 즐겁게 이끌어줍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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