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밥상 앞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계신 할머니를 마당에서 흰둥이 메리가 잠자코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고운 색깔로 물든 가을 들판은 더없이 풍요롭기만 한데 할머니와 메리만 남아있는 시골집은 썰렁하니 적막만 감돌고 있네요.

메리가 할머니네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아주 자그마한 강아지였을 때였어요. 설날 아침 강아지 한 마리 키우자던 할아버지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가 옆동네에서 받아온 강아지 메리. 밤늦도록 엄마 찾으며 낑낑 울어대던 메리는 사람만 보면 반가워서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흔들, 할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도 반갑다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

그런 메리가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어요. 집은 안 지키고 사람만 보면 반갑다고 꼬리부터 살랑살랑 치는 메리와 새끼 강아지 세 마리. 할머니는 외롭게 사는 친구를 위해 제일 붙임성 좋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뜻 내주셨고, 빠릿빠릿 똘똘한 강아지는 슈퍼 집 할아버지에게 보내셨어요. 남은 강아지는 놀러 온 옆집 할머니 손녀에게 선뜻 내어주셨죠. 이제 할머니 집에는 메리와 할머니만 남았어요.

마지막 새끼 강아지가 떠난 밤, 메리는 밤새도록 새끼를 찾으며 낑낑낑 울었어요. 할머니 집에 처음 왔을 때 엄마를 찾으며 울었던 것처럼요.

추석 명절에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놀러 와서 떠들썩했던 할머니 집에는 다시 메리와 할머니만 남았어요.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쓸쓸하게 앉아있던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십니다. 할머니를 본 메리가 반가워 꼬리를 흔들흔들… 할머니는 메리에게 갈비를 내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니도 추석이니까 많이 무라.
이게 그 비싼 한우 갈비다.
오늘 괴기 묵고 내일 다른 거 안 묵겠다카마
안 된데이. 알겠제!

밥 들고 오는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메리, 그런 메리가 세상 가장 가까운 벗인 양 가족인 양 알뜰살뜰 챙겨주시는 할머니,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정겨운 시골집 마당입니다.


메리

메리

글/그림 안녕달 | 사계절
(발행 : 2017/10/12)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엄마랑 떨어져 마당에서 밤새도록 낑낑 거리며 잠 못 드는 새끼 강아지 메리,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메리, 이전에 키웠던 개 이름을 따서 모두 ‘메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사람에게 말하듯 강아지를 나무라기도 하고 살갑게 말을 걸기도 하는 할머니, 무심한 것 같지만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을 온기 가득하게 그려 넣은 그림책 “메리”, 사람과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시골집 풍경이 정감 있게 그려진 그림책입니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요? 할머니가 혼자 남겨질 거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셨을까요? 외롭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마음을…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 마당, 잡동사니를 포개고 쌓아 만들어준 아담하고 포근한 메리의 공간, 사람 냄새 가득한 사투리들….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풍경이 없습니다. 이웃에게도 기르는 동물들에게도 사랑으로 대하는 순박한 할머니의 마음이 그림책 가득 녹아있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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