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사람들

“우리 땅을 되찾으러 왔소.”
낯선 사람들이 말했어요.

“이 땅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묻힌 곳입니다.
이곳이 왜 당신네 땅이란 말입니까?”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물었어요.

거리를 두고 양측에 마주 선 사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모래와 자갈투성이 땅을 일구어 터전을 마련하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묻혀있는 이곳에 ‘우리 땅을 되찾으러 왔다’는 낯선 사람들의 말이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의아하게 들릴 뿐입니다.

오래전부터 이 땅을 일구며 살아왔던 사람들 손에는 곡괭이와 갈퀴가 들려있어요. 땅을 터전 삼아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임을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죠.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 손에는 짐 꾸러미가 들려있어요. 누가 보아도 이방인의 모습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땅을 되찾으러 왔다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이방인들이 몰려와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옵니다. 그들 뒤에는 총을 멘 군인들도 함께하고 있어요. 그 기세에 밀려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한 걸음 뒤로 주춤 물러났어요.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았지만 무언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들…… 팽팽하던 균형이 깨어집니다.

결국 두 집단 사람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싸움에서 낯선 사람들이 이기고 말았어요.

낯선 사람들은 빼앗은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합니다.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난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강제로 땅을 차지한 사람들은 점점 더 잘 살게 되었어요.

쫓겨난 사람들은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존중받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정의를 요구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권리를 주장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쫓겨난 사람들을 무력으로 짓밟은 낯선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빼앗은 땅에 담장을 쌓기 시작합니다. 담장은 점점 높아지고 길어지면서 땅 전체로 퍼져 나갔고 대대로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길을 모두 막아버렸어요. 높은 담장에 가로막혀 언덕이 갈라지고 올리브 과수원이 나뉘어졌어요. 염소들이 풀 뜯으러 가던 풀밭이 사라지고 우물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어요. 대대로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서로 만날 수도 없게 되었어요. 쫓겨난 사람들에게 감옥이 되어버린 높디높은 검은 담장, 그들에게 고향땅을 평화롭게 거닐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요?


빼앗긴 사람들
책표지 : Daum 책
빼앗긴 사람들

(원제 : Gli Stranieri)
글/그림 아민 그레더 | 옮김 윤지원 | 지양사
(발행 : 2018/02/05)

2018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빼앗긴 사람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영토 분쟁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입니다. 작가 아민 그레더는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한 목탄화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어요.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땅에서 올리브와 염소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앞에 닥친 시련, 이웃들의 외면 속에 고립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그림책 페이지마다 가슴을 후벼파듯 거칠고 먹먹한 목탄화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 역시 일제강점기라는 가슴 아픈 역사, 그리고 여전히 가해국 일본과 정리되지 않은 깊은 앙금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 시리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빼앗긴 사람들

그림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하늘은 멀리 아득하기만 하고 사방 어디를 바라보아도 담장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 아민 그레더는 숨통을 조여오는 검은 담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심정을 가슴 먹먹하게 보여주면서 그림책을 읽는 이 역시 검은 담장 안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절묘한 마지막 장면은 자유를 향한 그들의 절규가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것으로 생생하게 바꾸어 버립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 다르게 알고 있던 세계사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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