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깊은 밤 파도에 실려 떠내려온 하얗고 이상한 동물은 늘 이상한 짓만 일삼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언덕 위 오래된 넝쿨진 동굴에 살면서 정신없이 나뭇잎을 모으곤 했거든요. 그렇게 모은 나뭇잎을 온몸에 달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 언덕 위에서 호수로 뛰어내리곤 하는 이 낯선 동물이 무서워 숲속 동물들은 다들 도망치느라 바빴어요.

매일 같이 이 친구에 대해 수군대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말을 걸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그저 ‘엄청 커다란 하얀 유령 같은 이 짐승이 떠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죠. 낯선 이방인 역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지냈어요. 외딴 동굴에 살면서 늘 같은 행동만을 되풀이할 뿐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다들 용기가 부족했어요. 한 번도 본적 없는 낯선 존재가 서로 두렵게 느껴졌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숲속 동물들은 두 패로 나뉘게 됩니다. 슬퍼 보이는 이 친구를 도와주자는 까마귀 무리와 위험해 보인다고 경계하는 무리들로…….

이 팽팽한 긴장을 깬 것은 까마귀 무리였어요. 이들은 다시 나뭇잎을 달고 바다로 뛰어든 북극곰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고 북극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러자 여지껏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숲속에 이상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도망치기 바빴던 숲속 동물들도 경계심을 풀고 다가와 이방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거든요.

얼음이 녹고 있는 저 먼 바다 건너편에서 떠내려온 북극곰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동안 나뭇잎을 몸에 붙이고 뛰어내렸던 것일 뿐, 괴물도 유령도 아닌 평범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이제 모두 알게 되었어요.

처음 보는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자신들과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동물 친구들,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동물 친구들은 그동안 궁금해하면서도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던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나뭇잎

나뭇잎

(원제 : Leaf)
글/그림 잔드라 디크만 | 옮김 최현빈 | 찰리북
(발행 : 2018/02/09)

“나뭇잎”은 얼음을 타고 떠밀려온 북극곰에게 숲속 동물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매일같이 숲속을 돌아다니며 나뭇잎을 모으는 북극곰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붙여준 이름이에요. 서로의 오해를 풀고 집으로 돌아간 나뭇잎은 아마 평생 그 숲의 친구들과 화려한 빛깔의 나뭇잎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북극곰 ‘나뭇잎’은 다양한 모습으로 풀이할 수 있어요. 유치원이나 학교에 전학 온 친구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사상이나 이념이 될 수도 있어요. 생김새, 성별, 나이, 종교, 계층, 인종, 가치관 등등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정한 기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나뭇잎’에 빗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외면하고 회피하려고만 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용기는 참 멋진 마음입니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마음,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 두려움을 깨고 누구보다 먼저 나설 수 있는 마음이니까요.

그림책 한 권 속에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다름, 차별, 용기, 이해와 사랑까지 품고 있는 “나뭇잎”은 깊이감 있는 그림과 이야기로 묵직한 주제를 가슴 깊이 전달하는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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