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글 이호백, 그림 이억배, 재미마주

어느날 아이가 읽어 달라며 들고 온 책 한권, 뭔가 스펙타클한 것을 기대하면서 책을 펼치고는 한장 한장 넘기다 왠지 짠~해지며 ‘이거 아이들 그림책 맞아, 이 시대의 가장을 위하여~ 뭐 이런 책 아냐…’ 하고 생각했던 책, 바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입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내 이름은 자가주” 와 같은 주제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내 이름은 자가주”에서는 어느날 문득 받아든 선물이 새끼 독수리, 아기 코끼리, 멧돼지, 박쥐, 못된 용, 흉물스런 털복숭이 거인을 거쳐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 보는 동안 부모는 늙고 초라한 펠리칸으로 변하고 말죠. 아들 커플과 나란히 걸어가는 늙은 부부가 말합니다.

Isn’t Life Amazing!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나이를 먹고 세월을 겪으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힘든 수탉’이 된듯한 좌절감에 빠진 수탉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손자 손녀들, 한창 때 자신만큼이나 힘이 센 아들, 동네 암탉들 중 제일 알을 많이 낳는 딸들을 보며 다시 기운을 찾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꼬리 깃털을 활짝 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얼마 후 수탉은 환갑을 맞았어.
수탉이 태어났을 때처럼 화창한 봄날이었지.
수탉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열었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

우리 역시 아이들이 잘 자라서 이 세상에서 자기 한몫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게 딱히 뭐 있나요. 그저 씩씩하고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 족하죠.


사실 오늘 고른 “오늘의 그림 한장”은 가온빛 식구들의 반발이 좀 있었습니다. 왜 좋은 장면들 다 놔두고 하필 술판이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 수탉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암탉 장면도 좋고, 다시 힘껏 꼬리 깃털을 펼치는 장면도 좋지 않냐… 뭐 이런…

하지만 제가 끝까지 우겼습니다. 꼭 이 그림을 넣고 싶다고. 굳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테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해학이 담긴 이 장면이 맞다고 말이죠 ^^

한때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일 술을 잘 마시는 수탉’이 되어 있는 현실. 막 사회생활 시작했던 풋내기 신참 시절, 퇴근 시간이 다가올라치면 어떻게든 한잔 할 꺼리 찾느라 부장님 눈치 보며 이리 저리 어슬렁 대던 과장님, 계장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반강제로 끌려간 술자리에서 그들의 화려했던 날들의 변함없는 레파토리를 무한 청취해야만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늦은 오후 동료나 후배들에게 맛집 링크 보내며 ‘오늘은 여기서 한잔? 콜?’ 이라고 카톡을 보내는 나를, 술자리에 함께한 신참들에게 나의 전성시절의 네버엔딩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는 나를 부쩍 자주 발견하게 된다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만약에

아빠라면, 오늘 저녁 아내 어깨 안고서 한마디 해 주세요.

아이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

엄마라면, 오늘 저녁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 준비해서 술한잔 따라 주세요.

오늘 하루 힘들었지?

부모님과 함께 사신다면 오랜만에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과일 먹으면서

아버지, 어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

라고 말해 드리세요.

그리고 모두에게 공통으로 뒤에 이 말을 붙인다면 더 좋겠지만… 손발이 좀 오그라들긴 하겠네요.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기왕 맘 먹은거 꼭 하세요~ ^^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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