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는
선물이에요

몰래 숨어서 기다리는

상자 속에 들어가 귀만 빼꼼 내밀고 있는 얼룩 고양이를 보니 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길고양이가 생각납니다. 풀밭 사이로 난 좁은 산책로를 지나다 길고양이가 풀밭에서 꼬리가 보일락 말락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따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어요. 나를 따라오는 건지 서로 가는 방향이 우연히 같은 건지 궁금해 산책로 중간쯤에 놓인 벤치에 잠시 앉았죠. 그랬더니 고양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꼬리로 슬쩍슬쩍 제 다리를 스쳤다 멀찌감치 물러나 앉았다 다시 다가오기를 반복하며 애교를 피우더군요. 어렸을 때 강아지는 키워봤는데 고양이는 처음이었어요. 길고양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면 잠시 모르는 척하고 있다 저만치 떨어져 있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고양이 매력에 폭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고양이는 요물이라고 하셨는데 아! 그 요물이란 것이 이런 의미였던 걸까요,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밀었다 당겼다…

길고양이는 산책로가 끝나는 작은 다리 있는 데까지 살금살금 따라오다 그만 돌아갔어요. 혹시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길고양이의 간택인가 생각했는데 딱 거기까지만 놀다 미련 없이 가버리더군요. 며칠 동안은 녀석들 생각뿐이었어요. 밥은 잘 챙겨 먹었을지, 가을 더위에 목마르지는 않는지, 사나운 개를 만나지는 않았을지……

그림책 “고양이”를 만나는 순간 그때 그 마음이 살아났어요. 어딘가에서 선물처럼 불쑥 나타나 온통 마음을 흔들었던 지난가을 오후의 고양이가 말이죠. 그 길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 고양이 전용 간식까지 가지고 다녔지만 그 후론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고양이
지난가을 산책길에 우연히 만났던 길고양이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올봄은 비가 왜 이리도 비가 잦은지, 추적추적 연사흘이나 내리는 봄비 소리 들으며 그림책을 읽다 어디선가 이 비를 피하고 있을 그날의 고양이를 생각합니다.


고양이
책표지 : 사계절
고양이

글/그림 김혜원 | 사계절
(발행 : 2018/03/16)

조그맣고 따듯한
조몰락조몰락 만지고 싶은
맛있는 꿈을 꾸는

나는 고양이예요.

그림책 “고양이”는 고양이가 들려주는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정갈하고 아늑함이 깃든 거실 곳곳에 놓인 사물처럼 변신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고양이의 이야기를 그림책 속에서 만날 수 있어요.

소파 등받이를 움켜쥔 만두같이 동그랗고 포실포실한 고양이의 손, 온몸을 말아 방석 위에 웅크리고 잠든 고양이는 꼭 식빵 같아요. 우산꽂이에 들어간 고양이의 또르르 말린 꼬리는 영락없는 우산 손잡이 같고요. 봄을 기다리며 꽃병 옆에 앉은 고양이는 꽃병 같습니다.

페이지마다 귀엽게 변신한 고양이, 어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까요? 다양하게 변신하는 변신의 귀재 고양이는 ‘가만가만 세상을 담는 멋진 한 폭의 그림’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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