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천 풀다발

중학교 시절 버스가 하루에 몇 대 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동네에 살던 친구가 있었어요. 아침 등교길에 버스를 놓치면 학교까지 한 시간씩이나 걸어서 오는 수 밖에 없었죠. 그런 날이면 그 친구는 걷다 걷다 지겨웠는지 길에서 만난 풀꽃들을 꺾어 한아름 안고 오곤 했어요. 지천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강아지풀이며 진달래, 개망초, 엉겅퀴, 원추리, 코스모스, 갈대며 억새 같은 것들…….

손이며 옷에 베인 향긋한 풀 냄새, 꽃 냄새, 삭막한 교실에 그 친구와 함께 향긋한 계절이 따라 들어오곤 했어요. 꼬불꼬불 늘어지고 오그라들고 똑같은 모양이 아니어서 아름답고 똑같은 초록이 아니어서 아름다운 것들,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어 친근한 들풀들, 착하고 순한 풀꽃들, 흑백 사진처럼 오랜 기억 속에 그 날의 향기와 함께 기억되는 풀다발, 꽃다발, 풀꽃처럼 순수하고 어여뻤던 우리들의 웃음 다발들.

“어머나! 언제 여기 이렇게 꽃이 피었다니.”

산책로 주변에 무리 지어 피어난 꽃들을 보고 오가는 사람들이 반가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어떤 이는 꽃 가까이 폰을 대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어떤 이는 꽃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습니다. 꽃들이 시들어 사라지기 전에,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사진 속에 계절과 시간을 붙들어 둡니다.

무심한 마음은 꽃이 피고 나서야 새삼 그들을 들여다봅니다. 언제 그들이 그곳을 찾아왔는지 언제 초록빛 고개를 쏘옥 내밀었는지 수십 번 그 자리를 지나치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어요. 그 무심한 마음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가느다랗게 실린 꽃향기, 풀 향기가 슬그머니 질책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옆도 돌아보고 멈추어 서서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도 좀 가져보라고요.


연남천 풀다발
책표지 : Daum 책
연남천 풀다발

글/그림 전소영 | 달그림
(발행 : 2018/04/23)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실어 나른다.

모든 것을 거두고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가을, 풀꽃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작고 여린 풀들이 세상에 흩뿌리는 수많은 씨앗들, 그들은 지금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조용히 다음을 준비합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풀꽃들의 이야기가 우리 삶과 꼭 닮아있어 가슴 뭉클해지는 그림책 “연남천 풀다발”은 전소영 작가의 첫 작품입니다. 소박한 풀꽃 느낌을 잘 살린 톤 다운된 수채화 속에 녹아든 잔잔한 글들이 한 줄 한 줄 마음 깊이 와닿는 이 그림책은 마음 수선스러운 날, 위로가 필요한 날, 누군가 보고 싶은 날, 다가오는 날들이 설레고 기쁜 날……. 언제 보아도 좋을 그림책입니다.

지난가을 풀꽃들이 뿌린 풀씨들, 이 봄 어디에서 싹 틔워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늦은 봄날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