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철퍼덕 철벅 자동차가 웅덩이를 헤치고 달려갑니다. 노랗게 펼쳐진 들녘, 한가로이 풀밭에서 뛰노는 말들, 두둥실 떠가는 열기구들, 그 사이로 펼쳐진 알록달록 무지개……. 차창 밖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니 사람들도 반가이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들이 보내는 미소가 꼭 내게 와닿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노란색 그림 한 장이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습니다.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여름 휴가철입니다. 다들 더위를 피해 서울을 떠났는지 복작복작했던 시내가 텅 빈 듯 조용하고 매미 소리는 한결 가깝게 느껴집니다. 골목길 돌아나가 큰 길, 큰 길 빠져나가 고속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바다로 계곡으로 산으로 이어진 상상을 해보았어요. 가족과 연인과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 모두들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을까요? 여름휴가를 다들 얼마나 고대했을까요?

쭉쭉 뻗은 시원시원한 도로를 상상했지만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길이 꽉꽉 막히고 예전에 분명 와봤던 길인데 알쏭달쏭 헷갈려 헤매느라 시간을 쏟고 뜻하지 않게 쏟아지는 소낙비에 허둥지둥하게 되더라도 여행길은 즐겁기만 합니다. 있던 곳을 떠나는 순간, 마음에 마법이 일어나거든요. 맨날 보던 풀꽃도 새롭게 보이고 맨날 보던 하늘도 구름도 달라 보이는 여행의 마법! 이렇게도 저렇게도 부딪치면서 예외의 순간을 만나고 그 예상 밖 순간들을 모아 멋진 추억을 많이 만들고 빵빵하게 충전해서 돌아오세요~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책표지 : Daum 책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원제 : Conta-Quilómetros)
글/그림 마달레나 마토소 | 옮김 민찬기 | 그림책공작소
(발행 : 2018/05/27)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철학적 느낌이 물씬한 제목이 참 근사합니다. 쨍한 노란색 때문에 여행의 들뜬 마음이 그림책 속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책 속에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가 빵빵하게 찬 느낌도 들고요. 높이를 달리해서 찍은 글자 제목은 자동차가 울퉁불퉁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죠.

한 가족이 자동차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 여행을 떠나자’며 신나게 길을 나섰지만 여행길은 순탄치 않아요. 가다 보니 길이 헷갈려 다시 지도를 살펴봐야 하고 복잡한 도로에 마냥 서있어야 할 때도 있어요. 공사 중인 도로를 만나기도 하고 갑자기 퍼붓는 비 때문에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자동차 바퀴에 피시시 바람이 빠지는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시작부터 도착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 풍경들, 주인공 가족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들이 모두 추억을 만드는 요소이고 여행입니다. 그 이야기를 한 가족과 차에 붙어 여행을 가는 자그마한 달팽이가 보여주고 있어요. 속도와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 모든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에요.

같은 여행도 누구랑 갔는지 언제 갔는지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죠. 같이 떠난 여행이지만 각자 본 것 기억하는 것이 다 다를 수 있어요. 여행은 꼭 우리 삶을 닮아있습니다.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는 그런 상황을 아주 기발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가로로 자른 선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다른 장면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 각기 다른 이야기로 전개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입니다.

아래 그림책을 보면서 가로로 잘라진 페이지를 어떻게 넘기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세요. (왼쪽 고정된 그림과 오른쪽 변하는 풍경에 주목해서 살펴보세요.)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림책 첫 페이지

왼쪽 페이지는 고정되어있고 오른쪽 페이지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주인공 가족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오른쪽 아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변하는 풍경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왼쪽 자동차에 탄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주변 풍경만 변하고 있어요.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어느새 차들로 가득한 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 앞에 굉장히 다양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재미있는 구성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행과 우리 인생은 꼭 닮았어요.

※ 속도와 거리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면 중요한 건 과연 무엇일까요? 작가가 생각하는 정말 중요한 건 그림책 뒤표지에 알쏭달쏭한 글자로 적혀 있어요. 우리 삶의 여행에서 속도와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지 여러분 각자의 생각을 나눠보세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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