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흐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내 딸 숙녀

상상해서 그려 보라구?
전쟁 때 헤어진 딸내미를 그리라니!
돌잽이 때 본 게 마지막인데
아득해서 어떻게 그리갔냐.
우리 애기를 동네 사람이 업어 주던
기억이 흐릿하게 난다.
사람 목숨이 질기기도 하거든?
살아 있을 걸로 생각돼.
살아 있다면 자손들도 있갔지.

1926년생 유춘하 작가의 고향은 황해도입니다. 자식들에게 주는 선물이 될까 싶어 식구들 얼굴을 하나 하나 그리다 보니 북에 두고온 딸내미 얼굴까지 그리게 되었습니다. 돌잽이 때 본 게 마지막인데… 그렇게 헤어진 게 68년 전 일이니 이제 그 딸도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 있겠죠.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고향에 두고 온 딸의 모습은 이곳에서 낳고 기른 자식들 또래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돌상 차리던 날 아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미 할머니가 된 딸의 모습을 아비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유관식 할아버지와 딸 유연옥(출처 : 오마이뉴스)

오늘 금강산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죠. 정해진 몇 시간뿐이지만 그토록 기다렸던 만남이니 또 얼마나 많은 웃음과 울음이 터져 나올런지…

오늘 만남 중엔 유춘하 작가와 고향에 두고 온 딸 숙녀의 이야기와 똑같은 사연이 있었더군요. 아내가 딸을 임신하고 있었던 걸 모른 채 헤어졌던 유관식 할아버지(89세)와 그 딸입니다. 아버지 대신 아버지 사진을 평생 가슴에 지니고 살았다는 예순이 넘은 딸의 이야기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 붉히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어깨에 가만히 기대는 딸의 모습이 짠하기만 합니다.

내가 왜 이리 오래 산다니?
내가 살아서는 고향에 못가겠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해도 떨어지기만 하고.
이담에 너희가 찾았으면 좋갔다.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만나서 서로 왕래하며 살면 좋갔다.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21차라고 하니 그간 스무 차례나 기회가 있었건만 안타깝게도 유춘하 작가는 매번 떨어졌었나봅니다. 이번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이 시간 작가는 금강산에 머물고 있을까요? 아니면 뉴스를 보며 눈시울 적시고 계실까요…

자식들이라도 꼭 고향에 가서 형제 자매들과 왕래하며 살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램뿐만 아니라 고향에 두고 온 딸 숙녀를 만나고픈 바램도 작가 살아 생전에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책표지 : Daum 책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글/그림 유춘하, 유현미 | 낮은산
(발행 : 2018/06/30)

구십의 나이에 딸의 성화에 못이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쑥갓 꽃을 그렸어”의 유춘하 작가 기억하시죠?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는 자식들 얼굴을 그리며 고향에 두고 온 딸에 대한 그리움과 꼭 한 번 딸의 손 마주 잡아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았다. 애들한테도 나는 언제라도 즐거이 떠날 수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런데 요사이,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혹시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면 황해도 고향 땅을 한 번 밟아 보고 싶다.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나 딸 숙녀를 만난다면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이제는 남과 북이 서로 오가면서 사이좋게 살기를 바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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