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우리는 늘 함께.
해가 나고 달이 날 때까지 온종일 내내.
숨바꼭질할 때만 빼고.

한 동네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양조장 집 박순득, 자전거포 집 이순득. 둘이는 하루 온종일 붙어 다닙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서로의 집으로 달려가 서로를 불러내고, 달이 고개를 내밀고 나서야 헤어집니다. 순득이와 순득이는 그렇게 하루 온종일 꼭 붙어 다닙니다. 숨바꼭질할 때만 빼고.

그렇게 평화롭던 마을에 전쟁이 찾아듭니다. 양조장 집은 머물기로 하고, 자전거포 집은 피난길에 오릅니다. 아이들 눈에는 이 또한 숨바꼭질입니다. 양조장 집 박순득은 술래입니다. 피난가는 이순득은 피난길 여기저기에서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습니다. 전투기가 죄 없는 피난 행렬에 총알을 퍼부어대도, 다리가 끊겨 강물에 몸을 내맡겨야 하는 순간에도, 살길 막막한 난민촌에서도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꼭꼭 숨느라 여념이 없는 이순득의 얼굴엔 늘 웃음기 가득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전세가 바뀌자 피난 갔던 자전거포 집 이순득네도 북진하는 군인들 따라 살던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이순득이 술래를 할 차례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득이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꼭꼭 숨어라 달님 아래 지난다.
꼭꼭 숨어라 해님 아래 지난다.
동구 밖에 다 왔다.

그리운 친구 순득이를 만날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순득이의 마음은 잔뜩 들떠 있습니다. 친구에게 꼭꼭 숨으라면서, 동구 밖에 다 왔다면서 어린 순득의 발걸음이 점점 급해집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순득이는 친구네 양조장으로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하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양조장 집은 보기 흉하게 무너져 내렸고 순득이를 반기는 건 친구 순득이가 아니라 강아지 뿐입니다. 동네를 아무리 뒤져봐도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 어디 숨었니?
못 찾겠다, 꾀꼬리.

지난 봄 판문점 야트막한 경계석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마주 선 순간을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잔뜩 긴장한 채 지켜봤더랬습니다. 그러고나서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제 가슴 졸이는 건 우리 남과 북뿐입니다. 미국은 지네들 잇속에 눈이 멀어 요리조리 눈알을 돌리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자기네 숟가락 얹어 보려고 분주합니다. 그들은 꼭꼭 숨은 순득이더러 못찾겠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며 ‘못 찾겠다 꾀꼬리’를 울부짖는 술래 순득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탓입니다. 남과 북 우리만의 아픔이고 우리만의 설움이니 그럴 수 밖에요.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를 향해 외치는 어린 순득의 외침 ‘못 찾겠다 꾀꼬리!’, 나의 슬픔이요, 내 이웃의 아픔이면서 우리 모두의 설움이건만 그와는 달리 돌아가는 정세에 답답한 마음에 꺼내 본 그림책 “숨바꼭질”입니다.


숨바꼭질

숨바꼭질

글/그림 김정선 | 사계절
(발행 : 2018/06/25)

“숨바꼭질”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실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소중한 이와의 이별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숨바꼭질 노랫말에 두 친구의 엇갈린 운명을 엮어낸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림책 속 간판 등을 보면 아마도 지리적 배경은 대구 달성군 근처인 듯 하고, 시기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서울을 되찾고 북진이 시작되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치상 가장 늦게 피난길에 올랐다가 가장 먼저 피난처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법한 어느 마을 두 친구의 이야기. 엄마 아빠가 도와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선대가 겪은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설움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