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희네 집

옥상 한쪽엔 빨랫줄이 있습니다.

햇볕이 좋은 날엔 엄마가 이불을 내다 넙니다.

만희는 부드러운 이불 속으로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닙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나 할머니는 이렇게 이불을 내다 너셨어요. 어렸을 때엔 빨지도 않은 이불을 왜 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불 너는 날이면 동생과  이렇게 이불 사이를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널어 둔 이불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른들의 고함소리…!!! 우리는 자라목이 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면서 할머니랑 엄마 눈치 번갈아 보다 또다시 꺄르르륵 거리며 이불 사이를 뛰어 다니곤 했지요. 햇볕에 잘 마른 이불을 걷어 오면 그 때부터 또 신이 납니다. 겹겹이 쌓인 뽀송뽀송해진 이불 위에 드러누워 뒹굴뒹굴…

만희는 햇빛에 잘 마른 이불을 이렇게 표현을 했더군요.

이불에서 나는 햇빛 냄새는 엄마 냄새만큼 고소합니다.

‘이불에서 나는 햇빛 냄새’ 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이 갔습니다. 추억은 아주 먼 기억 저편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다 이렇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되면 가슴 한구석 찡해지며 되살아 나는 모양입니다.

철없이 이불 사이를 누비며 뛰어 놀던 그 시절 그 햇빛, 그 분들이 그리운 봄입니다.


만희네 집
만희네 집

글/그림 권윤덕 | 길벗어린이
(1995/11/01)

세 가족이 살던 연립주택이 너무 비좁아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가게 된 만희네 이야기로 그림책은 시작됩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만희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집안 곳곳이 소개가 되는데,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 참으로 정겹고 또 흥미롭습니다.

강아지 세마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반겨주는 대문에서부터 손재봉틀로 무언가를 고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맛있는 냄새와 이야기 소리가 있는 부엌, 과일이나 쌀, 담근 술, 쓰지 않는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광, 된장, 고추장, 간장 항아리가 있는 장독대, 따닥따닥 장작 타는 소리가 듣기 좋은 가마솥이 있는 뒤꼍, 접시꽃이며 도라지꽃 등 각종 꽃들이 모여 사는 앞뜰 화단, 좋은 일 많이 생기라며 할머니가 삼두매 부적을 붙인 현관, 그리고 온갖 장난감이 가득한 만희의 방, 퇴근한 아빠와 물놀이 하는 목욕탕, 할아버지가 가꾸시는 야채 밭이 있는 옥상, 그림도 없는 책이 가득한 아빠방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만희네 집 풍경이며 물건들 하나 하나  추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만희네가 기르는 무려 세 마리의 강아지와 만희를 따라 집 안 곳곳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시고, 만희 친구들이 놀다가 가고, 저녁 시간 아빠는 씻고 만희는 목욕 하면서 아빠와 비누거품 장난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고 잠든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풍경입니다. 어릴 적 남동생 잠자던 모습, 내 딸아이 쌔근쌔근 잠든 모습… 말이죠.^^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생각도 나고, 놀러갔던 친구네 집도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비누거품으로 놀아주시던 기억도 나서 혼자 웃습니다. 처음 그림책을 읽었을 때는 꼬마 만희를 따라 가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사이 만희가 나고 내가 만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읽어주지 않아도 볼거리가 가득 한 책, 말보다 그림 속에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만희네 집에서의 하루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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