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보니 남편 조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집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자 마리는 집 밖으로 나가봅니다. 그러자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조지의 쓸쓸한 뒷모습이 저만치서 눈에 들어옵니다. 이 아침부터 어딜 가냐고, 왜 말도 없이 혼자 가냐고 불러보지만 전혀 듣지 못한 듯 조지는 아무 대답 없이 계속 걸어갑니다.

마리는 하는 수 없이 대답 없는 남편의 뒤를 쫓아 나섭니다. 홀랜드 파크를 가로지르고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 브롬턴 로드에서 해러즈 백화점으로 향하는 조지의 뒷모습을 다시 발견하지만 또 다시 놓치고 마는 마리.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서 조지가 가장 좋아하는 헨리 무어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도 가봤지만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2층 버스를 타고 트래펄가 광장을 지나 바비칸 센터에서 내린 마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원을 둘러보고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꽃을 사고 있는 남편 조지를 발견합니다.

자신에겐 지금껏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누굴 주려고 사는 건지 궁금해 하며 밀레니엄 브릿지 위를 걷던 마리는 문득 서글퍼집니다. 멀리서 혼자 길을 걷는 조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자기 자신 역시 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걸까요? 하긴 여지껏 살아오며 무얼 하건 늘 남편과 함께 했었으니 다리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질만도 합니다.

한참을 따라간 끝에 마리가 도착한 곳은 그리니치. 마리와 조지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곳이죠. 마리는 천문대로 향하는 언덕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그 길 한 켠의 벤치에 남편 조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과 함께

마리, 당신 왔소?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잖소.

사랑하는 마리,
평생을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맙소.
난 오늘 우리가 좋아하던 곳들을 돌아다녔다오.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잖소.
마리, 정말 보고 싶구려.

마리와 함께 조지의 뒤를 쫓는 줄로만 알고 런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는데… 언덕을 오르던 마리는 간 데 없고 텅빈 벤치에 홀로 남겨진 조지… 잠시 후 조지 마저 떠나고 그가 앉았던 벤치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마리 콜린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이곳의 풍경과 그녀를 추억하며

이별이란 함께 있던 누군가 떠나고 남겨진 빈자리 아닐까요? 그리움은 바로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추억들의 무게감이겠죠. 사랑하는 아내를 멀리 떠나 보낸 후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그 빈자리에 쌓인 추억들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한 노신사의 뒷모습이 많은 생각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추억들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도록 간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정성을 다 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빈자리가, 혹은 그(녀)의 빈자리가 가벼이 스러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당신과 함께

당신과 함께

글/그림 잔디어 | 옮김 정세경 | 다림
(발행 : 2019/03/29)

살아 숨쉬는 동안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 풍경, 추억들에 관한 그림책 “당신과 함께”의 초고는 작가의 영국 유학 시절 졸업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길가 작은 벤치에 새겨진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 대한 가족의 그리움의 기록들을 한 노부부의 추억 속에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먼저 떠나간 아내 마리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걷는 조지의 그리움 가득한 발걸음을 쫓다보면 어느새 런던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 역시도 빛바랜 기억 속 어딘가를 찾아 나서고 싶어지는 건 이 그림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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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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