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

“얘들아, 우린 약속이 있잖아?”

모두가 잠든 깊은 밤중에 엄마가 아이들을 깨웁니다. 곤히 잠들었던 아이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조용히 일어나 옷을 차려 입고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섭니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아주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 위한 사람들처럼 깊이 잠든 동네를 지나 숲으로 향하는 가족. 도대체 어떤 약속이기에 이 가족은 한밤중에 칠흑같이 어두운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걸까요?

우리는 숲속으로 잠겨 들어가요.
비에 젖은 이끼 냄새에 나무껍질 냄새가 섞여서 나요.
마음이 편해지는 냄새예요.
마른 나뭇가지들을 밟을 때마다 와직와직 소리가 나요.
길옆으론 고사리 잎들이 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려요.

바로 코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워었는데 걸음을 더할수록 어둠에 익숙해지며 주변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한밤중 숲속을 지키는 풀벌레들의 노래와 작은 풀들의 숨소리도 들려옵니다. 지난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또 한 번 새로운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숲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입니다.

숲속의 빈터를 지날 때 엄마가 말해요.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우리는 풀밭에 누워요.
수많은 벌레들의 노랫소리에 풀들이 웅웅거려요.
하늘 가득히 별이 뿌려져 있어요.
잠시 후에 아빠가 아쉬운 듯 말을 꺼내요.

“가야겠구나!
우리 약속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시간이 다 됐어!”

그들이 지나온 숲속의 밤은 한없이 푸르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오라 손짓하는 푸근한 푸르름입니다. 푸른 밤의 자상한 환대를 받으며 산마루에 도착한 가족은 잠시 숨을 돌립니다. 나란히 누워 바라보는 짙푸른 밤하늘에 가득 뿌려진 별들. 오늘 이 가족의 약속이란 바로 이 순간이었나보다 했었는데… 아빠가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다다라요.
간신히 시간에 맞췄어요.
약속의 순간이 점점 다가와요.
점점… 점점… 그러다 드디어…
저길 봐요!
우리는 서로 꼭 껴안은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아요.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소리 없이 하루가 시작되는 눈부신 약속의 자리에…

마침내 오른 정상. 그리고 이 가족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잔뜩 움켜쥐었던 빛을 내뿌리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빛. 처음에는 산봉우리들 이어지는 능선 따라 잔잔히 퍼지던 빛이 사방으로 급하게 뻗쳐 나가더니 어느 순간 밤의 푸르름을 집어 삼켜버립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그저 땅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평범한 듯 독특하고 독특한 듯 평범한 삶을 그림책 속에 담아내는 작가 마리 도를레앙 역시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모두 잠든 깊은 밤 꿈을 향해, 소중한 약속을 위해 나아가는 우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어둠은 걷히고 눈부신 희망의 빛으로 가득할 거라고. 눈부신 아침의 약속을 지켜내는 태양처럼 우리 역시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삶은 희망의 약속을 우리들에게 반드시 지킬 거라고.

밤의 푸르름 속에 눈부신 꿈과 희망의 약속을 담아낸 그림책 “어떤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

어떤 약속

(원제 : Nous avons rendez-vous)
글/그림 마리 도를레앙 | 옮김 이경혜 | 재능교육
(발행 : 2019/06/17)

푸른 색 하나만으로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 담겨진 어둠을 걷어내고 눈부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그림책 “어떤 약속”, 잔잔한 글과 푸른 색 톤의 농담으로 그려낸 밤의 풍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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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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