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파블로

어느 날, 말라 버린 개천을 따라 떠돌이 악단이 마을에 들어왔어요.
그들의 노랫소리가 숲속의 새소리와 어우러져 공중으로 퍼져 나갔어요.
엄마와 파블로는 감동해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연주자들을 태운 낡은 트럭이 눈앞에서 멀어지기 전에
파블로와 엄마는 가까스로 뒤쫓아가 오렌지 하나를 건넸어요.
“우리를 잊지 말아요!” 엄마가 외쳤어요.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구름이 엄마와 파블로를 가려 버리기 전에
파블로도 메아리처럼 외쳤어요.

“우리를 잊지 말아요!”

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습니다.

칠레에 살고 있는 파블로의 아빠는 구리 광산에서 일해요. 에콰도르에 사는 파블로와 엄마는 열매를 따서 하루하루 살아가구요. 아르헨티나 소년 파블로는 군사 독재를 피해 탈출해서 멕시코에서 살아요.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가난에 허덕이는 페루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파블로.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쓰레기장을 뒤지며 살아가는 빈민가 소년 파블로. 미국에 먼저 간 엄마 아빠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화물열차 지붕 위에 올라탄 멕시코의 파블로.

가이아나에서 온 이민자 파블로는 뉴욕 브롱크스의 단칸방에서 사촌네 가족들과 함께 지내요. 두 가족은 12시간씩 단칸방에 교대로 머물러요. 파블로네가 12시간 방에 있는 동안 삼촌네 가족은 거리에서 12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나라 상황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남미 여러 나라들의 꼬마 파블로들. 당장 코 앞의 끼니조차 장담할 수 없는 그들이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의 가슴에도 우리와 똑같은 꿈과 희망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지하 700미터의 굴 속에서 밤새도록 땅을 파다 돌아와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잠든 아빠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는 꼬마 파블로. 가만히 아빠 가슴에 손을 대 보면 파블로는 꼭 세상의 중심에 닿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밤 고단했던 아빠의 노동은 아들 파블로의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비록 밀림 속을 헤매고 다니며 따온 과일 몇 알로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지만 떠돌이 악단의 노랫소리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만큼 파블로와 엄마의 마음은 뜨겁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에겐 내일 하루를 버티게 해 줄 오렌지 한 알이지만 잠시나마 자신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 그들에게 주저 없이 건네줄만큼 넉넉한 마음을 가진 파블로와 엄마.

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작은 가슴에 커다란 꿈을 담고 있는 파블로들. 떠돌이 악단들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오렌지 한 알을 건네던 파블로와 엄마의 외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들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응원해야겠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요!”


일곱 명의 파블로

일곱 명의 파블로

(원제 : Il cuore del mondo)
호르헤 루한 | 그림 키아라 카레르 | 옮김 유아가다 | 지양어린이
(발행 : 2019/09/27)

“일곱 명의 파블로”는 남미 어린이들의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잊지 말자고 말하는 그림책입니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 어린이들이야말로 우리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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