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슬플 때

이 그림은 “We’re Gong on a Bear Hunt”(마이클 로젠, 헬렌 옥슨버리)의 작가 마이클 로젠의 “내가 가장 슬플 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책은 아들 에디를 잃은 작가의 슬픔을 그대로 옮긴 그림책입니다.

어두운 방, 작은 촛불 하나가 오롯이 어두움 속에서 흔들거림 없이 방안을 비추고 있습니다.그리고, 작은 액자 하나. 어둠 속의 아버지는 한 손에는 펜을 꼭 쥔 채 다른 한 손은 자신의 턱을 고이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먹을 꼭 쥔채 바라보는 것은 아마도 촛불인 듯 합니다. 흔들거림 없는 작은 촛불처럼 이젠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저 초가 다 타들어가고 나면 방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하겠지만 그 어둠이 걷히고 나면 아버지는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겁니다.

힘 없이 턱을 괸 채 바라보는 것은 액자 속에서 자신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의 사진입니다.

어떻게 그 녀석이 감히 그렇게 죽어 버릴 수 있어?
어떻게 그 녀석이 감히 아빠를 이렇게 슬프게 하냐고!

지켜주지 못한 마음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떠난 아들에 대한 원망으로 아버지의 가슴 깊이 파고 듭니다. 촛불이 다 타버려서 어둠 속에 영원히 갇혀 버리고 싶습니다. 그 누구의 위로도 들리지 않는, 아들과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심연 속으로 스스로를 가둬 버리고 싶습니다.

세네카는 ‘슬픔보다 더한 것은 슬픔 뒤에 오는 공허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의 아버지는 가슴 속의 비통함의 끝과 맞닥뜨릴때까지 슬픔 속에 자신을 맡겼었습니다. 이제 그는 슬픔과 비통함 너머의 공허함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스러져 가는 촛불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사진 속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빠, 이제 아빠의 삶을 살아 가세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내가 가장 슬플 때
내가 가장 슬플 때

(원제 : Michael Rosen’s Sad Book)
마이클 로젠 | 그림 퀜틴 블레이크 | 옮김 김기택 | 비룡소
(발행 : 2004/10/30)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다룬 이 그림책에 이야기나 스토리는 없습니다. 슬픔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로젠의 자신의 뼈를 깎아내는 듯 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퀜틴 블레이크는 한장의 사진, 한장의 정물화처럼 그림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한장 한장에 슬픔에 잠긴 어휘들과 그 슬픔의 어휘를 정물화처럼 그려낸 그림들이 계속 됩니다. 어설프게 치유나 새로운 희망 따위를 담지 않고 오로지 슬픔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비통함에 젖어 있는 작가 자신과는 달리 보는 이들에게는 그 슬픔을 넘어서기 위한 작은 촛불을 건네 주는 그림책 “내가 가장 슬플 때”였습니다.

책 속에 슬픔과 부대끼며 시를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싯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Sad is a place
that is deep and dark
like the splace
under the bedSad is a place
that is high and light
like the sky
abobe my headWhen it’s deep and dark
I don’t dare go thereWhen it’s high and light
I want to be thin air.This last bit means that I don’t want to be here.

I just want to disappear.

슬픔은
깊고 어둡네
침대 밑
공간처럼슬픔은
높고 가볍네
머리 위
하늘처럼슬픔이 깊고 어두울 때
감히 거기에 갈 수 없네슬픔이 높고 가벼울 때
엷은 공기가 되고 싶네.마지막 연은 내가 여기 이렇게 있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냥 사라지고 싶습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달을 삼킨 코뿔소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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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희
주성희
2014/07/08 17:09

내가 가장 슬펐을때…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었고, 부인하고 싶었고, 원망감과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었다…그리고 찾아온 슬픔…공허함…그 상실감에 한 참을 허우적거렸다…지금도 문득문득 뭉툭한 덩어리가 목까지 차올라 막히기도 한다…

작가들은 글로 승화를 시킬 수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선주
Editor
2014/07/10 09:23
답글 to  주성희

슬픔을 넘어선 그 무엇을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죠?
촛불을 응시한 텅 빈 눈빛은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그 이상을 담아내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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