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과 암탉

갓 부화한 병아리 옆에서 자기가 품어주고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병아리를 바라보고 있는 암탉의 표정에는 경이로움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왼쪽에 수탉 얼굴, 오른쪽 암탉의 얼굴로만 시작한 이 그림책은 한 장 한장 넘어 갈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리로 자신의 가슴 털을 뽑는 암탉의 모습, 그리고 둥지에 하얀 달걀을 낳는 장면, 달걀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변신하는 병아리의 모습. 그렇게 엄마닭이 품어주고 품어주고 또 품어주던 어느 날 달걀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병아리 한 마리가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 페이지입니다.

엄마 닭은 자신의 병아리를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의 표정을 이 장면에 담고 있는 듯 합니다. ‘모성’은 언제나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병아리는 차츰 기운을 내서 엄마 다리 밑에 앉고, 엄마를 따라 모이를 먹고 엄마 품에서 잠이 듭니다. 엄마처럼 듬성듬성 검은 깃털이 나기 시작하자 홀로 먹이를 찾아 나서네요. 엄마닭은 병아리를 키웠고 병아리는 닭으로 자라납니다. 이야기는 끝이지만 이 그림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세대와 세대 사이를 이어 왔겠죠.

숭고한 생명의 순환을 그림만으로 나타낸 그림책 “알과 암탉”은 세상 모든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움이며 세상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는 이야기를 정성들여 그려낸 한 장 한장으로 밀도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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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과 암탉
알과 암탉

(원제 : L’oeuf Et La Poule)
지은이 옐라 마리 | 그림 엔조 마리 | 시공주니어
(발행 : 2006/03/25)

※ 1972년, 1974년 볼로냐 도서전 특별상 수상작

암탉이 마치 우리 앞에서 알을 낳고 병아리를 키우는 듯, 모든 배경을 없애고 클로즈업 된 장면으로 필요한 장면만을 묘사해 그림을 부각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알과 암탉”은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훌륭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색상도 빨강, 노랑, 검정색 세가지만 사용했어요.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 과감하게 생략된 배경을 통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완벽한 화면 구성 능력을 보여주는 글자 없는 그림책의 대가 옐라 마리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겸 그림책 작가입니다. 그녀의 그림책들은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삶’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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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희
주성희
2014/07/08 14:59

아…짧지만 삶의 순환을 보여주네요..생명의 탄생과 모성…어린시절 시골에 살던 나는 닭을 키웠었죠…어느 해 병이 돌아 어미닭이 결국 숨을 거두고말았고 병아리는 어미 품을 들락날락하면서 큰 소리로 울어댔던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나도 함께 그 옆에서 울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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