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치수첩

우리 어릴 적 김장철이면 익숙하던 풍경. 노란 스웨터를 입은 엄마의 빨간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작은 수첩 한 권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슨 수첩이길래 엄마는 김장 담그는 부산한 날에도 가슴에 고이 품고 있을까요?

김장하는 날이면 엄마는 꼭꼭 넣어 두었던 작은 수첩을 꺼냅니다. 시장에 가서 배추와 갖은 재료들을 꼼꼼히 고를 때마다 번번이 수첩을 들여다 보는 엄마. 방앗간에서 고추를 빻을 때도, 내일 쓸 양념들을 준비하고 배추를 다듬고 씻은 다음 소금에 절일 때에도, 찹쌀풀을 쑤고 김치속을 만들 때에도 엄마는 수첩을 들여다 봅니다. 이제는 외울 때도 되지 않았냐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의 참견에 엄마는 “그래도 자꾸 보게 되네.” 하며 습관처럼 수첩을 또 매만집니다.

김장을 다 끝내고 종일 수고한 이웃들이 모여 앉아 겉절이에 수육, 배춧국으로 한 상 차려 나눠 먹습니다. 삶은 고기에 김치속 살짝 얹고 절인 배추로 돌돌 말아서 아이 입에 넣어주던 엄마가 수첩을 만지작 거리며 혼잣말 하듯 말합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위해 김장을 했겠지?”

김장하는 동안 내내 품에 고이 안고 있던 엄마의 수첩엔 엄마의 엄마가 정성스레 적어둔 김장 김치 맛있게 담그는 비법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법 맨 아래 짤막한 두 줄의 메모.

김치야, 부지런히 익거라!
우리 딸 맛있게 먹게…

아이를 낳아서 키워봐야 우리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낳고 길러 주셨는지 알게 되듯 김치를 손수 담가 먹게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김치를 담그셨는지를.


엄마의 김치수첩

엄마의 김치수첩

한라경 | 그림 김유경 | 보랏빛소어린이
(발행 : 2020/08/24)

“엄마의 김치수첩”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골목 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김장철의 풍경을 담아내 그 시절을 경험했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생경함이 주는 묘한 감성을 안겨주는 그림책입니다.

할머니만의 비법이 담긴 김치수첩을 김장 담그는 내내 들여다보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딸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전해지는 김치 맛의 본질 속에 담긴 깊은 사랑과 전통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 김치의 날(11월 22일) : 지난 일요일이 김치의 날이었더군요. 이런 날도 있다는 걸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1월 22일로 정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다양한 재료 하나하나가(11월) 모여서 22가지 효능을 낸다(22일)는 의미라고 합니다. 22가지씩이나 되는 효능은 과연 어떤 것들일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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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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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이지영
2020/11/26 13:18

어제 김장 풍경이 담긴 책 빌리러 도서관 갔다가 1권밖에 못빌렸어요~ 김장철이라 그래서인지 대여중인 책들이 많더라구요~엄마의 김치수첩은 제가 보고싶어 사야겠네요~^^ 친정 집이 농사를 지으셔서 김장을 크게 하시는데 7살 아들과 남편과 함께 옛 풍경처럼 김장을 했답니다.
부모님이 기르신 배추, 무 뽑아 직접 절이느라 굉장히 힘들지만 그만큼 또 진짜 맛있는 김치입니다.
(부지런히 익거라. 우리 딸 먹게…)
부모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 훔치고 갑니다.ㅜㅜ

가온빛지기
Admin
2020/12/02 10:57
답글 to  이지영

이지영 님, 김장 잘 담그셨나요? ^^
나이 먹는만큼, 내 아이가 자라는만큼, 부모님 향한 애틋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김치수첩”이 마음에 드셨다면 “바람의 맛”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지영
이지영
2020/12/03 21:22

가온빛에서 소개된 글은 보았었는데 꼭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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