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집

안녕,
난 여기에 살아.
따뜻하고 아늑하지만 가끔은 시끄러운 곳에.

빙긋 웃는 표정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사는 곳, 지상낙원이란 표현이 맞을까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안락하고 포근한 그곳에서 아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빙글빙글 돌다 음악 소리에 춤도 추고 부드러운 융단에 누워 달콤한 주스도 마시고 그러다 쿨쿨 자고 나면 몸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어요.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그 집이 점점 작아지자 아이는 그곳에서 더 이상 좋아하는 걸 할 수 없게 됩니다. 어쩌면 문 너머 세상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용기 내어 문밖 세상으로 넘어갔어요. 좋아하는 걸 모두 그곳에 두고서. 눈이 부셔 눈을 꼭 감습니다. 커다란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매일 같이 잠만 자고 있어도 화를 내지 않는 친구가 있는 곳, 첫 번째 집에서 즐겨 마시던 주스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는 것들이 아주 많이 있는 곳, 재미나고 신기한 일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예전에 살던 곳은 점점 잊혔어.
정말 기쁜 일이야.
이곳이 좋아졌다는 뜻이거든.

두 번째 집에서 아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아이처럼 오래전 어딘가에서 왔다는 두 사람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동안 엄마 생각이 나서 괜스레 눈물이 났어요.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난 사람, 우리 엄마. 태어나던 날의 겨울 새벽을 상상해 봅니다. 젊은 우리 엄마를 떠올려 봅니다. 두 번째 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아 첫 번째 집에서의 기억들은 완전히 잊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어봅니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두 번째 집에서 잘 살아보려고, 오늘도 노력 중입니다.


두 번째 집

두 번째 집

글/그림 이현주 | 살림
(발행 : 2020/12/28)

나를 맞아준 가족이 있는 곳, 태어나 살아가는 세상을 “두 번째 집”이라 표현한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어요.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던 그 시간이 그대로 전해져 그림책을 읽는 동안 울고 웃었습니다.

한때 나만의 세상에서 왕으로 살아갔던 나. 하지만 그 좋은 것을 모두 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 태어나던 날의 눈물은 어쩌면 그런 의미였을까요? 몸이 커져 더 이상 첫 번째 집이 불편해지자 아이는 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때 처음 알았어.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탄생과 성장의 아름다운 비밀이 담긴 그림책 “두 번째 집”, 꼭 쥐고 있던 걸 모두 놓아버리고 나온 세상, 두 번째 집을 찾은 모든 이가 그때 그 마음을, 그 용기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눈물을 흘리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그 손길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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