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밖에 없는 말

아무도 감금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낯선 장소에 고립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살아갈 방식과 기한이
정해지는 치욕을 바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보다 더 많은 이유로 인해…
어느 날 말하기로 했다.

그만!

우리와 함께 지구라는 행성을 공유하고 있는 생명체인 동물들을 대하는 방식의 잔혹함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식용, 실험용, 관상용 등의 목적으로 동물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다 식용으로 소비되는 동물들, 동물원과 아쿠아리움 등에 갇힌 채 사람들의 오락 거리로 전락해 수모를 당하는 동물들, 서커스단이나 실험실 등에서 혹사 당하는 동물들, 사람들의 멋부리기와 보온 등을 위해 착취당하는 동물들…

사람이 동물을 소비해 온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겁니다. 동물들도 우리처럼 기쁨과 슬픔, 공포와 절망, 고통과 아픔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다만 죄책감 없이 그들을 소비하기 위해 아주 오래도록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죠.

로저 올모스는 우리가 그동안 외면한 채 모른 척했던 우리 인식의 실체를 끄집어냅니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서커스 공연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물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우리들의 민낯입니다. 모피를 몸에 두른 것도 모자라 옷장 가득 채워놓은 채 반려견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우리들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작가는 작은 어항 속에 갇힌 나를 상상해보라고 말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집,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심지어 내가 바라보는 하늘과 구름까지도 나를 가둔 존재가 나를 즐기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둔 장치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보라고.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삶을 조작할 수 있고 언제든 나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작가는 말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만!”

그리고 깨닫습니다. 우리의 작은 품으로도 그들을 모두 안아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그들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먹방과 배달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멈추는 것보다 필요한만큼만 소비하는 인식이 더 급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껏 소비해 왔던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죠. 물론 저는 긍정적입니다. 인류는 문제가 인식되면 그것을 개선하거나 해결하면서 발전해왔으니까요. 동물들을 대하고 소비하는 방식 역시 점점 더 좋아질 겁니다. 우리들 모두가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하나씩 행동으로 옮긴다면 수 년 후 또는 수십 년 후에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 믿습니다.

맹목적인 소비, 그 방식의 잔혹함 등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해 주는 그림책, 진실은 말하기 어렵지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림책 “할 수밖에 없는 말”이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해주기를, 그래서 우리에게 변화의 씨앗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할 수밖에 없는 말

할 수밖에 없는 말

(원제 : Senzaparole)
글/그림 로저 올모스 | 옮김 김서우 | 삽화가들의사랑방
(발행 : 2020/06/26)

“할 수밖에 없는 말”을 읽고 나면 ‘동물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동물복지는 동물의 삶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사육하는 환경과 조건 등을 말하는 것뿐이고, 그 끝은 결국 동물의 복지가 아닌 인간의 안전한 소비를 위함이니까요.

우리가 잘 아는 제인 구달 등 여러 인사들의 추천사가 이 책에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며 소개를 마칩니다.

그들을 다루는 우리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를 품고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들에게 목소리가 있었다면, 그들이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동시에 이 책은 작은 희망으로 향한 문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공생은 가능하며, 다 같이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만”이라고 말해왔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그만, 학대하는 행위는 그만, 물건이나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그만, 우리의 습관과 사고방식의 재고를 변함없이 환영합니다.

– FAADA* 제니퍼 베렝게라스

* FAADA(La Fundacion para el Asesoramiento y Accion en Defensa de los Animales) : 스페인의 동물 보호를 위한 비영리기구. 소비와 오락을 위해 이용되는 인간 외 모든 동물의 존엄을 홍보하고 그들의 삶의 질 개선과 법률 제정을 위해 일함.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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