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앙코르”는 누군가 이사 가고 난 자리에 버려진 바이올린이 오랜 시간 공들인 장인의 손길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잘 어울리는 연주자와 하나가 되어 청중을 매료시킨 뒤 앙코르의 환호성과 박수갈채 속에 푹 빠져드는 과정을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앙코르!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몇 가지의 앙코르가 더 담겨 있습니다.

지휘자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

유리 작가의 모델이 되어준 ‘K&J바이올린 스튜디오’의 정재경, 권석철 두 사람은 바이올린 제작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재경 씨는 대학에서 지휘를 배우다 바이올린 제작에 푹 빠져서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유학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언어를 전공했던 권석철 씨는 스무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을 계기로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구요.

재미난 건 두 사람 모두 바이올린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란 곳을 선택했고 이 곳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오픈한 K&J바이올린 스튜디오는 부부가 함께 운영을 하고 있고 정재경 씨는 주로 수리와 관리를, 권석철 씨는 제작과 강의를 맡고 있다고 하는군요.

바이올린의 몸체가 완성이 되고 나면 f홀을 통해 사운드포스트를 집어넣어 앞판과 뒤판 사이에 끼워 세워줘야 하는데 보고 있자니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사운드포스트(sound post 버팀기둥)는 지름이 6mm쯤 되는 동그란 나무기둥이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브리지를 거쳐 앞판으로 내려오는 현의 진동을 뒤판으로 전달하여 악기 전체로 퍼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디에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것들이 있다.

바이올린 제작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이올린의 소리에 중요한 기능을 해내는 사운드포스트와 많이 닮았습니다. 음악과 악기, 그리고 연주자 사이에서 아름다운 예술을 소리로 자아내고 청중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니까요.

마침내 자신의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

고장난 채 버려졌던 제작자의 손을 거쳐 부활의 기회를 얻은 바이올린. 하지만 온전히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을 연주해줄 연주자를.

처음부터 완전한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을까?
연주자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눈길과 손놀림, 체온과 심장의 박동…
서로의 진동에 익숙해져 가면서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간다

악기와 연주자가 단지 만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완전한 소리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악기와 연주자 사이의 교감, 끝없는 연습을 거치며 서로의 진동에 익숙해지고 둘만의 소리를 찾아내는 지난한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악기를 받아들고 난 후 노란 잎 흩뿌리는 은행나무 아래 고개 숙인 채 앉아 있는 연주자의 모습에서 그 지난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첫 만남의 기쁨, 원하는 소리를 찾아냈을 때의 희열, 실패와 좌절의 고통…

무대 위. 연주가 끝난 후 객석을 가득 메꾸는 박수 갈채.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견디며 지나온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과 감동의 순간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앙코르!

바이올린을 버리고 간 누군가에게도 앙코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공들였던 것을 그만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패한 뒤건 성취한 후건 지금껏 나를 다 쏟아부었던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서운’하다거나 ‘섭섭’하다는 말만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공허함입니다.

손때 묻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 누군가를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이번 도전에서는 반드시 ‘앙코르, 다시 한 번 더!’를 들을 수 있기를.


앙코르

앙코르

글/그림 유리 | 이야기꽃
(2021/07/20)

첫 그림책 “돼지 이야기”(2013)을 선보인 이후 “대추 한 알”(2015), “수박이 먹고 싶으면”(2017)에 이어 4년만에 내놓은 유리 작가의 네 번째 그림책 “앙코르”. 마음 깊이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 하루 하루 자신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응원이 담긴 그림책입니다.

앞뒤 면지에 담겨진 작가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미를 놓치지 마세요. 달라진 건 무엇인지, 그 변화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저는 저대로 여러분들은 또 여러분들 나름대로 각자의 삶에 기반한 정답을 품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정답 여러분의 앙코르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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