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같이 살지

우리는 기다림을 좋아해.
기다림은 누군가를 많이 보고 싶다는 뜻이거든.

나비 애벌레는 알에서 한 번,
번데기에서 또 한 번,
나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강아지풀은 몸을 쓰다듬는 바람도 기다리고,
새벽 이야기를 가득 안고 오는 이슬도 기다려.
오는 이마다 보고 싶었다고 소곤소곤 얘기해.

날개가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애벌레,
지나가는 모든 이를 기다리는 강아지풀,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기다리며 함께 살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지.

수목원에 가면 꽃과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저 꽃과 나무로만 보아왔던 것들이 이름을 아는 순간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나 우리 들꽃들은 이름도 그 유래도 참 정겹습니다. 며느리밥풀꽃, 노루발풀, 패랭이꽃, 홀아비꽃대, 깽깽이풀…

강아지풀도 그렇습니다. 살랑대는 강아지 꼬리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지만 송충이 같은 애벌레들과도 닮았습니다. 범부의 눈엔 딱 여기까지인데 작가의 심미안은 강아지풀과 애벌레의 삶을 잇고 거기서 우리의 인생을 풀어냅니다. 알에서 한 번, 번데기에서 또 한 번 나비가 되기까지 애벌레가 견뎌내는 기다림의 시간과 몸을 쓰다듬는 바람과 새벽을 안고 오는 이슬을 기다리는 강아지풀의 시간이 닮아 있음을 작가는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애벌레와 강아지풀 외에도 바다거북과 금낭화, 코알라와 갯버들, 부전나비와 누린내풀, 잉어와 연꽃, 카나리아와 괴불주머니, 멧밭쥐와 참다래, 두더지와 고구마, 고슴도치와 밤송이, 고릴라와 밍크선인장, 고양이와 목화, 복어와 그라비올라, 오징어와 풍란 사이의 ‘함께’와 ‘같이’의 비밀을 풀어낸 작가의 글과 그림을 찬찬히 다 보고나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던 유홍준 교수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 그림책을 보고난 후 여러분들은 깨닫게 될 겁니다. 여러분의 눈에 들어온 자연과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이 전과 같지 않음을.

“이렇게 같이 살지”라는 그림책 제목에 들어있는 ‘같이’에는 ‘함께’라는 뜻뿐만 아니라 ‘같다, 닮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콩 속에서 자라는 탓에 농사 망친다며 농부들에게 구박받는 부전나비 애벌레와 누린내 탓에 꽃밭 구석 자리로 내몰리는 누린내풀은 서로 닮았습니다. 꽃밭 구석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지켜낸 끝에 결국 예쁜 꽃을 피워낸 누린내풀, 마침내 예쁜 나비가 되어 누린내풀 위에 내려앉은 부전나비 또한 닮았습니다.

모두 열세 쌍의 동물과 식물의 함께, 같이 살기를 담아낸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우리 삶을 담은 시입니다. 열세 편의 시는 모두 ‘함께 살아’로 끝을 맺습니다. 각 시의 맨 마지막 문장만 모아도 또 한 편의 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
바다와 산을 나누며,
꼬옥 껴안고 꿈속을 거닐며,
꿋꿋하게 이겨내며,
평범함과 신비함을 모두 간직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하며,
지치지도 않고 기다리며,
아슬아슬 넝쿨에 매달려,
어둠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
깊은 밤을 지키며 씩씩하게,
서로 토닥이며
추위에 웅크린 이들을 품으며,
웃고 울고 춤추며,
우리는 스스로 불 밝히는 빛이 되어 함께 살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지.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함께 살라고 내어준 꽃과 나무, 곤충과 동물들과 같이 살아갑니다.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작디 작은 벌레 한 마리 조차 다 제 몫만큼의 삶을 살아갑니다. 혼자서만 살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서로 도우며 어울려 살아갑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인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이웃을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같이 살지

이렇게 같이 살지

글/그림 김윤경 | 향출판사
(발행 : 2021/08/10)

동물과 식물들이 한 줄기에 매달린 꽃과 열매가 되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다정하게 그려낸 그림책 “이렇게 같이 살지”. 자연을 닮아가며 살고 싶은 작가의 마음, 이웃들과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작가의 바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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