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줘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 없는 아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빠는 없다.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아빠와의 이별. 아이들은 아빠의 삶이 묻어난 자리들마다 깃든 아빠와의 추억에 그리워하고 아파합니다. 아빠의 부재를 부정하고 되돌려 보려 애쓰지만 그럴 수 없음에 흐느낍니다.

남동생은 아빠와 야구하는 걸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야구를 함께 할 아빠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동생을 지켜보는 누나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 대신 야구를 해주고 싶어 나서보지만 동생은 그런 누나를 뿌리칩니다. 그러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매는 함께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남동생은 누나에게 떼를 쓰는 것으로 아픔을 뱉어냅니다. 동생이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힘든 누나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다독일 겨를도 없이 동생 달래주려 마음 쓰는 누나… 동생에게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 애쓰는 건 어쩌면 제 마음의 빈 자리를 메꾸어 보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빌리고 싶었다.
빌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명의 아빠를 빌렸다.
친구들이 우리 아빠가 되었다.

우찬이는 미니카 마스터, 새로는 팽이 돌리기 선수, 해솔이는 보드게임 챔피언, 유이는 블록 조립 천재. 남동생에게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줄 네 명의 친구. 한 여름에도 지난 겨울 아빠가 사준 겨울 바지를 입고 있던 남동생이 네 명의 아빠들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웃음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동생이 웃을 때마다 누나의 얼굴에도 웃음이 조금씩 번집니다.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다독임 같은 그림책 “아빠를 빌려줘”. ‘빌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나의 독백을 빌어 작가들 역시 아빠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음을 전제했습니다. 그럼에도 네 명의 아빠를 빌려야만 했던 건 이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그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곁에서 어루만져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빠를 빌려줘

아빠를 빌려줘

허정윤 | 그림 조원희 | 한솔수북
(2021/11/10)

“아빠를 빌려줘”는 아빠의 부재로 인해 힘들어하는 두 남매의 모습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림책입니다.

조원희 작가가 글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경우 그림이 글을 압도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팽팽하게 균형을 잘 유지했습니다. 간결하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글 덕분입니다. 이 그림책을 통해 허정윤 작가는 자신의 문체를 완성해냈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간결한 글과 간결한 그림이 만나 그림의 여백을 아빠의 빈 자리로 가득 채운 그림책 “아빠를 빌려줘”. 엄마를 배제하거나 등장시킴으로써 남매가 느끼는 슬픔과 아픔이 독자들에게 더 강렬하게 전달되게 하려는 조원희 작가의 의도가 인상적입니다. 앞면지와 속표지 사이에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한 장,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 없는 아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빠는 없다.’ 라는 세 줄의 글과 상복을 입고 서 있는 남매. 엄마랑 세 식구가 남았다고 해서 이 장면에서 엄마까지 그려넣었다면 느낌은 반감했을 겁니다.

반대로 누나가 동생 얼굴에 상처를 낸 후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는 이 그림책에서 유일하게 엄마가 등장합니다. 남매는 아웃라인 없이 빨간 색으로 채색을 했고, 엄마는 빨간 색으로 아웃라인만 그렸습니다. 남매뿐만 아니라 엄마 역시 슬픔을 겪고 있음을, 다만 엄마는 그 슬픔을 삼킨 채 아이들 앞에서 환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방 안 가득한 어둠이 아이들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엄마가 밝은 빛을 품은 채 아이들을 지키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다려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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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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