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 이혜리

빽빽히 들어선 아파트 단지 안, 건물과 건물이 서로를 에워싼 채 대낮에도 햇빛이 잘 드리워지지 않는 아파트 위로 휘영청 밝은 달이 지나갑니다. 유난히 크고 밝은 달을 한 아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달은 함박웃음 머금은 커다란 사자로 변합니다. 사자가 씨익 웃으며 달바라기 중이던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창 밖으로 뛰어 내려 사자 등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사자가 나타났다.
사자가 나타났다.
얘들아 모여라!’

달밤 - 이혜리

아이들이 하나 둘 달려 와 사자와 함께 하는 놀음에 끼어듭니다. 신명난 놀이 한판이 벌어질 기세입니다.

신나게 놀자!
머리를 흔들고 두 발을 구르고
펄쩍펄쩍 뛰어 보자.
뒹굴뒹굴 굴러 보자!
어깨춤을 추면서 신명 나게 놀아 보자,
하늘까지 달려 보자!
웃고 떠들고 소리치며 달빛 속을 달려 보자,
하늘 끝까지 달려 보자!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건 1980년대입니다. 그 때는 학교만 다녀 오면 하루 종일 동네 공터에 모여서 놀았었죠. 그 땐 아파트가 없었고 집 밖으로 나서면 뛰어 놀 곳이 참 많았습니다. 축구건 야구건 실컷 할 수 있는 넓은 공터도 있었고, 골목골목마다 다방구, 짬뽕, 왔다리갔다리, 구슬치기, 오징어포, 삼팔선, 말뚝박기… 이거 뭐 다 대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말이죠. 그것도 모자라 소독차 나타나면 그건 또 왜 그렇게 따라다닌건지.. 놀아도 놀아도 성에 차지 않았었던걸가요? ^^

요즘은 아파트 단지 안이건 주택가건 아이들이 모여서 뛰노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네에 빈터가 없으니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기때문이겠죠. 1980년대에 그 많았던 공터들이 모두 어디로 숨었는지… 그 공터 대부분엔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섰고, 그 상가엔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학원들이 생겨났으니 공터에서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원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건가 봅니다.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해진 경쟁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엄마 아빠라면 다 똑같으니 학원 보내지 말자, 공부 시키지 말자는 소리는 감히 못하겠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아이들 숨통 좀 틔워 주자구요. 엄마 아빠가 주말에 하도 신나게 놀아줘서 아이가 일요일 밤엔 공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말이죠 ^^

그림책 “달밤”에 나오는 휘영청 밝은 달과 웃음 가득 머금은 사자는 우리 아이들의 상상이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 줘야 할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들이 바라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달밤 - 이혜리
책표지 : 보림
달밤

글/그림 이혜리, 보림

비가 오는 날에“에서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와 엄마의 즐거운 상상을 유쾌한 그림으로 보여줬던 이혜리 작가의 신명나는 그림책 “달밤”입니다. 이혜리 작가 특유의 상상력은 내놓는 그림책마다 매번 보는 이들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추임새 역할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잘 짜여진 구성으로 독자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와 감상에 빠져 들 수 있습니다.

숨막힐 듯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사자, 사자를 반기며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뛰쳐 나오는 아이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덩실거릴만큼 신명나게 한판 놀아대는 사자와 아이들… 멀어져 가는 달을 아쉬운 듯 바라보는 한 아이, 그리고 다시 아파트를 뒤덮는 어둠…

엄마에게 등 떠밀려 하루 종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끌려 다니는 아이들은 가슴이 뻥 뚫릴 것 만 같은 그림책, 멀어져 가는 달을 풀이 죽은 채 아쉬운 눈으로 바라 보는 아이의 표정에서 우리 엄마 아빠들에게 한번 쯤 생각해 볼 꺼리를 던져 주는 그림책, “달밤”입니다.


아이들에게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그림책 보면서 제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송골매의 ‘모여라’입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저는 중학생이었네요 ^^ 실컷 놀자던 이 노래는 가사 맨 마지막에 ‘쉿~ 모였으면 뒤돌아 가. 하하하하’ 이렇게 말합니다. 배철수 아저씨가 아주 호탕하지만 허탈하게 웃음을 내지르면서 노래는 끝이 나죠. 송골매가 이 노래를 불렀던 1990년이나, 이혜리 작가가 “달밤”을 내 놓은 2013년이나 신나게 노는 상상을 한 껏 해 보지만 맘껏 놀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