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집을 지은 아이

책들을 분류하고 쌓기 시작했어요.
책들을 높이, 아주 높이 쌓고 쌓다 보니
어느새 벽과 지붕, 문, 창문, 다락방, 창고까지 있는 집이 되었어요.
갈 곳이 없었던 말리크는 책으로 만든 집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어요.

책으로 만든 자신만의 고요한 집에서 책을 읽을 때면
말리크는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이 책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말리크의 머리 위에, 발 아래에,
그리고 마음 속에 놓여 있는 모든 책 속에 말이에요.

말리크는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났어요.
꿈 속에서 어머니는 말리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떠나도 되겠구나.
말리크 네가 책 속에서 배운 것은 우주보다 넗고,
수천 가마니의 곡식보다 갚지단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 보렴.”

다음 날, 말리크는
눈을 뜨자마자 기차역으로 갔어요.
마침내 떠날 용기가 생겨났거든요.

말리크에게는 책이 곧 집이고, 길이고, 산이고,
세상이었으니까요.

말리크는 형과 누나들이 열아홉명이나 있어요. 20남매 중 막내였지요. 엄마 아빠와 형제들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말리크에게 갑작스레 불행이 닥쳐 옵니다. 엄마와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셨거든요. 형제가 그렇게 많았지만 막내 말리크를 돌봐주는 형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돌봐주기는 커녕 모두가 부모님의 재산을 경쟁하듯 나눠 가지고 나서는 쓸모 없는 책들과 함께 말리크를 집 밖으로 쫓아 내고 말았죠.

갈 곳 없는 말리크는 형제들이 내다 버린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분류를 하고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책으로 지은 집에서 책으로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자고, 배가 고플 땐 요리책을 꺼내서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밤이 되면 하늘과 별에 관한 책들을 꺼내 읽으며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책으로 만든 집에서 살던 말리크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칩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책들이 따스한 봄날의 햇살에 녹아 내리더니 책으로 만든 집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거든요. 슬픔에 빠진 채 잠이 들었던 말리크는 꿈 속에서 그리운 엄마를 만납니다. 그리고 엄마는 말리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떠나도 되겠구나. 겁내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 보렴.”이라고 말이죠.

기차에 오른 말리크가 담담하게 세상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과 함께 짤막한 한 줄의 글로 그림책으로 끝이 납니다.

책은 사람이다.

루벤 갈레고

짧은 글 한줄과 담담한 말리크의 표정 속에 담긴 내일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은 우리에게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 주고 있는 듯 합니다. 책으로 과연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뭐, 집이야 지을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지낼 수 있을까요? 말리크가 지은 집은 아마도 마음의 집이 아닐까요?

말리크에게 책은 세상과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지식들을 배우게 되고, 머나먼 오지에서부터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우고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겁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여의고 형제들로부터 버림 받았지만 책을 통해 말리크는 어린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말이죠.

이제 말리크는 세상에 나가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리크는 주저합니다. 부모님과의 행복한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떠나지 못한 채 말리크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알지만 선뜻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려는 의지가 더 강했기에 말리크는 꿈 속의 엄마를 통해 자기 자신을 격려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책으로 집을 지은 아이
책표지 : 그린북
책으로 집을 지은 아이(원제 : I Libri Di Maliq)

글 파올라 프레디카토리 | 그림 안나 포를라티 | 옮김 김현주 | 그린북

“책으로 집을 지은 아이”를 만든 파올라 프레디카토리와 안나 포를라티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라고 합니다. 책과 함께 홀로 남겨졌지만 그 책 속에 담긴 세상을 발견하고 스스로 성장해 가는 한 소년의 모습을 담은 열두장의 그림은 조용한 갤러리에 들어가 이름 없는 화가의 혼이 담긴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말리크가 처음부터 책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하루 온종일 밖에서 뛰어 놀기만 좋아하고 책은 한 줄도 읽지 않았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말리크는 나가서 노는 게 더 이상 재미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말리크는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 혼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죠.

온갖 화려한 미디어가 범람하고 스마트폰이나 각종 게임기들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선뜻 손에 책을 쥔다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게다가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학원으로 내밀리는 상황에서 말이죠. 아이들에게 말로만 책을 읽으라고 할게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엄마 아빠가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