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빈집

이상교

할머니, 아기, 장롱, 항아리
강아지 집
다 데리고, 가지고
이사를 가면서
집은 그냥 두고 가더란다.

오막살이여도 내 집이어서
제일 좋은 우리 집이라고
자랑삼을 땐 언제이고,

다락, 툇마루, 문지방
댓돌이 울더란다.
미닫이문이야 속으로 울었겠지.
이사 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대문은 서운해서
열려 있는 그대로더란다.

그래서 말인데 얘들아,
우리 모두 함께 살러 가자.
안마당, 부엌 아궁이 앞, 지붕 위도
좋아.
툇마루 밑도 괜찮아.

들깨야, 엉겅퀴야, 도깨비 바늘아,
우리가 살러 가자.
대신 살러 가자.

이따금 드라이브 삼아 한적한 지방도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자주 눈에 뜨입니다. 시를 쓴 이상교 작가나 그림을 그린 한병호 작가 모두 이런 빈집을 보며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빈집”입니다.

“빈집”을 그리면서 사람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집을 그리려 했습니다.
고양이와 풀이 찾아와서 그 온기에 기대어 금방 쉴 수 있는 그런 집.
사람들은 왜 이런 집, 이런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걸까요?

– 그린이 한병호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비어있는 집들을 보며 글을 쓴 작가나, 그림을 그린 화가나, 그림책을 보고 있는 이들 모두 한결같은 향수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고향을 두고 떠나온 사람이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건 상관 없이 우리들 마음 속엔 늘 아득한 향수를 자아내는 무언가가 있나봅니다. 어떤 이에겐 그것이 어머니일 수도, 어떤 이에겐 어릴 적 감명 깊게 읽었던 한 권의 책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영화의 한 장면, 진한 추억으로 남은 옛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마음 속 깊은 곳의 추억과 향수를 되살려 주는 그림책 “빈집”입니다.


빈집
빈집

이상교 | 그림 한병호 | 미세기
(발행 : 2007/03/15)

빈집
시공주니어 표지

이상교 작가가 쓴 시에 도깨비 그림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한병호 작가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빈집”. 2007년 미세기출판사에서 출간될 당시에는 작곡가 신동일의 음악이 함께 곁들여졌었습니다. 첫 트랙은 노래 ‘빈집’을 어린이합창단이 불렀고, 2~7번 트랙은 해금, 클라리넷, 오보에, 플룻, 바순, 피리 순서로 피아노와 타악 반주에 실려 자유로운 변주곡을 연주합니다. 8번 트랙은 같은 노래를 성인 혼성 4부합창이 불렀고, 9번째 마지막 트랙은 연주곡입니다. 미세기출판사 버전은 현재 판매중지된 상태라 음악이 궁금한 분은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빌려서 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지난 8월에 시공주니어에서 출판한 “빈집”은 편집을 조금 바꾸어 재출간한겁니다. 책표지는 미세기 버전(좌측 그림)이 원작 시의 느낌을 더 살려 주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넉넉한 여백 속에 쓸쓸히 홀로 남은 빈집이 누구건 들어와 함께 살아주길 기다리는 듯 합니다.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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