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입니다

부모님은 부산에서 작은 중국집을 하셨습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두 분 힘으로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설거지하고 배달하느라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지요. 가게에는 살림방도 딸려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창 말썽 부릴 나이의 사 남매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가 뒤엉켜 복작대며, 안 그래도 고단한 부모님께 날마다 새로운 일거리를 보태 드리곤 했지요.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면서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자라셨어요. 어린 시절을 엄마 없이 힘겹게 보내셨지요. 아버지가 할머니를 다시 만난 건 어머니와 가정을 꾸리고 난 뒤였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신을 버린 할머니를 묵묵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억울해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으셨어요.

그저 한마디, “부몬데 우짤 끼고.” 그뿐이었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상처를 이해하셨습니다.

그런 두 분과 할머니를 지켜 보며 자랐습니다.

꼬박 삼 년 동안 제 손을 떠나지 않던,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제 마음 한 가닥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이 이야기를 이제 여러분 앞에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 작가 이혜란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찍은 가족사진 옆에 또 하나의 액자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액자 속엔 할머니 사진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림책 속의 ‘나’는 할머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할머니의 사진을 가족사진 곁에 세워 놓기까지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우리 앞에 꺼내 놓기까지 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망설이고 또 망설인 듯 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용기를 낸 작가 덕분에 우리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책도 좋지만 작가 후기가 참 인상적인 그림책 “우리 가족입니다”였습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글/그림 이혜란 | 보림
(2005/10/15)

※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우리 가족입니다”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책입니다. 그 기억 속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치매에 걸린 할머니로 인한 어린 소녀의 상처와 아빠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습니다. 묵묵히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와 아빠를 통해 가족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가는 소녀의 힘겨운 성장 스토리와 함께 말이죠.

연필선의 투박함으로 작가는 엄마 아빠의 녹록치 않지만 성실히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을 잘 살려내어 마치 오래된 앨범 속 흑백 사진들을 보는 듯 한 느낌의 그림책입니다.

이혜란 작가의 그림책 중에 ‘신흥반점’이 나오는 그림책이 한 권 더 있습니다. 바로 “뒷집 준범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아마도 다닥다닥 붙어 사는 이웃들과 오손도손 지내던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그림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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