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책표지 : 오픈키드
티베트 (원제 : Tibet Through The Red Box)

글/그림 피터 시스 | 옮김 엄혜숙 | 마루벌

※ 1999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 1999년 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특별상 수상작


피터 시스의 그림책들 중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그림책이 있습니다. 1998년에 출간한 “티베트”는 작가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고, 2007년엔 체코슬로바키의 근대사에 투영된 자신의 삶을 그린 “장벽“을 출간했습니다. 1997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 별 세계의 전령“에 이어 “티베트”와 “장벽” 두 권의 그림책 역시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티베트”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책 “티베트”의 원제는 ‘Tibet Through The Red Box’입니다. 아마도 출판사는 ‘티베트’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그림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오늘 제 그림책 이야기는 티베트보다는 원제인 ‘빨간 상자 속에 담긴 아버지의 삶’에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단절과 관계의 회복

피터 시스 티베트
아버지의 서재에서 오랜 세월 피터 시스를 기다렸던 빨간 상자

피터 시스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아주 오랜만에 집을 찾습니다. 아버지의 서재엔 아버지는 없고 책상 위에 빨간 상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상자를 열고 그 속에 담긴 아버지의 일기를 읽어 내려갑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가슴 한 켠에 담고 살아왔던 그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기억을 투영하면서 조금씩 오해를 풀고 해묵은 마음의 짐들을 하나씩 덜어냅니다.

피터 시스 티베트
빨간 상자 속에 담긴 아버지의 일기

“티베트”는 아버지의 일기와 피터 시스의 회상과 상념이 서로 맞물려 반복되는 구조로 내용이 전개되어 갑니다. 빨간 상자 속에 담긴 채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나서 자신의 기억과 대조하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피터 시스 티베트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표현한 그림

피터 시스는 아버지의 일기로부터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갑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늘 위 그림처럼 비어 있습니다. 늘 아버지를 그리워 하고 기다렸지만 자신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과 원망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컸던 모양입니다. 원망뿐이었다면 아예 아버지의 빈 자리조차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겠죠. 물론, 언제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비워두고 그리워했기에 어린 피터 시스가 느꼈을 아픔은 더 크고 그 상처가 오래도록 아물지 못했을테지만……

피터 시스 티베트
피터 시스가 그려낸 아버지의 기억과 경험들

아버지의 일기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던 작가는 이제 자신의 기억이 아닌 아버지의 기억으로 그 시절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기록들, 메모와 서술, 스케치들을 하나 하나 곱씹으며 아버지의 경험들을 자신의 것으로 그려냅니다. 징글벨 소년과의 만남, 거인들의 계곡, 새파란 호수,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포탈라까지. 그의 마음 속에 이 그림들이 하나 둘 완성되어가며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합니다.

피터 시스 티베트
아버지의 서재에서 상념에 빠진 피터 시스의 내면을 표현한 그림들

붉은 색은 해질녘 아버지 방을 채우는 빛깔입니다.
나는 그 방에 앉아 얼마나 많이 나의 학교 생활과 태도, 미래에 대해
혼자 묻고 또 대답했던가요.
붉은 색은 내 어린 시절의 색입니다.

초록색은 땅을 나타냅니다.
아버지 서재의 벽도 초록색입니다.
아직 어렸을 때 꿈에서 보았던 광대한 초록색 풀밭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버지의 필름 속에 담긴 식물들도 초록색이었습니다.

파란색은 물, 바다, 하늘의 색, 자유와 비행의 색입니다.
내 어린 시절 조국에서는 보기 드문 색이었습니다.
철의 장막에 싸여 상상밖에 할 수 없었던 색
아버지 서재 바닥도 짙고 어두운 파란색입니다.

아버지의 기억들을 하나씩 되짚어 나가면서 피터 시스는 깊은 상념에 빠져듭니다. 빨강, 초록, 파랑, 검정 각각의 색에 대한 작가만의 어떤 심상이 있는 듯 합니다. 붉은색과 초록색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자란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색인 듯 합니다.

피터 시스 장벽
그림책 “장벽”에서 ‘프라하의 봄’을 표현한 장면

그리고 파란색은 피터 시스의 조국에 공산주의와 철의 장막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시절 그가 아무도 모르게 꿈꾸었던 자유이며, 남몰래 동경하던 서구 문화입니다.(이 내용은 그의 또 다른 자전적 그림책 “장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검은색은 밤과 마법과 그림자와 미지의 색입니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모든 꿈은 검은색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검은색은 별과 희망을 빛나게 해 주는 멋진 배경입니다.

검은색에 대한 피터 시스의 감각은 남다릅니다. 모든 꿈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색, 별과 희망을 빛나게 해 주는 색…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검은색은 이제 아버지로 인한 오래 묵은 상처를 털어내고 아버지의 손을 맞잡게 해주는 색입니다.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던 피터 시스에게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왜 어두운 데 앉아 있니?”

아버지의 이 한 마디와 따스한 손길… 이제 피터 시스의 마음 속 한 구석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는 환한 곳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빨간 상자를 닫고 밖으로 나가서 내가 자라난 도시를 함께 거닐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내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나에게 빨간 상자는 티베트입니다.

빨간 상자와 티베트는 피터 시스와 아버지를 이어주는 고리이자 끈입니다. 빨간 상자 속에 담긴 아버지의 일기에는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나왔을까요? 티베트에서 지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니 당연히 ‘티베트’와 관련된 단어들이겠죠. 하지만 그 단어들보다 더 많이 등장했을 두 단어는 바로 ‘아들’과 ‘그리움’이었을겁니다.

기억은 괴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는다 해도 그것은 잊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을 다른 곳에 남겨둘 뿐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을 유지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또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록을 우리 회상 속으로 불러낸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

– 존 어빙(John Irving)

그림책 “티베트”를 읽고 나니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존 어빙의 말이 생각납니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른 채 메모해뒀었는데… 피터 시스와 아버지의 단절된 삶이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존 어빙의 말에 담긴 뜻이 얼핏 이해가 갈 것도 같습니다.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

피터 시스 티베트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피터 시스가 아이들에게 주는 부록 같은 선물입니다. 아버지의 일기 속에 담긴 만다라 풍의 그림들은 티베트의 향기가 물씬합니다. 중국의 야욕에 스러져 가는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를 안타깝께 지켜 보는 아버지를 통해 그들의 고난의 근대사도 엿볼 수 있구요.

원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이고, 정치는 섭정을 맡아 하는 이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선별된 어린 아이들 중에서 새로운 달라이 라마가 선택됩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는 영원히 죽지 않고 새로운 달라이 라마로 환생하는 것이라 믿었다고 해요. 그림책 “티베트”에 나오는 달라이 라마는 14대 달라이 라마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하고 국제 뉴스에서 이따금씩 보게 되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현재까지 살아 있고 인도에서 머물며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티베트를 집어 삼킨 중국은 티베트의 상징과도 같은 달라이 라마조차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서 최근 달라이 라마는 이를 막기 위해 자신에게서 대가 끊길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고 해요.(자세한 내용은 ‘달라이 라마 대 끊기나‘(2014/12/17) 기사 참고)


오늘의 그림책 “티베트”를 읽으며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빵 형(브래드 피트)의 팬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그 영화 바로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입니다.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가 1952년에 티베트에서의 경험을 쓴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죠.

티벳에서의 7년
영화 포스터 : NAVER 영화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주인공 하러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히말랴야 등정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티벳으로 떠납니다. 넉 달 후 돌아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7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고, 그가 떠나있던 시간만큼의 나이를 먹은 아이는 얼굴 조차 모르는 자신의 친부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하러와 아들 사이의 단절을 회복시켜 주는 매개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갈등의 원인이었던 ‘산’입니다. 영화는 하러와 아들이 함께 산에 오르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그림책 “티베트”에서 아버지와 피터 시스의 단절을 다시 이어 주는 매개체는 아버지가 전해 준 빨간 상자입니다. 오래도록 간직해 온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난 후 피터 시스와 아버지가 함께 산책을 하며 그림책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그림책과 영화는 단순히 티베트라는 배경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과 부자지간의 연결 고리 등이 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시간의 공백으로 인해 생긴 아버지와 아들 간의 단절의 상처를 위한 치유제로 갈등의 원인이었던 아버지의 삶과 꿈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많이 닮아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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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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