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원제 : The Wall – Growing Up Behind The Iron Curtain)
글/그림 피터 시스 | 옮김 안인희 | 아이세움
(발행 : 2010/11/25)

※ 2008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 2007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지난 주에 피터 시스의 그림책 “갈릴레오 갈릴레이 – 별 세계의 전령“과 “티베트” 두 권을 소개했었는데요. 이번 주에도 지난 주에 이어서 그의 자서전적 그림책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의 대부분을 빨갛게 물들인 지도, 가만 들여다보니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부분에도 빨간색이… 여기는 쿠바겠죠. 그리고 아시아의 끝자락에도 삐죽 튀어 나온 빨간색… 북한이네요. 빨간색은 소련의 지배하에 있는 동유럽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 열강의 관리하에 있는 서유럽이 경계를 이룬 곳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 그 나라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작은 점 하나… 바로 피터 시스가 태어난 곳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독립국들이 생겼다. 체코슬로바키아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민주주의를 겨우 20년 경험하고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이 해방을 맞은 여러 나라를 통치했다. 소련이 동부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독일의 동쪽 부분을, 독일의 나머지 부분은 미국이 이끄는 서쪽이… 동쪽 블록은 소련의 빈틈없는 감시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동쪽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살고 싶어하지는 않았기에 많은 사람이 서쪽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소련은 대량 탈출을 막기 위해서 동유럽의 국경선 대부분을 요새처럼 만들어 길을 가로막고, 베를린 시를 둘로 나누는 장벽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유럽은 상징적, 이념적, 실질적으로 둘로 나뉘었는데, 윈스턴 처칠은 이 장벽을 ‘철의 장막’이라 불렀다.

1950년대에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갖게 되었지만 양쪽 모두 핵무기를 써서 상대방과 전쟁을 했다가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강대국은 이후 40년동안 전면전은 피하면서도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대립했다. 이 기간을 ‘냉전’이라고 불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냉전은 계속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시작될 무렵 철의 장막의 붉은 쪽, 곧 공산주의 쪽에서 태어났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피터 시스는 자신의 조국을 둘러싼 근대사를 한 페이지 분량의 글로 요약합니다. 분량은 비록 한 페이지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격동의 역사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 격류 속에서 자라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이 느껴집니다.

※ 참고로 피터 시스가 이 책을 내놓은건 2007년입니다. 그보다 훨씬 앞선 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미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하나였던 나라가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다른 종교와 정치 경제적 이념을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민족들이 원래의 독립을 유지하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시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조국을 ‘체코슬로바키아’라고 표현합니다. 냉전 시대가 시작될 무렵 철의 장벽 너머 붉은 쪽에서 태어난(피너 시스는 1949년생입니다) 그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민족주의나 종교와 문화를 앞세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없었던 장벽 너머의 경직된 ‘체코슬로바키아’이기 때문이겠죠.

두뇌 세척의 시대 vs. 프라하의 봄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태어날 때부터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기때문에 피터 시스에게는 당시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을 설명하는 그의 글 중에 ‘명령을 듣고 질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명령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한 그에게는 어쩌면 감시와 통제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시대를 ‘두뇌 세척(=세뇌)의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티베트

하지만, 공산주의니 체제니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뿐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로운 사고를 추구하게 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피터 시스는 자라면서 차츰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명령받은 것이 아닌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몰래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비틀즈가 되길 바란다.
긴 머리는 서쪽 퇴폐의 상징이다.
경찰에게 발각되면 즉각 자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록 음악은 사회주의 예술 원칙에 맞서는 것이다

늘 빨간색 그림만 강요 받던 그는 파란색 그림을 그리기를 꿈 꾸기 시작합니다. 파란색 뿐만 아니라 온갖 자유의 빛깔로 가득찬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리고 맞이한 프라하의 봄. 소련에서부터 시작된 스탈린 격하주의 운동의 물결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자유화의 싹을 틔웁니다. 주도세력이던 스탈린주의자들이 힘을 잃고 개혁파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피터 시스와 국민들은 자유와 희망을 느낍니다.

피터 시스는 그 시절의 가슴 벅찬 희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하지만 4개월만의 그들의 희망은 소련의 탱크에 짓밟힙니다. 소련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던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두려워 무력 침공을 했고 개혁파들을 모두 숙청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의 봄을 맞아 희망에 들떴던 피터 시스는 절망에 빠져 탄식합니다. 오른쪽 그림에 보면 프라하 시내를 빨간점들로 가득 메꿔 놓았습니다. 바로 소련의 탱크들입니다. 그리고 뭉크의 ‘절규’ 비슷한 그림을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절망에 빠진 것 같기도 한 그의 모습… 프라하의 봄이 가져온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버린 자신의 심정을 담은 한 마디 말 속에 당시 프라하 시민들 모두의 절규가 담긴 듯 합니다.

러시아 탱크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도시를 점령하고 골목마다 도로마다 사람들의 자유를 가로막은 채 서 있는 러시아의 탱크. 과연 이 탱크들이 프라하에서 피어나는 자유에 대한 꿈과 열망을 막을 수 있을까요?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소련이 침공한지 열 달만에 1960년대 미국 대중 문화의 아이콘인 밴드 ‘비치 보이스‘가 공연을 위해 프라하에 옵니다.(1969년 6월 17일에 콘서트가 열렸다고 합니다.) 자유와 변화의 세대를 대변하는 록 음악 팬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된 겁니다. 자유와 희망이 탱크에 무참히 짓밟히고 다시 철의 장막의 어둠에 뒤덮였던 프라하에 다시 한 줄기 빛이 나타났습니다. 경찰이 개들을 데리고 콘서트장을 감시하지만 프라하의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자유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콘서트 장의 뜨거운 분위기, 얼핏 보면 비치 보이스 콘서트 현장을 스케치한 것 같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토해내는 젊은이들의 물결에 무너져 버리는 폴리스 라인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련의 탱크도, 험악한 인상의 경찰과 으르렁거리는 경찰견들도 자유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체제와 시대적 상황을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들

피터 시스는 그가 경험한 근대사를 신문의 만평처럼 한 눈에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통찰력과 위트 넘치는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그림마다 담겨진 사건과 기록들을 찾아 보는 재미도 아이들에게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위 그림에서 왼쪽 그림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이념교육을 받던 어린 시절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각종 행사에 동원되고, 종교 활동을 방해하고, 부모를 감시해야한 했던 아이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맨 아래의 소련의 상징인 망치와 낫을 만들어낸 집단체조(매스게임) 장면은 사실 낯설지가 않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저 집단체조때문에 엄청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오른쪽은 핵전쟁의 두려움에 쌓인 채 살아가야만 했던 냉전 시대를 한 눈에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단지 소련만을 비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소련이 쿠바에 핵폭탄을 설치하자 쿠바를 포위하는 미국의 핵잠수함들,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설하던 케네디가 암살 당하는 그림, 평화롭게 농사짓고 있는 베트남의 농민들 위로 지나가는 전투기 등 그런 시대를 만들어낸 두 나라 모두를 풍자하는 듯 보입니다.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

피터 시스는 그림책 “장벽” 속에 통찰력과 위트 넘치는 그림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기도 철의 장막 너머의 삶과 근대사를 보여주는 데에 활용했습니다. 강변을 산책하다 마주친 흑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루이 암스트롱이었다는 이야기, 록 음악을 하기 위해 직접 전자기타와 앰프 등을 만드는 이야기들, 청바지에 대한 규제가 풀려 기뻐하지만 청바지를 미처 입어보기도 전에 다시 서쪽 퇴폐의 상징으로 규제하는 바람에 낙심한 내용 등 짤막한 메모와 기록들이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더해줍니다.

피터 시스는 왜 이 그림책 “장벽 :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를 만들었을까요? 지난 번 “갈릴레오 갈릴레이 – 별 세계의 전령“에서도 말했듯이 피터 시스의 그림책은 아이들 공부에 좋은 인덱스 역할을 해줍니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다양한 키워드들과 사건들에 대해서 찾아 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세계사 공부가 될 겁니다.

피터 시스 역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빠의 삶에 대해서 들려 주고자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날 때부터 자유로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죠.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의 그림책 이야기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과거에는 프라하가 두려움과 의심과 거짓말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가 쉽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을 말로 설명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려 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내 삶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려서 보여 주기로 했다.

피터 시스


칼데콧 수상작 보기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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