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상 수상작 : 까마귀 소년 (1956)

까마귀 소년
책표지 : 비룡소
까마귀 소년 (원제 : Crow Boy)

글/그림 야시마 타로 | 옮김 윤구병 | 비룡소

※ 1956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까마귀 소년”을 처음 만난 것은 제 딸아이가 어렸을 때로 10여 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늘 표지 그림부터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 제게 이 그림책의 표지 그림이 준 첫 느낌은 괴기스러움이었어요. 일본 그림책 특유의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은 없고 날카로운 펜을 마구 그어 표현한 듯 보이는 그림은 뭔가 불안하다 못해 괴기스럽다는 느낌까지 들게했죠. 하지만 그림책을 다 읽고 난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던 깊은 울림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까마귀 소년

학교에 간 첫 날 아이 하나가 없어지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아이는 어두컴컴한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었어요.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던 그 작은 아이는 그 때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땅꼬마’라고 불렸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무서워해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했어요. 땅꼬마는 공부 할 때도, 놀 때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외톨이였어요.

땅꼬마와 다른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하얗고 넓은 여백은 따돌림 당하는 땅꼬마와 아이들간의 거리감을 보여주며 혼자인 소년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까마귀 소년

얼마 지나지 않아 땅꼬마는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으려는 듯 사팔뜨기 흉내를 낸다거나, 오랫동안 교실 천장이나 책상의 나뭇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거나,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시간때우기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눈을 감으면 들리는 모든 소리에 집중하기도 하고, 때론 기어다는 지네며 굼벵이들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땅꼬마를 다들 바보 멍청이라고 놀려대곤 했어요.

까마귀 소년

아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땅꼬마는 날마다 채소 잎으로 싼 주먹밥을 들고 학교에 왔어요.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도롱이를 몸에 두르고 한결같이 학교에 왔죠.

까마귀 소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 모두 6학년 졸업반이 되었을 때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요. 선생님은 늘 웃는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이소베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뒷산에 자주 올라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땅꼬마는 머루며 돼지감자가 자라는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있었고, 우리 반 꽃밭을 만들 때도 땅꼬마가 꽃이란 꽃을 죄다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선생님은 무척 좋아하셨어요.

까마귀 소년

선생님은 땅꼬마가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잘 그렸다고 칭찬하셨고, 알아보기 힘든 땅꼬마의 비뚤빼뚤한 붓글씨도 좋아하셨어요. 아무도 없을 때면 땅꼬마랑 얘기도 자주 나누셨지요.

까마귀 소년

그 해 학예회에는 땅꼬마도 무대에 섰어요. 모두 깜짝 놀라 수군대기 시작했죠.

“아니, 저게 누구야? 저 멍청이가 무얼 하러 저기 올라갔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들과 땅꼬마 사이에는 여전히 하얀 여백만큼의 거리감이 존재합니다. 땅꼬마가 올라선 무대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하얗고 넓은 여백이 아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검은 실루엣으로 그려진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땅꼬마를 바라보는 그들의 차디찬 눈빛이 느껴집니다.

땅꼬마가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 낼 거라는 선생님의 소개에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무대에 선 땅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까마귀 소년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부터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 소리,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까마귀가 우는 소리, 행복할 때 내는 까마귀 소리까지.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마음이 먼먼 산자락으로 끌려갔어.
땅꼬마가 타박타박 걸어 학교로 오는 저 먼 곳으로 말이야.

마지막으로 고목나무에 앉아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듣자 모두들 땅꼬마네 식구들이 사는 외딴 곳이 모두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어요.

까마귀 소리가 메아리 치면서 들리는 듯 표현한 이 장면을 보다보면 까악까악 까마귀 소리가 울리는 먼먼 산골짜기 그 곳 땅꼬마의 집이 아련하게 떠오르는것만 같습니다. ‘모두 마음이 먼먼 산자락으로 끌려 갔다’ 는 표현 그대로 말이죠.

까마귀 소년

선생님은 땅꼬마가 어떻게 그 소리를 배우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주셨어요.

이소베 선생님이 일어나 설명을 했단다.
땅꼬마가 어떻게 해서 그 소리들을 배우게 되었는지 말이야.
동틀 무렵 학교로 타박타박.
해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여섯 해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타박타박.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울었어요. 땅꼬마가 6년 동안 그렇게 타박타박 매일같이 먼 곳을 오가는 동안 다들 땅꼬마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를 생각하면서요.

곧 졸업식 날이 왔고, 졸업식에서 땅꼬마는 반에서 유일하게 6년 개근상을 탄 아이였어요.

까마귀 소년

졸업 후 가끔 읍내에 심부름을 나갈 때면 식구들이 구운 숯을 팔러나온 땅꼬마를 만나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애를 땅꼬마라고 부르지 않아요. 모두들 그 애를 까마둥이라고 불렀어요.

“안녕, 까마둥이!”

까마귀 소년

그럴때면 까마둥이는 그 이름이 싫지만은 않은 듯 씩 웃었어요. 숯을 다 팔면 그 애는 필요한 물건을 사서 먼 산자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애가 사라진 산길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였어.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 소리가 말이야.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 학교를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하는 땅꼬마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어려서, 경험이 부족해서, 배경이 든든하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수많은 갑질 속에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속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성실하게 등교하는 힘없고 외로운 약자 까마귀 소년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 어쩌면 이 그림책은 그런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이야기여서 더욱 찡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네요.

진정한 교육은 따뜻한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신 선생님,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가 겁많고 수줍음 많은 땅꼬마를 당당히 무대위에 설 수 있게 했고, 땅꼬마를 놀렸던 사람들의 시선을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겁쟁이 ‘땅꼬마’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까마둥이’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참교육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그림책 “까마귀 소년”이었습니다.

작가 야시마 타로는 1908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반군국주의 활동을하다 미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작가 생활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에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단순하고도 정교하게 그린 그림을 입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한 그는 1956년 “까마귀 소년”, 1959년 “우산”, 1968년 “Seashore Story” 로 칼데콧 명예상을 세 번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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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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