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상 수상작 :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1959)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책표지 : Daum 책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원제 : Chanticleer And The Fox)
글/그림 바버러 쿠니 | 옮김 박향주 | 시공주니어
(발행일 : 1997/6/16)

※ 1959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캔터베리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순례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오가는 길에 나눈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1390년대 후반 제프리 초서의 대표작입니다. “챈티클리어와 여우”“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수녀원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바버러 쿠니가 개작해서 만든 그림책으로 1959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작품이에요.

중세 기독교적 신앙심과 교훈을 원문에 가깝게 재현해낸 이 작품 속에는 바버러 쿠니 특유의 절제된 색감과 섬세하게 묘사된 그림이 이야기의 느낌을 한층 더 잘 살려주고 있어요.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옛날 옛적, 작은 오두막집에 가난한 과부가 두 딸을 데리고 알뜰하고 바지런하게 살고 있었어요. 그을음투성이 침실과 부엌에서 그들이 매일 같이 먹는 것은 우유와 거무스름한 빵 뿐이었죠.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과부의 오두막집 작은 뜰에는 챈티클리어라는 수탉이 살고 있었어요. ‘꼬끼오’ 하고 우는 소리가 교회 오르간 소리 보다 맑은 챈티 클리어는 울음 소리만큼이나 멋진 볏과 부리 깃털과 발톱을 가진 수탉이었어요.

최고급 산호보다도 붉은 볏, 흑옥처럼 새까맣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부리, 푸른빛이 도는 발가락, 백합보다도 하얀 발톱, 황금빛 깃털을 가진 멋쟁이 수탉 챈티클리어에게는 아름다운 암탉이 일곱 마리가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파틀렛이라는 암탉이 챈티클리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암탉이었죠.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오두막집 근처 작은 숲 속에는 사악한 잔꾀로 가득한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바버러 쿠니는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를 노리는 잔꾀에 능한 여우를 묘사하는 데에 최대한 색을 절제했어요. 여우의 혀만 욕망을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나머지는 모두 검정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챈티클리어는 여우가 산책로 안뜰에 숨어 들어와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 순간 여우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는 딱 한가지, 바로 천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챈티클리어의 노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우쭐해진 챈티클리어는 여우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줄도 모른 채 두 날개를 퍼덕이며 목을 앞으로 쭉 뻗고 두 눈을 꼭 감고 목청껏 ‘꼬끼오’ 하고 외쳤어요. 그 순간을 여우는 놓치지 않았죠. 챈티클리어의 목을 덥석 물고는 숲속으로 냅다 달아나 버렸어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신감 넘치게 한 곡조 뽑던 챈티클리어의 운명은 이제 여우에게 맡겨지고 말았습니다.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암탉들의 비명에 과부와 두 딸은 소리를 지르며 여우를 쫓아갔어요.그 비명 소리에 작은 농장에 살고있던 암소와 양이며 암퇘지까지도 여우를 쫓아 뛰기 시작했어요. 이웃집 오리들은 꽉꽉거렸고 거위는 겁에 질려 푸드득 날아올랐고 벌통에서는 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어요.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 같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어요.

그나저나 여우에게 물려가던 수탉 챈티클리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

여우의 달콤한 말에 속아 처참한 운명에 처했던 챈티클리어는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여우님.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하느님 굽어살피소서. 당장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썩 꺼져라. 이 뽐내기 좋아하는 시골뜨기들아! 이제 난 숲에 다 왔다. 지금부터 수탉은 여기 있을거다. 너희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난 맹세코 머지 않아 이 수탉을 잡아먹을 테다’ 하고요.”

챈티클리어의 말에 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맹세코 그렇게 될 거다’라고 말했고 여우가 입을 벌리기가 무섭게 챈티클리어는 도망쳐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으흠, 이번에는 여우가 챈티클리어의 꾀에 속아 넘어갔네요. ^^

밥이 저 위로 도망을 쳤으니 어쩔 수 있나요. 여우는 놀라게 했다면 미안했다면서 나쁜 생각에서 그랬던게 아니라며 제발 내려와서 내 말 좀 들어보며 챈티클리어를 다시 살살 꾀어낼 수 밖에요.

챈티클리어와 여우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싫습니다. 절대로 싫어요. 당신이 아무리 부추겨도 다시는 눈을 감고 노래하지 않겠습니다. 하느님은 똑바로 지켜보아야 할 때에 두 눈을 감아 버리는 자에게는 절대로 은총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여우는 말했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나 하느님은 잠자코 있어야 할 때에 참지 못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에게는 불행을 주시지요.”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멋진 목소리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챈티클리어, 여우의 칭찬에 혹해 하루 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으니 이제 좀 겸손해졌을까요?

기독교적 신앙심 속에 ‘아첨하는 말에 속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그림책 “챈티클리어와 여우”. 자신의 작품 속에 풍부한 색감을 사용해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바버러 쿠니는 이 그림책에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작은 시골 농장의 풍경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색감을 절제하고 흑백의 기본 색상 위에 네 가지 정도의 색상을 입혀 표현했어요. 물론 그녀 특유의 세련미 넘치는 그림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한바탕 소동으로 웃어버리기엔 여우와 수탉 챈티클리어의 마지막 대화가 너무나 심오해 몇 번이나 마음에 되새기며 곱씹어 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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