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아나톨

(원제 : Anatole)
이브 티투스 | 그림 폴 갈돈 | 옮김 정화진 | 미디어창비
(발행 : 2017/01/25)

※ 1957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그림책 제목 글자에 입혀진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의 삼색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나톨”은 빨간 스카프에 베레모를 쓰고 열정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생쥐의 이름이에요. 예술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생쥐 아나톨은 프랑스 파리 근처 작은 마을에 사는 생쥐랍니다.

아나톨

파란 하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간 지붕 집들… 한눈에 봐도 프랑스임이 확실한 조그만 마을입니다. 다락방에서 한가하게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아나톨은 아내 두세트와 여섯 명의 자식들과 함께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생쥐입니다.

아나톨

밤이 찾아오면 아나톨은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구하기 위해 파리로 갔어요.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 아는 비밀통로로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숨어들어가서 먹다 남긴 음식들을 가져왔어요. 그러던 어느날 아나톨은 우연히 사람들이 쥐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아나톨은 이제껏 사람들이 쥐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자신이 이토록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하게 여겨졌죠. 자괴감에 빠진 아나톨에게 친구 가스통은 이렇게 말했어요.

“자존심 따윈 버려, 아나톨!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아나톨

하지만 아나톨의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 아나톨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아내 두세트가 ‘사람들에게 보답으로 뭔가를 해 줄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했을 때 아나톨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아나톨은 ‘최고로 맛있음’, ‘매우 맛있음’, ‘맛있음’, ‘ 별로 맛없음’, ‘진짜 맛없음’이라고 쓴 종이들을 잔뜩 만들어 가방에 넣고는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파리로 향했어요. 아나톨이 자전거를 세운 곳은 뒤발 치즈 공장 앞이었답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조그만 가방을 들고 뒤발 치즈 공장 앞에 선 아나톨, 그가 계획한 일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아나톨

아나톨은 비밀통로를 따라 내려가 치즈 맛을 보는 감별실로 들어갔어요. 그곳에 놓인 다양한 치즈들을 하나씩 맛본맛에 대한 평가를 적은 종이를 치즈 위에 꽂았습니다.

별로 맛없음
염소젖을 더 넣어요
아나톨

아나톨의 평가는 단순히 맛있고 없음을 떠나 치즈별로 좀 더 세심하게 이루어졌어요. 맛없는 치즈에 염소젖을 더 넣으라거나 양파를 더 갈아 넣으라는 조언을 했고, 매우 맛있는 치즈에 대해서도 식초를 조금만 더 넣으라는 식으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죠. 치즈 좋아하는 생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치즈 시식 평가를 마친 아나톨, 열심히 일했으니 그는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치즈를  당당하게 가져갔어요.

아나톨

지금까지 잘 팔리지 않던 뒤발 치즈는 그날 이후 최고의 미식가 아나톨 덕분에 프랑스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큰 돈을 벌게 된 뒤발 씨는 보답을 위해 아나톨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쪽지를 남겼지만 아나톨은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답장을 보냈어요. 뒤발 씨는 그 비밀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약속과 함께 치즈 맛을 감별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아나톨이 언제든 자신들이 준비한 치즈를 맘껏 즐길 수 있도록 매일 밤 최고급 프랑스 빵과 맛난 음식을 차려 놓겠다는 편지를 아나톨에게 전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생쥐 아나톨이 자신에게 몰아닥친 커다란 좌절감을 이겨내고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담긴 “아나톨”은 1957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발단- 시련 전개- 극복이라는 전형적인 전래동화식 서술 구조를 갖춘 이 이야기는 이브 티투스의 재미난 스토리에 흑백으로 표현한 기본 그림 위에 세 가지 색상만사용해 인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폴 갈돈의 그림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어요. 60년이라는 긴 시간의 세례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명작의 위대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과 두루두루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아나톨을 보며 행복의 의미를, 삶의 의미를 되짚어 봅니다. 사는 건 뭐 다 그래… 넋두리를 되뇌며 어쩌면 삶의 한복판에서 서글픔에 빠진 어른들이 읽어보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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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수
정경수
2017/02/18 01:59

책을 읽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꼭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의 만족과 인정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계속된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내가 선택한 결정이 나와 우리를 더욱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아나톨처럼 자신의 자존심도 세우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일이지만, 애석한 것은 아나톨이 쥐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아나톨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친구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냥 무시했을까? 아나톨처럼 뭔가를 증명하려 애썼을까? ㅎㅎㅎ 그림책을 읽고 삶을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항상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17/02/20 09:25
답글 to  정경수

아나톨 자기 스스로에 대한 증명 아니었을까요? ^^
늘 지켜봐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경수님.
월요일이네요~ 힘찬 한 주 시작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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