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우리 그림책이 많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다섯 권 중 세 권이 우리 작가들의 그림책입니다. 좋은 그림책에 굳이 국적을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작가들이 들려주는 우리 이야기와 우리 감성이 배인 그림들을 더 많이 보며 우리 아이들이 자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명세보다는 좋은 작가를 발굴해내려는 출판사들의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에 긍정적이기도 하고 말이죠.

지난 석달간 신간 소식들을 받아보는 중에 특이한 점은 한 번에 아주 많은 그림책들을 쏟아내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거겠지만 대부분은 번역 그림책들입니다. 그 중 한 곳은 1분기에만 출간한 그림책이 60권이 넘습니다.(번역서 80% 이상) 독자들 입장에서야 좋은 그림책이 많이 나올 수록 좋지만 이런 그림책들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대형 서점들에서 온라인 구매는 가능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는 재고가 없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일례로 리비 글래슨과 프레야 블랙우드가 함께 작업한 최신작은 아무리 기다려도 매장엔 진열되지 않더군요. 아마도 온라인 판매 위주거나 전집 형태나 교육 패키지를 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그럼 지금부터 3월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다섯 권 함께 보도록 하시죠~ ^^

※ 순서는 평점이나 순위와는 무관합니다.


꿈틀
꿈틀

글/그림 김준철 | 양철북
(발행 : 2015/03/18)

작은 병실 침대 위에 주사와 의료장비들에 연결된 채 누워 있는 작은 아이.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보이는 약하디 약한 존재. 하지만 아이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자신을 병상 위에 가둬 놓은 병든 몸으로부터 벗어나 새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고픈 꿈.

아이가 새가 되고싶은 건 그저 자유로이 날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이따금씩 TV를 통해 들려오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소식,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꿈틀’거리는 것 뿐이라는게 아이는 견디기 힘듭니다. 새나 구름 또는 바람이 되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아이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꿈틀”에 나오는 병상에 누운 채 하늘을 날아 오르는 꿈을 꾸는 아이는 김준철 작가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재수하던 스무 살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난치병과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투병 중 그림책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꿈처럼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방법이 그림책 속에 있음을 깨달은 작가는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병마와 싸우며 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만든 첫 번째 그림책이 바로 “꿈틀”입니다.

“꿈틀”은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쉬면서도 고통받는 이웃을 돌아 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꿈틀’ 거리는 사랑의 몸짓이고, 자신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저마다의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림책을 통해 그들에게 건네는 ‘꿈의 틀’입니다.


누굴까? 왜일까?
누굴까? 왜일까?

(원제 : Qui Quoi Qui?)
글/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 옮김 김벼리 | 한울림어린이
(발행 : 2015/03/10)

프랑스어 제목 ‘Qui Quoi Qui’ 는 영어로 ‘Who What Why’라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매 그림마다 주어지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고(who), 무엇이 다른지(what),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why) 이야기 나누는 그림책입니다.

열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죠? ^^ 자~ 아래 그림에서 어젯밤에 잠을 쪼끔밖에 못 잔 친구는 누구일까요?

누굴까? 왜일까?

엄마 아빠들은 당연히 그림 우측 하단에 친구에게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동물 친구일거라고 답을 하겠죠? 졸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은 또 다른 답을 이야기 할지도 모릅니다. 그림 속 친구들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 풍선이나 가면 등의 설정 등이 수많은 암시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북치는 남자 아이야. 졸지 않으려고 자꾸 북을 치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아이들이 아주 좋아할, 하도 봐서 금방 닳아버릴지도 모를 그림책 “누굴까? 왜일까?”를 볼 때 엄마 아빠들이 주의해야 할 딱 두 가지는 첫 번째는 정답은 그림책을 보는 아이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 두 번째는 정답과 이유를 억지로 묻지 말라는 겁니다. 학습지가 아니라 그림책이잖아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게 엄마 아빠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계세요!

“누굴까? 왜일까?” 2편도 나왔습니다.(2015/07/02 업데이트)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글/그림 권혁도 | 길벗어린이
(발행 : 2015/03/01)

“배추흰나비가 백 개의 알을 낳는다면, 과연 몇 마리나 나비가 될 수 있을까요?
백 개의 알 가운데 대부분은 알 또는 애벌레 시절에 누군가의 먹이가 되거나 빗물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합니다.
나풀나풀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배추흰나비도 나비가 되기까지 힘겨운 여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생물의 먹이가 되어 생태계 전체에 기여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 그림책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설명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권혁도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한 후 20여 년 가까이 우리 자연의 동식물들을 세밀화로 그려왔습니다. 투철한 장인 정신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참신한 기획이 아이들을 위한 좋은 과학그림책을 만들어냈습니다.

‘배추흰나비가 100개의 알을 낳는다면 과연 몇마리나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그림책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의 독특함은 배추흰나비 입장에서만 바라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배추흰나비를 소재로 배추흰나비에 기생하거나 천적인 곤충들의 관점까지도 함께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은 다각적인 면에서 자연과 생태를 관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우리 삶의 다양함과 저마다 지닌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도 함께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리뷰 보기


아리의 빨간 보자기
아리의 빨간 보자기

글/그림 문승연 | 사계절
(발행 : 2015/03/30)

‘참 예쁜 그림책!’

“아리의 빨간 보자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참 예쁜 그림책입니다. 그림도 참 예쁘고, 친구들과 나누는 아이의 마음도 참 예쁩니다.

봄입니다. 초록 머리의 아리는 봄을 맞아 친구들을 찾아 나섭니다. 빨간 보자기를 가슴에 안고서 말이죠. 빨간 보자기 속엔 과연 뭐가 들어 있을까요? 봄맞이 나들이에 나선 아리가 친구들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보자기 속에 담긴 아리의 예쁜 마음들이 펼쳐집니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에 꽃들이 봉오리를 터트리듯이, 봄비 내리는 날 창문에 내놓은 작은 화분에서 봄향기가 가득 퍼져나가듯이 말입니다.

굳이 이야기 없이도 그림 한 장 한 장 벽에 걸어놓고 싶을만큼 곱고 화사한 봄날 같은 그림책 “아리의 빨간 보자기”입니다.

“아리의 빨간 보자기” 리뷰 보기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원제 : Where’s the Elephant?)
글/그림 바루 | 사파리
(발행 : 2015/02/20)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제목과 책표지를 유심히 살펴보다 그림책을 펼쳐듭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다 보면 제목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목만 보고는 책표지에서 나무 뒤에 숨은 코끼리를 찾고 나서부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열심히 코끼리만 찾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없어진 건 코끼리가 아니라 숲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개성 넘치는 그림 작가 바루의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림책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는 아직 글을 못 읽는 아이들도 혼자서 쉽게 환경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 그림책보다 더 쉽고 명쾌하게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알록달록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 속에 자연과 환경 파괴에 대한 따끔한 경고를 담은 그림책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이 그림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 중에 우리 숲을 살리고, 우리 강을 되살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지켜내는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리뷰 보기


※ 번외

3월의 추천 신간에 포함시키진 않았지만 좋은 그림책이라고 생각되는 몇 권을 더 골라봤습니다.

“딴 생각 중”은 그림과 내용 모두 아주 멋진 그림책입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어 번외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발표가 있었는데 총 5개 부문 모두 우리 작가들이 선정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3월에 출간된 두 권의 그림책 역시 번외로 함께 소개합니다.

  • 딴생각 중 (글/그림 마리 도를레앙, 옮김 바람숲아이, 한울림어린이) : 그림 속 노란 깃털이 상징하는 ‘딴 생각’은 나만의 즐거운 상상, 나만의 꿈입니다. 어릴 적부터 간직해 온 노란 깃털로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모습을 통해 나만의 꿈을 꾸며 살아가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이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을 때 ‘딴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고 훼방놓는 엄마 아빠들에게 던지는 경고이기도 하구요~ ^^
  • 10초 (글/그림 이명애, 반달) : 환경에 대한 메시지,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플라스틱 섬”의 이명애 작가의 새 그림책입니다. “10초”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담겨진 메시지는 전작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좀더 강한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과학과 문명, 그리고 그것들의 축적으로 이뤄낸 발전이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글 없는 그림책 특유의 매력은 보는 이들의 상상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 나의 작은 인형 상자 (글/그림 정유미, 컬쳐플랫폼) : 아동도서전에 출품한 책이긴 하지만 시중 서점에 가면 어린이 코너에서 찾을 수 없는 그림책입니다. 내용이나 책값 모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아닌가 싶습니다. ^^ 참고로 정유미 작가는 “먼지 아이”(2014년 New Horizons Winner)란 그림책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라가치상 수상입니다. . ※ 북트레일러 보기

※ 볼로냐 라가치상(Bologna Ragazzi Award)

Fiction, Non Fiction, New Horizons, Opera Prima 총 4개 부문에서 좋은 그림책을 선정,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엑스포를 개최하는 기념으로 ‘Book & Seeds’라는 특별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이 정규 4개 부문 뿐만 아니라 특별상 부문까지 모든 부문에 골고루 선정되었습니다.(시상은 각 부문별로 ‘Winner’와 ‘Special Mentions’을 선정하는데 각각 대상과 우수상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작가들은 모두 ‘Special Mentions’에 선정되었습니다.)

‘New Horizons’는 아랍,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권의 출판문화 장려를 위한 상이고, ‘Opera Prima’는 주목받는 신예 작가의 첫 작품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노란 장화

그림책 “위를 봐요”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정진호 작가의 새 책이 나온다길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노란 장화” (글 허정윤, 그림 정진호, 반달)입니다. 비오는 날 노란 장화 신고 고인 빗물 위로 텀벙거리며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내용도 나쁘지 않았고 그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어딘가 좀 아쉬움이 남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출판사 서평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깨알같은 반전이 숨어 있다며 힌트까지 제시했는데…… 글쎄요…… ^^

스티븐 킹은 편집자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작가입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다보니 얼핏 생각하기에 편집자나 출판사가 그의 원고에 손을 대기 힘들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은 쓰는 데에만 집중하고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은 편집자의 몫이라는게 스티븐 킹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편집자가 빼라고 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지워 버리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하면 불평 한 마디 없이 더 쓴다고 합니다.(참조 :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김영사)

그림책 역시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소설보다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노란 장화”는 작가들이 담고 싶었던 아이들의 마음은 그대로 유지하되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좀 더 채워주는 편집자의 역할이 있었다면 “노란 우산”을 잇는 또 하나의 명작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림책입니다.

가온빛지기

가온빛 웹사이트 및 뉴스레터 운영 관리, 가온빛 인스타그램 운영 | editor@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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