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알종알 말문이 트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아이들은 자신만의 상상 속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혼자만의 비밀친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상 속 비밀친구’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거나 자신 주변에 있는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또 ‘상상 속 비밀친구’를 통해 아이는 나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 되어 볼 수도 있고, 자신을 괴롭히는 무엇인가를 넘어서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탐구해 보면서 정체성을 발견해 간다고 합니다.

그림책 속에서는 ‘상상 속 비밀친구’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이번 테마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본 아이의 상상 속 나만의 비밀친구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들을 골라보았습니다.


알도
알도

(원제 : Aldo)
글/그림 존 버닝햄 | 옮김 이주령 | 시공주니어
(발행 : 1996/07/15)

알도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소녀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혼자 있는 동안 텔레비젼도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책도 보고 엄마랑 놀이터도 가고 외식도 합니다. 엄마랑 놀이터에도 가고 외식할 때는 정말 신난다는 소녀의 독백과 달리 소녀는 친구와 함께 있는 아이들을 바라 보고 있어요. 말과 다른 행동, 여백이 많은 그림에서 소녀의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소녀에게는 알도라는 이름의 비밀친구가 있어요. 알도는 소녀가 혼자 되거나 힘든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찾아와 곁에 있어 주는 특별한 친구예요.

알도

학교 화장실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도 알도는 어김없이 찾아와 주었죠. 알도는 늘 소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타나 구해주거나  혼자 있는 소녀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어요. 소녀는 알도와 함께 하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요.

알도

하지만 알도 얘긴 누구에게도 할 수 없어요. 모두들 믿지도 않을 테고 비웃을테니까요.

소녀가 알도와 함께 하는 장면은 언제나 이렇게 여백 없이 배경까지 꽉 채워져 있어, 소녀 혼자 외로워 할 때나 두려워 할 때의 페이지와 대조 됩니다.

알도가 소녀를 도와주지 못할 때도 있지만 단짝 친구라는 사실은 언제나 변함 없습니다. 소녀는 알도가 언제나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알도

물론 알도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도 있겠지만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알도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야.

혼자였던 소녀가 이렇게 친구들과 활짝 웃으며 그네를 타는 장면, 그리고 알도가 언제나 내 곁에 있을거라는 독백으로 그림책은 마무리 됩니다.

소녀는 시종일관 무표정 하거나 알도와 함께 있을 때 싱긋 웃는 정도예요. 하지만 마지막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싱그러운 배경 아래 이렇게 활짝 웃으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알도는 소녀가 혼자일 때만 만나게 되는 비밀친구입니다. 아이가 외롭고 힘들 때 언제나 함께 해주는 알도, 알도가 사라질까 두려워 했던 소녀는 알도의 위로와 보살핌 속에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됩니다. 아이는 비밀친구 알도를 통해 위안 받고 힘을 얻어 세상을 향해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며 밝은 미소를 지닌 소녀로 성장해갑니다.

아이들은 힘들고 불안할 때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줄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어쩌면 그 존재는 자기 자신의 다른 자아일 수도 있어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로서의 비밀친구는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이해해주는 가장 든든한 친구일 것 입니다.


잘가, 나의 비밀친구
잘가, 나의 비밀친구

(원제 : The Night Shimmy)
그웬 스트라우스 | 그림 앤서니 브라운 | 옮김 김혜진 | 웅진주니어
(발행 : 2007/07/06)

잘가, 나의 비밀친구

아이들에게 ‘벙어리 에릭’이라고 불리는 에릭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에릭에게는 무엇이든 대신 말 해주는 비밀친구가 있기 때문이죠. 비밀친구는 잠자리에 들기전 에릭에게 책을 골라주고 도마뱀이 나오는 무서운 꿈을 꿀때면 물리쳐 주고, 아빠의 물음에 늘 에릭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도 대신 해줍니다.

잘가, 나의 비밀친구

비밀친구는 투명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먼 나라 말도 할 줄 알고,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에릭은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이유도 없었죠.

어느 날 공원에서 에릭은 연을 날리고 있는 미샤를 만났어요. 미샤는 말 없는 에릭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억지로 말을 시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에릭을 대신해 비밀친구가 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날이 저물도록 에릭은 미샤와 재미있게 놀았고 그날 밤에는 무서운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잘가, 나의 비밀친구

그런데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비밀친구가 없었어요. 미샤와 노는 데 열중한 바람에 비밀친구를 나무 아래 두고 왔거든요.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비밀친구가 나오지 않자 에릭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화만 냈죠. 에릭을 찾아온 미샤를 보고는 방문을 닫으며 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에릭은 미샤 혼자 연을 날리다 그만 연이 나뭇가지에 걸리는 것을 창가에서 보게 됩니다. 에릭은 밖으로 나가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미샤에게 말했어요.

“내가 내려 줄게.”

드디어 에릭이 비밀친구의 도움 없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잘가, 나의 비밀친구

이제 에릭과 미샤는 친구가 되었어요. 에릭은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자신의 마음 속에도 할 말이 아주 많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릭과 미샤는 함께 연을 날렸어요. 저녁 별이 떠오르자 둘은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어요. 그리고 에릭은 말했어요.

“잘 가.”
그러자 비밀친구도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말을 하지 않던 에릭이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잘가, 나의 비밀친구”는 아이의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가 그웬 스트라우스의 이야기에 앤서니 브라운의 섬세한 그림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있어요. 두꺼운 검은색 프레임 속에 갇힌 에릭의 이야기는 마치 에릭의 마음 속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잘가, 나의 비밀친구

에릭은 검은 프레임 속 안에 갇힌 듯,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오직 비밀친구를 통해서만 소통을 합니다. 이런 에릭을 바깥 세상으로 끌어 내 준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에릭을 바라봐 준 미샤입니다. 그녀는 에릭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릭은 미샤와의 소통에 비밀친구를 끼워 넣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어요. 물론 비밀친구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에릭은 잠시 위기를 겪지만 세상에 실재하는 친구 미샤를 통해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갑니다. 에릭이 미샤가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는 에릭을 가두고 있었던 두꺼운 검은 테두리가 사라지며 환상적인 멋진 세상이 펼쳐집니다.

비밀친구보다 더 좋은 것은 나를 이해해 주는 진짜 친구가 아닐까요? 편견 없이 나를 바라봐 주는 마음을 가진 그런 친구 말이예요. 새친구가 생긴 에릭이 ‘잘 가’라는 짧은 인사로 쿨하게 비밀친구를 보내주는 장면은 찡하게 느껴집니다. 오랜시간 에릭을 지켜주었던 비밀친구가 경쾌하게 손을 흔드는 장면도 그렇구요.

※ 앤서니 브라운은 이 그림책 속에  에릭이 침대에서 책 읽는 장면에 모리스 센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를 그려넣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릭과 미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고릴라를 그려넣었답니다. 그림책 속에서 꼭 찾아 보세요!(참고 : “찾아라, 그림책 속 까메오“)


내 비밀친구 토미
내 비밀친구 토미

(원제 : Max And George)
코리 브룩 | 그림 수 드젠나로 | 옮김 김경연 | 풀빛
(발행 : 2014/04/10)

내 비밀친구 토미

막스에게는 친구가 딱 하나 있어요. 바로 창문에 사는 친구 토미랍니다. 창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토미가 있었고, 그래서 막스는 외롭지 않았어요. 물론 어른들은 창문에 토미가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창문 앞에만 있는 막스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토미와 있으면 언제든 행복한 막스는 어느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내 비밀친구 토미

학교에 간 첫 날 선생님은 창문에만 붙어있는 막스를 자리에 앉게 했어요. 창문에 혼자 있을 토미가 걱정된 막스는 쉬는 시간이면 교실 창문에 붙어 토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야, 너 뭐해?” 반 아이 하나가 뒤에서 물었어.
막스는 수줍게 대답했어.
“내 친구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어.”

내 비밀친구 토미

막스가 처음으로 토미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토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여긴 아무도 없다면서 토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둘은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함께 놀게 되었어요.

내 비밀친구 토미

그런데 교실로 다시 들어왔을 때 더이상 창문에는 토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막스 자신만 보일 뿐이었죠. 토미는 더이상 부엌 창문에도, 자동차 창문에도, 침실 창문에도, 그 어느 창문에서도 보이지 않았어요. 창문에는 오직 막스 자신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막스는 이제 창문 보는 것을 그만 두었답니다.

하지만 막스는 알고 있었어

토미는 잘 있을 거야.
토미는 멀리 떠나지 않았을 거야.

막스의 눈에만 보였던 토미는 바로 막스 자신입니다. 두려움을 안고 있는 막스에게 생각하는 것도, 키도, 입고 있는 옷까지 똑같은 토미는 막스가 상상의 세계에서 만들어 낸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자신인 셈이예요.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불안했던 막스는 진짜 친구를 사귀면서 더이상 창문에만 있던 토미를 볼 수 없었어요. 이것은 토미가 떠나간 것이 아니라 막스가 성장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실제 눈에 보이는 것과 상상 속 이미지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종종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곤 한다고 합니다. 상상의 친구는 아이의 불안한 내면을 잠재워주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힘든 고백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하죠. 또한 상상의 친구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새친구 사귀기가 두려웠던 막스처럼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상상 속 비밀친구는 쿨하게 떠나갑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말이예요.


착한 용과 못된 용
착한 용과 못된 용

(원제 : Guter Drache & Böser Drache)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 그림 옌스 라스무스 | 옮김 김라합 | 웅진주니어

착한 용과 못된 용

 플로리안은 공원 동상 뒤 덤불 숲에 사는 착한 용과 못된 용의 친구입니다. 물론 착한용과 못된 용은 플로리안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예요. 착한용과 못된 용은 플로리안에게 못되게 구는 아이로부터 플로리안을 지켜 주기도 하고, 플로리안이 좋아하는 친구와 사귈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해요. 플로리안은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거나 무서운 개가 있는 엄마 친구 집처럼 가기 싫은 곳이 있을 땐 용 친구들이 아파서 돌봐줘야만 한다는 핑계로 슬쩍 도망치기도 해요.

착한 용과 못된 용

어느 날 플로리안과 엄마는 바다로 놀러가기로했어요. 그런데, 용들을 가방에 넣어 데리고 가겠다는 플로리안의 말에 착한 용과 못된 용은 가방 속은 좁고 답답하고 또 자기들은 바다를 싫어한다면서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용들을 두고 갈 수 없는 플로리안은 아픈 용을 돌봐야 해서 바다에 갈 수 없다 말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플로리안은 한밤중에 집을 나와 공원 동상 뒤 덤불 숲에서 용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공원에서 플로리안을 발견한 한 할아버지가 집으로 플로리안을 데려다 주었어요.

놀란 엄마는 플로리안에게 제안을 했어요.

착한 용과 못된 용

비좁은 가방 안이 싫은 용들을 자동차 지붕에 태워서 데리고 가자구요. 게다가 엄마는 바다를 싫어하는 용들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튜브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주기로 했어요. 여행을 하루 미루기까지 하면서요.(인터넷 주문 물품이 도착해야 하니까요.^^)

엄마는 이제 플로리안만의 비밀친구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이렇게나 특별하고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시면서요. 용들은 플로리안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플로리안과 용들은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착한 용과 못된 용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들과 플로리안은 이런 이야기를 나눴대요.

“여행 가기를 참 잘한 것 같아.”
착한 용이 못된 용에게 말했어요.

“그냥 집에 있었으면 아무런 재미도 없었을 거야.”
“맞아, 무엇이든 용기를 내서 해봐야 해.”
못된 용이 착한 용을 보며 웃었어요.
플로리안은 착한 용과 못된 용을 꼭 껴안으며 말했어요.
“우리 셋이서 함께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독일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그림책 “착한용과 못된 용” 속에 나오는 착한 용과 못된 용 두마리의 상반된 캐릭터를 통해 아이 내면에 존재하는 양면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플로리안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비밀친구를 통해 선악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고 무엇이든 용기를 내서 해봐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깨닫습니다.

비밀친구는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없어지기 때문에 혹시나 병이 아닐까, 내 아이만 이상한 걸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요. 플로리안의 엄마처럼 아이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격려해 준다면 우리 아이들 자신감을 가지고 씩씩하고 더욱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줄 아는아이로 자라날 것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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