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느껴요’라는 테마 첫 번째로 ‘봄 그림책’을 소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여름 그림책’을 지나 어느새 ‘가을 그림책’을 소개하게 되네요.

가을 햇살이 어루만진 자리에 초록잎들이 고개를 숙이는 계절, 가을 입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사각사각 대는 나뭇잎 소리, 일찍 찾아오는 밤의 문을 여는 귀뚜라미 소리,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서 가을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 여섯 권을 골라 봤습니다. 그림책으로 느끼는 가을도 좋지만,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가을을 느껴보세요. 날씨가 쌀쌀해 져서 움츠려 들기 전에 아이 손잡고,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가을을 맞이하러 나가 보세요. 가을이 코 앞에 다가와 있어요.


바빠요 바빠

바빠요 바빠

윤구병 | 그림 이태수 | 보리

마루는 산골에 살아요.
마루네 마을에는 가을이 일찍 오지요.
가을이 오면 모두가 바빠요 바빠.

산골 마루네 일찍부터 찾아오는 가을, 마루를 따라 가을을 마중 나가 봅니다. 마당에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어나면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말리느라, 할머니는 참깨를 터느라 바쁘십니다. 비탈밭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할머니는 고추를 말리느라 마루는 닭을 쫓느라 바빠지죠. 하루하루 가을이 익어갈수록 가을을 거둬들이는 마루네 가족도 모두들 점점 더 바빠집니다.

참새는 낟알을 쪼아먹느라, 허수아비는 참새를 쫓느라, 다람쥐랑 청설모는 밤을 나르느라 바쁜 가을.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봄 여름 내내 땀흘린 논과 밭, 산에 열린 결실을 거둬드리느라 정신 없이 바쁜 계절 가을, 그렇게 하루하루 바삐 지내다 보면 어느덧 가을은 더욱 더 깊어갑니다. 또르륵또르륵 콩을 고르고 계신 할머니 곁에서 마루는 새근새근 잠이 들어요. 하나 남은 감이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깊어가는 가을밤 부엉이만 깨어있어요. 모든 것을 끝낸 산골의 가을은 이제 다가오는 겨울을 기다리며 다음 해를 준비합니다.

높고 푸른 하늘, 마당 한 가득 말리려고 내어놓은 고추,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 마루네 산골에 일찍 찾아온 초가을부터 깊어가는 가을 밤까지 시골 마을 가을 풍경을 시간의 흐름 그대로 그려낸 “바빠요 바빠”는 봄부터 땀흘린 결실을 거두느라 바쁜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그 풍경을 넉넉하고 푸근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일 하느라 바쁜 어른들, 어른들을 돕느라 바쁜 마루, 마루네 가족 뿐 아니라 한해를 갈무리 하는 동물들의 분주함까지 담아낸 그림책 속에는 자연의 변화와 계절의 순환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습니다.


나그네의 선물

나그네의 선물

(원제 : The Stranger)
글/그림 크리스 반 알스버그 | 옮김 김경연 | 풀빛

열린 창문으로 산들 바람이 스쳐 가는 날, 트럭을 몰고 가다 낯선 남자를 치게 된 베일리 씨. 기억을 잃은 남자는 한동안 베일리 씨 집에 머물며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나그네가 온 날 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나그네를 진찰한 체온계는 수은주가 너무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고장이 났고 나그네가 스프를 먹기 위해 입김을 불자 집안이 썰렁할 정도로 추워졌죠. 마당에 있던 토끼들은 이상하게도 나그네를 피해 숲으로 도망가지 않았어요. 베일리씨를 도와 농장일을 거드는 나그네는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해 하는 기색이 없었고 땀도 흘리지 않았죠.

특히나 나그네가 베일리 씨 집에 머무는 동안 날씨가 아주 좋았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 코앞에 닥친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여름처럼  계절이 바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 덕에 호박들이 어느 때보다 크게 자랐죠. 멀리 있는 나무들은 단풍이 한창인데 유독 베일리 씨 농장 주변 나무들은 초록빛이 가득합니다. 어느 날 초록색 나뭇잎을 보고 문득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나그네는 그 날 저녁 처음 올 때 입었던 옷으로 차려입고 눈물을 흘리며 베일리 씨 집을 떠났어요. 이상하게도 나그네가 떠나자 날이 추워졌고 나뭇잎들도 더 이상 초록빛이 아니었습니다.

나그네가 떠난 뒤에도 해마다 가을이면 베일리 씨 농장은 언제난 다른 곳보다 일주일 더 초록빛으로 남았다 하룻밤 새 주위 어떤 나무보다 밝은 빨강과 주황빛으로 변했어요. 그리고 베일리 씨네 집 서리 낀 창문 위에 ‘다음 가을에 만나요.’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주위 어떤 나무들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선물하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난 나그네. 나그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변하는 계절, 그 변화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라는 상상에서 시작한 “나그네의 선물”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이야기에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세밀한 가을 풍경화가 어우러져 한층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내일은 꼭 이루어져라

내일은 꼭 이루어져라

오노데라 에츠코 | 그림 구로이 켄 | 옮김 김소연 | 천개의바람

거미줄에 걸린 씨 하나를 발견한 아기 염소는 씨를 밭 한구석에 심고 노래하며 싹이 트기를 기다렸어요. 곧 싹이 자라 순식간에 작은 잎이 가득 달린 나무로 자라났죠. 먹을 수 있는 나무냐 묻는 옆집 염소 아저씨의 질문에 아기 염소가 잎을 조금 뜯어 먹어보니 기대와 달리 너무 맛이 없어요. 잎을 먹지 못하는 나무라면, 예쁜 꽃이 피어나는 나무일까 기대했지만 글쎄요, 꽃도 영 시원찮고 향기도 없네요. 그렇다면 이 나무는 열매를 맺는 나무겠구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옆집 염소 아저씨네 탐스럽게 열린 사과와 달리 자그맣게 열린 아기 염소의 열매는 쓴맛이 납니다. 염소 아저씨는 뿌리를 먹는 나무인 모양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한 해가 다 지나고 겨울로 들어설 무렵 아기 나무는 시든 나무를 뽑아보았지만 뿌리조차 쓸모가 없었어요.

도움도 안 되는 나무는 얼른 갖다버리라고 염소 아저씨가 말씀하셨지만 아기 염소는 나무를 창문 위에 매달아 두었죠. 차가운 바람을 쐬고 밤이슬을 맞으며 새하얗고 투명하게 변해가는 마른 나무로 아기 염소는 빗자루를 만든 후 빗자루에 올라타고 노래합니다.

빗자루야, 빗자루야,
지금은 꼭
이루어져라.

그러자 아기 염소가 탄 빗자루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거미줄에 걸렸던 씨앗은 바로 마법의 빗자루 나무 씨앗이었군요. ^^

자그마한 씨앗을 심고 정성껏 가꾸며 “내일은 꼭 이루어져라!” 하고 노래부르던 아기 염소의 간절한 바람으로 탄생한 마법의 빗자루. 아기 염소의 믿음과 정성을 보여주는 “내일은 꼭 이루어져라” 예쁜 이야기 속에 사계절의 변화를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숲 속의 숨바꼭질

숲 속의 숨바꼭질

수에요시 아키코 | 그림 하야시 아키코 | 옮김 고광미 | 한림출판사

숨바꼭질 하고 싶은 민희 마음도 몰라주고 친구들과 공놀이만 하던 오빠, 민희가 삐죽대자 오빠가 달리기를 하자며 쏜살같이 달아났어요. 그런 오빠를 따라가다 숲 속에 들어가게 된 민희는 어쩐지 좀 무서워져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자 뒤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무 뿐인 숲 속에서 불쑥 나타난 것은 숲 속에 사는 숨바꼭질 요정입니다. 숨바꼭질 요정은 민희의 소원대로 동물 친구들을 불러모아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숨바꼭질 요정과 덤불 사이에 숨어있던 민희가 이상한 노랫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껏 놀던 숲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빠가 민희 앞에 서있습니다. 숲이었던 곳엔 민희네 아파트 단지가 펼쳐 있었구요. 분명 이곳은 숲 속이었다고 민희가 말하자 오빠가 아파트 단지가 생기기 전 이곳이 커다란 숲이었고 숲 속에 살던 동물들은 숲 속 더 깊은 곳으로 이사를 갔을거라 얘기해줍니다. 숨바꼭질 요정은 분명 어디엔가 꼭 숨어있을 거라 생각한 민희는 언젠가 다시 한 번 숲의 요정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빠를 찾다 발견한 숲 속은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황금빛 풍경입니다. 그 풍경 그림 속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동물들과 숲의 요정이 숨어 있어 그림책을 보면서 숨은 그림 찾기 놀이도 할 수 있죠. 그림책을 들고 가을 숲에 놀러가 보세요. 민희가 숲속에서 쿠션 같이 따뜻하고 보드라운 마른 나뭇잎, 손과 발을 간지럽히는 어린 나뭇가지들의 기분 좋은 느낌을 전달 받은 것처럼 가을 숲에서 진짜 숨은 보물들을 찾아 보물찾기 놀이, 숨바꼭질 놀이를 해보며 숲의 기운을 직접 느껴 보세요. “숲 속의 숨바꼭질”에는 가을 향기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득한 향수가 담겨 있습니다.


나뭇잎이 달아나요

나뭇잎이 달아나요

(원제 : Anton Und Die Blatter)
글 /그림 올레 쾨네케 | 옮김 임정은 | 시공주니어

나뭇잎을 치우고 있던 안톤은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을 바쁘게 쫓아갑니다. 마침 그네를 타고 있던 루카스쪽으로 나뭇잎이 날아가자 안톤은 루카스에게 나뭇잎을 잡아달라 부탁했어요. 하지만 나뭇잎은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거의 다 잡았다 싶으면 또 달아나고, 또 달아나고… 그렇게 나뭇잎을 쫓아 갈 때마다 안톤을 도와주려는 친구가 점점 늘어납니다. 잡힐 듯 말 듯 마치 아이들과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도망치던 나뭇잎은 애써 안톤이 쓸어 모은 나뭇잎 더미 위로 날아갔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나뭇잎을 잡았다 소리칩니다. 그 바람에 모아둔 나뭇잎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구요.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을 잡으려다 공들여 쌓아둔 나뭇잎 더미를 망가뜨리지만 그저 나뭇잎을 잡았다는 것이 뿌듯하기만 한 아이들, 나뭇잎과 아이들이 벌이는 술래잡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그림책 “나뭇잎이 달아나요”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마음을 아주 잘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울긋불긋 나뭇잎들, 달아나는 나뭇잎을 쫓아 분주히 뛰어다니는 아이들 옷차림에서 가을을 한껏 느낄 수 있기도 하구요.

▶ “나뭇잎이 달아나요” 리뷰 보기


호박 달빛

호박 달빛

(원제: Pumpkin Moonshine)
글/그림 타샤 튜더 | 옮김 엄혜숙 | 윌북

할머니 댁에 놀라간 실비 앤은 호박등을 만들 호박을 찾아 옥수수 밭에 갑니다. 커다랗고 통통한 호박을 데굴데굴 굴려서 옮기던 실비 앤, 그런데 언덕길에서 호박이 갑자기 굴러 내려가는 바람에 염소며 닭, 거위가 화들짝 놀라고 양동이에 물을 길어가던 헴멜스캠프 아저씨는 넘어지기까지 합니다. 실비 앤은 넘어진 아저씨를 도와드리고 동물 친구들에게도 사과를 합니다.

실비 앤의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도망쳐 온 호박을 잘라 멋진 호박등을 만들어 주셨어요. 호박등을 만들고 남은 호박씨를 잘 갈무리해둔 실비 앤은 다음 봄에 정성껏 호박씨를 심습니다. 호박 덩굴이 뻗어가면서 수많은 호박이 주렁주렁~, 이 호박은 다시 가을이 오면 맛있는 호박 파이가 되거나 무서운 호박 달빛이 될 거예요.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 타샤 튜더의 데뷔작인 “호박 달빛”은 고전적 수채화풍으로 소박한 시골의 가을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냈어요. 모든 것을 거두어 들이는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가 그림책 속에 따뜻하고 정겹게 담겨있습니다.

▶ “호박달빛” 리뷰 보기

계절을 느껴요 
1. 봄 그림책
2. 여름 그림책
3. 가을 그림책
4. 겨울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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