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일 : 2014/05/02
■ 업데이트 : 2015/05/21


부처님 오신 날 연등

봄이 왔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5월입니다. 바람은 싱그럽고 산과 들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네요.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5월이네요. 5월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습니다.우리 역사 속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종교가 불교이기도 하고, 또 종교를 떠나 아이들 손 잡고 여기 저기 여행 하다 보면 우리 전통 문화의 하나로 불교문화를 자주접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배우는 생명 존중의 정신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전통문화의 하나로서의 불교와 관련된 그림책들, 그 중에서도 생명 존중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림책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꽃그늘 환한 물
꽃그늘 환한 물

글 정채봉 | 그림 김세현길벗어린이

꽃그늘 환한 물

깊은 산 속 외딴 암자에는 눈이 크고 키가 큰 스님이 홀로 불공을 드리며, 나무도 하고 공부도 하고 개울가에 나와 빨래도 하며 살고 계십니다. 스님이 안 계신 사이 잘 닦아 놓은 마루에 발자국을 남기고 간 새발자국을 보고 어느 새가 왔다갔는지 짐작하시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추운 겨울날엔 갈무리 해 둔 무를 배고픈 산 짐승들에게 슬며시 내어주기도 합니다. 낙엽이 쌓여 길을 덮은 어느 늦가을 날엔 개울 한 귀퉁이 이끼 낀 돌을 발견하고 이끼가 얼어죽지 않도록 스님이 거처하는 암자의 방으로 이끼 낀 돌을 가지고 왔다가 봄이 되어 다시 제자리로 내어다 주시는 스님.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시는 스님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담겨 있는 그림책입니다.

 흰 구름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그림책이 시작됩니다. 그림책의 그림들을  세세히 살펴 보면 모든 그림이 흰 구름의 시각에서 그려졌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책표지 그림도 뒷짐 지고 걸어가는 스님 뒷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흰구름의 시각이랍니다. 흰구름이 들려주는 세상 모든 것을 벗하며 살아가셨던 스님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늦가을 이끼낀 돌을 스님의 암자로 데려가는 장면입니다.

 개울의 한 쪽 귀퉁이에서 파란 융단 같은 이끼를 쓰고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드시는 것이었어. 그러곤 이웃한테, 마치 사람들에게 이르시듯 조용조용히 말씀하셨지.

“올해는 무껍질이 두터운 걸로 봐서 동장군이 제법 기승을 부릴 것 같으이. 그렇게 되면 이 이끼도 얼어 죽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묵고 있는 거처로 데려가려고 하네. 이해들 해 주겠지. 그렇다면 서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게나.”

라는 말씀을 남기고 이끼 낀 돌을 들고 가십니다. 그리고 암자에 돌아오셔서는 이끼 낀 돌에게 처음에는 낯설어 서먹서먹할지 모르지만 서로 정이 들거라며 암자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 하나 소개 해주십니다.

 처음은 좀 낯이 설어서 서먹서먹할지 모르지만 이내 서로 정이 들 걸세. 저건 차를 끓이는 주전자이고 저건 찻잔일세.”

‘존재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시는 스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봄이 되자 스님은 겨울을 암자에서 잘 지낸 이끼낀 돌을 들고 처음 그자리로 돌아와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십니다.

이 그림책은 실제 무소유를 쓰신 ‘법정스님’의 삶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정채봉님이 쓰신 동화를 읽고 그림책으로 만들기 위해 김세현 작가는 법정스님이 거주하셨던 송광사 불일암을 자주 찾으며 여러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다 한지 위에 전각과 민화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단순하면서 대담한 그림, 과감한 색상,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한 그림이 글의 여운을 한층 더해주면서 소박한 삶 속에 생명 존중의 사명을 온 몸으로 실천하고 가신 법정스님의 삶의 모습을 더욱 환하게 비춰줍니다. 그림 한장 한장에 전체적인 주제인 ‘거룩한 생명 사랑’을 담아내기 위한 작가의 고민의 흔적을 그림책에서 엿볼 수 있는 진한 여운으로 가득한 그림책입니다.


돌로 지은 절 석굴암
돌로 지은 절 석굴암

김미혜 | 그림 최미란 | 웅진주니어

돌로 지은 절 석굴암

 바다 쪽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마시고 내뿜고 하는 산이 있어.

그 산이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토함산이야.

신라 사람들은 그 산을 매우 신령스럽게 생각했어.

어스름 새벽 아이는 연꽃을 들고 엄마와 토함산에 오릅니다.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동해로 떠난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하려고 석굴암에 새벽 예불 드리러 가는 길이지요. 어스레한 석굴암 안으로 들어서면서 불빛에 칼을 들고 창을 쥔 장수의 모습을 하며 석굴암을 지키는 아수라부터 긴나라, 야차, 금강역사, 사천왕까지 수호무사의 모습에 아이는 겁을 먹지만 자애로운 모습의 부처님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놓입니다.  아이가 부처님께 연꽃을 바치며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시기를 기도하는 중 해가 떠오르며, 밝은 빛이 들어와 부처님을 비추고 석굴암 안으로도 쏟아져 들어옵니다. 해가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가장 먼저 닿는 곳, 그곳에는 돌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지은 절, 석굴암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무사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석굴암으로 오르는 신라의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의 빛나는 문화 유산인 석굴암에 담긴 과학 기술과 예술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돌로 지어진 석굴암을 표현하기 위해 목탄과 먹을 활용해 탁본 기법으로 표현한 깊이 있는 그림, 무채색 그림 속에 토함산 굽이굽이 어슴푸레한 새벽 속 희미한 등불을 쥐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나 석굴암 안에서 맞는 새벽 빛이 생명력을 가지고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본래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리고 일제 강점기 때 보수라는 명목으로 해체되면서 제 모습을 잃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 유리벽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석굴암의 모습을 작가는 신라 시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그림책으로 펼쳐내주었습니다.

“돌로 지은 절, 석굴암”은 2010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최고상인 라가치상 픽션부문에서 우수상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내 친구 까까머리
내 친구 까까머리

임정진 | 그림 윤정주 | 시공주니어

석가 탄신일,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는 민이는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우리 주변의 흔한 아이들 모습입니다. 부처님 생일에 케이크를 사지않고 초를 사는 할머니가 이상하기만 한 민이, 다리 아프도록 산에 올라 가면서도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어 이것 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민이. 할머니가 절을 하시는 동안 심심해진 민이에게 다가온 동자승 광덕이가 민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웅전, 칠성각, 극락전을 보여주고 운판도 보여주고 법고며 목어, 공양간도 데려가주고 약수도 마시게 해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내 친구 까까머리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친근한 또래의 밝은 얼굴을 지닌 동자승을 통해 아이들의 시선에서 절 안의 풍경과 불교문화를 보여주고 친근한 느낌으로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또 종교적인 것을 떠나 우리 전통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던 불교 문화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도 이 그림책을 돋보이게 해 주는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처님 생일에는 왜 케이크를 사가지 않는지, 케이크를 사면 초는 그냥 주는데 왜 초를 따로 사야하는지 하는 아이다운 물음이나 절간 입구의 사천왕을 보고 ‘절을 지키는 경찰 아저씨’라는 아이다운 생각을 품는것, 절 마당에 내걸린 연등을 보고 크리스마스 같다고 생각하는 민이를 통해 작가가 얼마나 어린이의 마음과 어린이의 눈으로 표현해 내려고 애썼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절에는 고기 반찬은 왜 없는지 묻는 민이의 물음에 답하는 동자승의 답이 재미있으면서도 쿵!하고 와닿더군요.

얼굴이 있는 건 잡아먹으면 불쌍하잖아. 날 쳐다보면 슬프잖아.


작은 생쥐와 큰스님
작은 생쥐와 큰스님

글 디안느 바르바라 | 그림 마리 말라르 | 옮긴이 전채린 | 풀빛

작은 생쥐와 큰스님꽁꽁 얼어 죽게 된 생쥐를 살려준 큰 스님, 은혜를 갚고 싶어하는 생쥐에게 다시는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함께 지내자고 말씀 하십니다. 큰스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던 작은 생쥐는 어느날 그곳에서 지내는 고양이가 무섭다며  스님에게 부탁해 고양이가 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고양이로 변했지만 여전히 고양이가 무서운 생쥐는 스님에게 다시 부탁해 고양이보다 강한 개로, 호랑이로 변했지만 여전히 고양이가 무섭기만 합니다. 그런 작은 생쥐를 보면서 큰 스님이 하신 말씀…

“얘야, 작은 생쥐야! 중요한 건 네가 갖고 있는 생쥐의 마음이란다. 겉모습만으로는 바꿔지지 않는단다. 네가 아무리 고양이로 변하고, 개로 변하고, 호랑이로 변해도 너는 언제나 고양이를 무서워 할 수 밖엔 없단다. 왜냐하면, 너는 생쥐의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작은 생쥐와 큰 스님”이야기는 내적인 모습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글 김종상 | 그림 김재홍 | 파랑새

스님들이 암송하는 짧은 사구로 된 ‘사구계’ 중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14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이야기로 만들어 낸 그림책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씨앗을 심을 때

한 호미 자국에 세 개씩 심었대요.

새와 벌레와 똑같이 나눠 먹으려고.

작은 새싹 하나도 밟지 않고 발걸음을 조심하고, 세상 모든 것이 있는 자리가 제 자리라며 돌 하나도 함부로 옮기지 않았으며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은 것이라 여겼던 옛날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끼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삶, 생명 존중의 사상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노스님 곁에 해맑은 동자승의 모습, 할아버지와 손주 같은 모습입니다.  간결한 글에 온화하고 서정적인 그림, 그리고 그림이 또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조로 그려져 있습니다.  “동강의 아이들”을 그린 김재홍 작가님의 그림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물건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솔산 선운사
도솔산 선운사

이상희 | 그림 한태희 | 한림출판사

전라도 도솔산 아래 오래된 절인 선운사에 얽힌 창건 설화를 그린 그림책입니다. 평화로운 모습과 달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 떠돌이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소금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암자도 지어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어느 가을 해적 떼가 나타나 마을로 들어오자 스님은 사람들을 모두 숨겨주고 해적 무리를 혼 내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지요. 어릴 때부터 해적일을 해온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던 해적들은 마을에 살게 되면서 일도 열심히 하고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선운사라는 절도 짓습니다. 절이 다 지어진 후에야 사람들은 떠돌이 할아버지가 어디론가 떠나셨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 그림책은 도솔사 선운사 여행을 하면서 한번 읽어보시면 더욱 좋을 듯 하네요. 그림책 속에 못나서 내버리는 나무를 보고 아까워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해적들이 굽은대로 휜 대로 생긴 모양 그대로 짜맞춰 누각을 짓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 선운사 만세전에 가면 삐뚤어져서 못쓴다는 삐뚤삐뚤한 목재를 써서 지은 것을 눈으로 확인 해 볼 수 있거든요.

채색 수묵화로 그려져 옛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옛날 이야기를 더욱 운치 있게 살려줍니다.


2013년 성북동
2013년 성북동

법정스님이 대원각을 시주 받아 지은 절인 길상사, 길상사가 있는 성북동은 사월초파일이면 성북동 성당에서 ‘부처님 탄신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길상사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겁니다. 길상사의 관음보살상은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곤 하는데, 이 관음보살상을 만든 조각가가 법정스님과 평소 친분이 있던 천주교신자라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종교는 인간이 보다 지혜롭고 자비스럽게 살기 위해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길’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자비를 베풀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변해있지 않을까요?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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