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것들 그리고 잊혀진 것들…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고 살아갈까요. 빠르게 생겨나는 것들 만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의 목록도 점점 늘어나겠죠.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향수, 아마도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 가슴 속에 품은 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 사라진 것들의 목록(천양희) 중에서

동네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 학교 앞 작은 문방구, 낡은 곰돌이 인형, 묵직한 소리로 울리던 커다란 괘종시계, 그림자처럼 늘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 그리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다정했던 우리 동네, 우리 집… 마음 깊이 스며들어있는 향수를 그려낸 그림책들입니다.


나의 독산동

나의 독산동

유은실 | 그림 오승민 | 문학과지성사
(발행 : 2019/06/28)

엄마의 낡은 화장대 서랍에서 찾아낸 빛바랜 사진 한 장 같은 표지 그림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뭅니다. “나의 독산동”은 은이의 기억 속 1980년대의 동네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고층 건물도 높은 아파트도 없었던 그 시절, 동네 어귀 어디에서나 친구들을 만나고 만나는 어른들마다 반가이 아이들을 맞아주시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라요.

나의 독산동

앞뒤로 좌우 옆으로 빼곡히 앉아 공부했던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 지금 보면 참으로 놀라운 교실 풍경이에요. 이야기는 은이가 학교에서 본 시험 문제에서 시작합니다.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생활하기 어떨까?’의 문제에 은이는 ‘1번 매우 편리하다’에 답을 했어요. 하지만 정답은 ‘3번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였죠. 하지만 은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해요.

나의 독산동

틀린 시험지를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이는 동네 구석구석 돌며 생각합니다.

옹기종기 모여사는 동네 이곳저곳에는 작은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엄마 아빠들은 그곳에서 일하다 아이들 밥도 챙겨주고 숙제도 봐주십니다. 아이들은 공장 근처에서 뛰어놀고 가끔 공장에서 잘못 만들어진 불량 인형이나 단추를 장난감 삼아 놀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가 시끄러워 살기 나쁜 동네라니…

나의 독산동

은이를 따라 동네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봅니다. 네 집 내 집 구별 없이 살아가던 오래전 독산동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저녁을 먹고  시험지를 꺼낸 은이는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았어요. 교과서도 틀릴 수 있는지, 선생님도 모를 수 있는지. 은이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아빠는 말씀하셨어요.

“우리 동네는 우리 은이가 잘 알지.”

반짝이는 별들만큼이나 앞뒷집 빼곡하게 들어선 그 시절 그곳, 아련함과 포근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나의 고향. 낮게 걸린 전신줄이 작은 집들이 낮은 담장들이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트이고 열리고 낮은 만큼 서로를 향한 마음도 열려있었다고…


나의 동네

나의 동네

글/그림 이미나 | 보림
(발행 : 2019/04/22)

★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어느 여름날, 훅 불어오는 바람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냄새가 났습니다.
우리 동네, 단짝 친구, 여름날들…….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 줄 거예요.

자전거를 탄 우체부가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오래된 한 장의 흑백 사진 같은 속표지 그림 한 장, 여름 날 바람이 불러온 기억은 독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갑니다. 어릴 적 살던 우리 동네, 나의 집, 그리운 것들을 향해.

나의 동네

나지막한 지붕들 사이로 늘 따뜻한 바람이 불었던 것 같아.
정말로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하지.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쓴 편지인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 단짝 친구가 내게 보낸 편지 같기도 해요.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성실하게 달려가는 우체부 아저씨,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의 시선은 오랜 친구와 행복했던 기억, 아스라이 남아있는 마음속 추억을 소환하고 있어요.

나의 동네

아무도 살지 않아 수풀만 무성한 오솔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우체부 아저씨의 뒤를 따라 나풀나풀 나비가 날고 파랑새가 정겹게 지저귑니다. 돌다리 건너 오솔길, 동네 어귀 곳곳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푸른빛 생동감 넘치는 그림은 오랜 기억을 강렬하게 이끌어 옵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는 그곳, 무성한 푸른빛으로만 가득한 그곳을 뚫고 우체부 아저씨가 온 힘을 다해 계단을 올라 찾아간 곳은 어린 무화과나무가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는 작은 집.

나의 동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기쁨과 그리움의 눈물이 가득 배어들었을 것 같아요. 편지가 잘 전해질 수 있다면 그 마음도 함께 전해지겠죠.

이 그림책은 “터널의 날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미나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입니다. 할아버지 댁이 있던 지금은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옛 자취가 사라진 동네가 문득 보고싶은 마음에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 완성한 그림책이라고 해요. 무성해진 수풀 속 텅빈 집들, 곳곳 익숙한 풍경들, 한 장면 한 장면 한참을 들여다보다 잊어버린 그 시절이 그 장소들이 떠올라 그만 뭉클해지는 그림책 “나의 동네”입니다.


나의 둔촌아파트

나의 둔촌아파트

글/그림 김민지 | 이야기꽃
(발행 : 2018/11/15)

어제인 양 어린 시절 그 때의 기억을 품고 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그린 이야기 “나의 둔촌아파트”입니다.

나의 둔촌아파트

바람에 실려온 라일락 꽃 향기가 묘한 그리움을 몰고옵니다. 구름, 바람, 햇빛, 소리, 엄마 목소리… 아릿하면서도 뚜렷한 추억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오래된 아파트,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 구석 맴돌고 있는 아련한 아름다운 기억들은 아가씨를 어린 시절 한 순간으로 데려갔어요.

나의 둔촌아파트

지금은 없어진 것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느 순간 불쑥 불쑥 기억으로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기억 저 세상 속에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의 둔촌아파트

위 두 편의 그림책과 달리 이 그림책 속에는 재개발로 사라진 아파트의 풍경이 담겨있어요. 그곳이 오솔길로 이어지는 시골이든 도시든 그곳에서 자란 이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향수를 느끼는 것은 똑같을 것입니다. 도시의 고향 풍경을 그리워하는 하지만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볼 수 없는 고향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 “나의 둔촌아파트”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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