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살아온 세월 돌아보니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 싶어 가을과 겨울이 맞닥뜨린 요즘 날씨가 유난히 쓸쓸하고 서럽습니다. 평생을 작은 덕 큰 덕 쌓으며 베풀고 사셔서 늘 이웃들 발길 끊이지 않는 인심 좋은 부모님의 삶에 비춰보니 여지껏 내 앞가림만 겨우 하며 버티듯 살아 온 내 삶이 더욱 을씨년스럽습니다. 잘 자라준 딸아이가 좋은 결실 아니냐 자위해보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라 딸아이 본인과 아내의 공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 끼 한 끼 근근히 끼니 해결하며 살아온 게 고작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가온빛 더 열심히 운영해야겠다 싶습니다. 좋은 그림책 이야기 나누는 것도 나름 우리 이웃들에게 좋은 일 베푸는 거라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끼니 걱정 없이 사는 것 그거면 충분히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쌀통에 쌀 안 떨어지고, 아내와 둘이 건강하게 지내며 다른 걱정 없이 오늘 점심은 뭘 해 먹을까 저녁엔 무슨 국을 끓일까 궁리하며 사는 거야 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 아닐까요? ^^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데 가끔 처가에 가면 어르신들 등쌀에 못이겨 반강제로 아침밥을 저녁보다 거하게 먹습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라며 안그래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밥에 한두 숟갈 더 얹어주신 밥 한 그릇 덕분에 하루 종일 (더부룩하지만) 배가 꺼지질 않는 걸 보면 어르신들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들에 잠겨 있다 생각난 그림책 두 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인생 별거냐? 밥심으로 사는 거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세상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고 마냥 행복하다! 라고 넉넉한 웃음 가득 담아 이야기하는 그림책 두 권, “모모모모모”“밥 먹자!”입니다.


모모모모모

모모모모모

글/그림 밤코 |
(발행 : 2019/10/31)

“모모모모모”는 모를 심고 피를 뽑고 태풍에 쓰러진 벼를 다시 세우고 잘 읽은 벼를 추수하고 탈곡해서 기름진 하얀 쌀밥으로 우리들 밥상에 오르기까지 벼 농사의 전과정을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이 인상적인 것은 벼 농사 짓기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마치 의성어나 의태어처럼 사용하며 그것을 이미지로 형상화시켰다는 점입니다. 모내기는 모모모모모 내기내기내기, 피 뽑기는 피뽑피뽑피, 거둬들이고 마른 논에 남은 낟알들을 참새들이 쪼아 먹는 모습은 지지벼벼 지지벼벼, 탈곡하는 모습은 벼벼벼벼벼 탈탈탈탈탈…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의태어화된 낱말들과 그것을 형상화한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읽는 이들을 여린 연두빛 모종들 촘촘히 심겨진 모내기 현장으로, 추수하는 누런 황금 들판으로 데려다 줍니다.

모모모모모

모모모모모

모모모모모

이른 봄에 시작된 농삿일은 집요한 병충해와 거센 비바람을 견뎌내고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으며 낟알 속이 단단히 영글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농부의 한 해의 땀과 수고를 고스란히 담아낸 튼실한 쌀알들은 윤기 좔좔 흐르는 하얀 쌀밥이 되어 드디어 밥상에 오릅니다.

모모모모모

혹여 자식들 배 쉬이 꺼질까봐 꼭꼭 눌러 담은 밥 한 그릇. 냠냠냠냠냠 억척스럽게 먹어대는 아이들 모습에 지난 봄부터 가을 늦도록 쏟아낸 땀방울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농부의 넉넉한 웃음. 근심 걱정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이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아따 고 놈들 참 자알~ 먹는다! 그래, 인생 뭐 있냐? 다 밥심으로 사는 거지!” 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루 세 번 대수롭지 않게 만나는 하얀 쌀밥, 그 한 그릇에 담겨진 농부의 정성과 삶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그림책 “모모모모모”입니다.


밥 먹자!

밥 먹자!

글/그림 한지선 | 낮은산
(발행 : 2019/08/20)

무더운 어느 여름날 시골 오일장에 고추를 내다팔러 갔었던 작가의 경험을 담아낸 그림책 “밥 먹자!”. 땀흘려 키운 농작물들을 정성과 함께 담아 장에 나온 이들의 마음, 시들기 전에 싱싱하고 보기 좋을 때 누군가에게 팔려가서 맛있는 한 끼가 되길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밥 먹자!

참외며 오이며 손수 기른 과일과 채소들을 잘 손질해서 오일장을 찾은 양오리 할머니가 자리를 잡습니다. 뜨끈한 햇볕에 가지고 나온 것들이 시들지 않도록 큼지막한 파라솔 활짝 펴고 앉은 할머니. 할머니의 오늘 바램은 장이 파할 때 빈 손으로 홀가분히 돌아가는 겁니다.

밥 먹자!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는 파라솔들. 다닥다닥 붙어 앉은 농부들 사이로 소박한 근심 거리 하나가 솟아 오릅니다.

장날이 고추장이네.
온통 고추구먼.
오늘 다 팔 수 있을까.

아마도 고추 팔러 나온 이의 염려스러운 속마음이겠죠? 비 맞을 새라 여러날 공들여 볕 좋은 양달에 잘 말린 고추 들고 나왔더니 하필 오늘따라 고추 팔러 나온 이가 너무 많았나봅니다. 오늘 내에 다 팔리지 않으면 이 놈들을 다시 들고 돌아갔다가 다음 장날에 또 나와야 하니 사방에 경쟁자 뿐인 오늘의 고추장 장날이 야속하기만 한가 봅니다.

밥 먹자!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고 햇볕에 들고 나온 야채들이 시들고 잘 말린 고추들이 고추장이 될 것 마냥 지글지글 뜨거워지는 여름 한낮에 양오리 할머니의 “밥 먹자!” 하는 호령에 장터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밥 먹자!

커다란 솥에 각자 싸온 밥과 갖은 반찬들을 쏟아붓고 고추장과 참기름도 들어부은 다음 다 같이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벼대면 입에 짝짝 붙는 오늘의 밥 한 끼가 완성됩니다.

밥 먹자!

다 같이 둘러앚아 나눠 먹을 장터의 점심 메뉴는 바로 고추 열무 비빔밥!

내가 키운 열무 맛 좀 보시게!
고추 맛은 또 어떻고!
다들 키우느라 고생했네.
아이고, 맛나겠다.

각자 한 마디씩 거들며 한 숟갈 한 숟갈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방금 전 고민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소박한 웃음들만 한가득입니다.

밥 먹자!

뭘 팔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모를
한여름 장날이었어.

다행히 양오리 할머니의 수레는 텅 비었네요. 파라솔을 접으며 하는 할머니의 혼잣말에 웃음이 납니다. 뭘 팔러 온 건지 밥을 먹으러 온 건지 모를 한여름 장터 사람들의 순박함. 못팔고 남은 과일이며 채소들 다시 싸서 돌아가는 농부의 마음은 조금 아쉽겠지만 그래도 오일만 지나면 다시 만날 이웃들 생각에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다같이 맘껏 웃으며 나눠먹은 밥 한 끼 떠올리면서 말이죠.

장에 나가는 농부들의 바람은 그날 가져간 농산물을 다 팔고 빈 짐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라며 그날 그 순간의 걱정 다 날려 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책 “밥 먹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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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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