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는데 ‘정이품송 장자목’이라는 이정표가 보여서 뭘까 궁금해 따라가보니 우리가 잘 아는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목에 있는 바로 그 정이품송의 아들 나무가 심어져 있더군요. 병충해와 자연 재해 등으로 정이품송 본연의 기품이 자꾸 훼손되자 2001년 전국에서 선발된 400여 개체 중에서 간택된 삼척의 소나무와 혼례를 치러주었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나무를 2003년 그 자리에 심었다는 안내문을 다 읽고 나서 사람 사는 이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싶어 가족 모두 신기해 했었습니다.

한 백 년 살기도 버거운 게 우리 삶이라 생각하면 온갖 풍상과 역사에 부대끼며 수백여 년을 살아낸 그 나무의 삶이 참 대단하다 싶고, 후사를 봐서라도 그 나무를 지켜내고자 애쓰는 이들의 조금은 엉뚱한 듯한 발상과 수고가 참 대견하고 고맙더라구요.

며칠 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지하 공간 활용을 방해하는 단지 내의 보호수(수령 360년 이상)를 옮겨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 대해 서울시의 보호수 이식 거부는 정당하고 적법한 것으로 판결했다는 기사(수령 360년 보호수 옮겨 달란 요구 거부는 적법, 노컷뉴스, 2020/01/29)를 읽으면서 내가 그 재건축조합의 일원이라면 나는 과연 나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상적인 건 해당 판결문의 내용이었습니다.

개발과 보호는 서로 공존하는 가치이므로 이번 결정을 통해 3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보호수가 아파트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고 지정 목적대로 현재 장소에서 안전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예전에 답답할 때면 가끔 들리던 제천의 한 리조트는 개발 당시 소나무들을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품은 채 건물들을 지어서 벽을 통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가 지붕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가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 경관이 워낙에 좋고 당시에는 다소 폐쇄적인(?) 멤버십 관리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조용해서 좋기도 했지만 객실 안에 걸터앉아 그 방에 묵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던 나무도 분명 그 곳을 자꾸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

문득 창 밖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눈이 마주칩니다. 원래 저 자리에 나무가 있었나 싶을만큼 평소 무관심했던 우리와는 달리 나무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봄과 여름엔 푸르름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담담하고 우직하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도시 한 켠에 심겨진 나무의 삶이란 게 그 자리에서 백년은 커녕 단 몇 년 조차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옮겨지면 옮겨진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또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며 나무의 삶을 살아갈 겁니다. 그게 바로 나무의 삶이니까요.

오늘은 나무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두 권 “나무 고아원”“은행나무”를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참 좋은데 몇 마디 말로 소개하기 힘든 그림책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두 권이 그렇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하기 힘든… 그래서 오늘은 그림 딱 한 장으로 간단히 소개만 합니다.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면서 말이죠. ^^


나무 고아원

나무 고아원

이정록 | 그림 박은정 | 동심
(발행 : 2019/07/19)

“나무 고아원”은 아이가 묻고 어른이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나무도 우리처럼 감정이 있고 슬픔과 아픔을 느낀다고,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거라고,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듯 우리도 나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림책입니다.

나무도 고아가 있나요?

나무는 땅을 잃으면 나무 고아가 돼.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렴.
나무들의 슬픈 얘기가 들릴 거야.

하늘은 구름을 버리지 않아.
숲은 새소리를 버리지 않아.
사람만이 무언가를 버린단다.

햇빛도 구름도 모두 나무와 가족이야.
우리는 모두 가족이야.
나무를 보고
나무를 아끼고
나무를 사랑하고
그렇게 가족이 되는 거야.

나무고아원
그림책 속 두 장면을 이어 붙인 그림입니다.

가족같은 나무, 말만 들어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기쁠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너무 아프고 힘들 때 찾아가서 잠시 기대고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그런 나무, 그런 가족과 함께 하고 있나요? 우리 아이들이 푸근한 가족의 품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도록 나무와 숲을 아끼고 잘 지켜줘야겠습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

글/그림 김선남 | 천개의바람
(발행 : 2019/11/01)

“은행나무”는 암수 구별이 있는 은행나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암나무와 수나무가 만나서 사랑하고 가족을 이룬 뒤 자식을 키우고 떠나 보내는, 우리 삶의 여정과 많이 닮은 그들의 한 해 살이를 잔잔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봄바람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그(수나무)와 그녀(암나무)가 마주칩니다. 둘은 서로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둘은 꽃을 피웁니다. 바람이 둘 사이를 이어줍니다. 여름이 무르익을수록 두 나무는 수많은 가지들을 뻗어내고 그 가지들마다 잎을 내밉니다. 또 한 차례 바람이 불어오고 가을이 다가서자 두 나무의 잎도 씨앗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여문 씨앗들이 툭툭 떨어집니다. 두 나무에게는 이별의 소리이고, 씨앗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의 소리입니다. 세상이 온통 노랗게 물들고 난 후 밀려드는 겨울 바람과 함께 가지만 남은 그와 그녀만 남습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두 나무는 기다릴 겁니다. 둘은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들을 다시 이어줄 바람이,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가져달 바람이 또 불어오리라는 것을 믿으니까요.

은행나무

한 나무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그 나무는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은행나무가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특별하다는 건,
그 나무가 내 삶과 많이 닮았다는 거겠지요.
언젠가부터 나는 은행나무가 되어,
지금 나를 흔드는 바람이 멈추길 바랍니다.
하지만 은행나무처럼 기다리는 법도 배웠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무, 그 중에서도 특히 은행나무 그리기를 좋아하는 김선남 작가는 은행나무를 직접 키우기도 한다는군요.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은행나무”를 뽑아서 펼치면 은행나무를 닮은 작가의 진한 삶의 향기가 그윽하게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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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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