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고 그 어느 해보다도 길었던 장마를 겪어야만 했었죠. 밤새도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이런저런 걱정과 염려로 잠 못 이루기도 하고, 연일 쏟아지는 비 피해 소식에 내 일인양 안스러워하며 지루한 여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럭저럭 버티고 나니 요즘같은 화창한 날씨와 푸른 하늘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폭풍우와 태풍보다 더 무서운 감염병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라치면 다시 고개를 쳐들고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덕분에 1년이 다 지나도록 이웃과 거리를 두고 지내야만 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푸르름이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써라, 네가 무슨 상관이냐 윽박 질러가며 싸워대는 추태들도 더러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버티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나를 단속하며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고, 주변에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다면 관심과 보살핌의 손길을 아끼지 않는 우리들이기에 지구촌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시련을 극복해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70여 년 전 나온 “폭풍우가 몰려와요”와 지난 여름 선보인 “태풍이 찾아온 날”은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같은 지독한 감염병에 노출된 요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우리들에게 담담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폭풍우가 몰려와요

폭풍우가 몰려와요

(원제 : The Storm Book)
샬롯 졸로토 | 그림 마거릿 블로이 그레이엄 | 옮김 장미란 | 다산기획
(발행 : 2008/08/20)

※ 195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제목과는 달리 아이와 하얀 강아지가 나란히 앉아 조용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책 표지 그림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평화롭던 풍경이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던 하늘은 부옇게 변해가더니 어느새 먹구름으로 가득차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뒤덮여버립니다. 방금 전까지도 지저귀던 새들의 노래 소리는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사방이 어두침침해진 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다음 순간 번쩍 하고 번개가 내리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멋진 번개에 아이는 눈길을 빼앗깁니다.

폭풍우가 몰려와요

아이가 큰 소리로 물어봅니다.
“엄마, 저건 뭐예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번개란다. 우리가 켜는 등불처럼 빛을 뿌리지.”

번개는 꼭 숲속을 자유로이 달리는 하얀 늑대 같고,
아이가 부르면 달려오는 다정한 하얀 폭스테리어 강아지 같습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우르르릉 하고 요란한 천둥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렇게 몇 차례 번개와 천둥이 반복되며 아이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하늘이 갈라지기라도 할 듯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찬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휘몰아치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시골의 풍경들은 마냥 흔들거리고,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하려고 신문지를 머리에 쓰거나 우산을 꼭 붙든 채 발길을 재촉합니다. 바닷가에서는 늙은 어부가 파도 속에서 서둘러 작은 배를 정박시키려 애쓰고 있고, 작은 갈색 도요새가 잽싸게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번개 불빛 속에 언뜻 보입니다.

얼마 후 서서히 폭풍이 잦아듭니다. 하늘이 다시 밝아오고, 천둥소리는 멀어집니다. 구름들이 물러나며 요란하게 지붕을 두드리던 빗소리도 점점 약해지다 마침내 뚝 그칩니다. 밝은 빛이 대지 위로 퍼져나가고 새들이 다시 지저귑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는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위로 둥그렇게 펼쳐진 신기한 풍경을 마주합니다.

폭풍우가 몰려와요

“엄마, 저건 대체 뭐죠!”

“무지개란다.
폭풍우가 지나간 것을 알려 주는 거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한가로이 지내던 아이가 처음으로 경험한 폭풍우.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적막 속에서 찾아온 요란한 폭풍우가 사방을 뒤흔들고 난 후 다시 찾아온 평화로움에 아이는 익숙했던 풍경들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폭풍우 몰아치는 날의 변화무쌍한 자연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글과는 달리 그림은 아주 담담합니다. 우산을 꼭 붙든 채 귀가를 서두르는 도시의 풍경도, 거친 파도 속에서 비바람과 싸우는 늙은 어부의 모습도, 비바람이 유리창을 거칠고 세차게 두들겨대는 중에도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아기를 품에 안고 재우는 엄마의 모습도.

폭풍우가 지나가는 동안 모두가 이렇게 담담하게 버텨낼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곧 지나가리라는,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이 있다는, 다 지나간 후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를 거라는 희망이 담긴 믿음 말입니다.

제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지나가고 난 자리엔 무지개처럼 영롱한 새 희망이 솟아나듯 우리들 인생사 모질고 거친 질곡을 맞닥뜨린다 해도 버티고 견뎌내고 나면 함께 했던 이들과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고 말해주는 그림책 “폭풍이 몰려와요”입니다.


태풍이 찾아온 날

태풍이 찾아온 날

(원제 : When the Storm Comes)
린다 애쉬먼 | 그림 유태은 | 옮김 이지유 | 미디어창비
(발행 : 2020/08/25)

앞서 소개한 “폭풍이 몰려와요”가 난생 처음 천둥 번개와 폭풍우를 경험하게 된 아이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두려움을 떨치고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지금 소개하는 “태풍이 찾아온 날”은 태풍을 대비하고 버티고 견디어내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비교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건 숲 속의 동물들이건 이웃과 함께 힘을 모으고 서로를 보살피는 것만이 더 성장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임을 가르쳐줍니다.

태풍이 찾아온 날

거센 파도가 와르르, 부두에 철썩.
바다 위 부표가 마구 흔들리면 너희는 뭘 해?

태풍이 찾아온 날

우리는 태풍을 타고 날아.
우리는 작은 섬을 찾아.
그곳에서 조용히 기다려.

우리는 태풍을 피해 도망쳐.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태풍이 찾아온 날

멀리서 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이 회색으로 변하면,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번개와 천둥이 우르릉 거리면, 대문이 덜컹대고 비가 쏟아지고 하늘이 컴컴해지면…

우리는 촛불을 켜고 놀아.
동그랗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
우리는 비 오는 소리를 들어.

무시무시한 태풍이 몰아쳐 오면 너희는 뭘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 밖으로 담담하고 평화롭습니다. 촛불을 켜고 동그랗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논다고 말이죠.

태풍이 찾아온 날

해가 나오고 온 세상이 고요해졌어.
태풍이 물러가면 너희는 뭘 해?

태풍이 찾아온 날

우리는 이웃들이 잘 있나 살펴봐.
부서진 곳을 고치고 탁자와 의자를 꺼내 와.
우리는 다 같이 눈부신 햇살을 즐겨.
태풍이 사라져서 참 좋아.
근사한 날씨, 다시 모인 친구들,
모두모두 반가워.

거친 태풍에 맞서는 방법도, 태풍이 지나간 후 다시 찾아온 평화를 즐기는 방법도 모두 이웃과 함께하는 겁니다. 태풍처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무서움 앞에서 인간이건 동물이건 개별의 존재는 그저 작고 미약할 뿐입니다. 그 작디 작은 존재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보듬어 안는 연대만이 거친 자연과 질파닥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태풍 전의 고요함, 일렁이기 시작하는 자연의 풍경들,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서로를 감싸주는 인간과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들, 태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서 서로의 안녕을 챙기며 행복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정감 어린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책 “태풍이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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