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가온빛에 유쾌하지 않은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문제가 된 건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를 소개한 글이었는데요. 엄마 아빠 딸 아들이 각각 자신의 인권을 선언하는 내용인데 그 중에서 딸과 아들의 인권 선언 15조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불쾌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표현을 미쳤냐느니 더럽다느니 굳이 거칠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던 때가 있었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짐승처럼 대하며 노예로 부리던 나라들이 있었고, 동성애자는 법적으로 처벌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런 것들이 당연스레 여겨졌었겠지만 이제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그런 장면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어할만큼 세상이 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존중은 이해에서 나오고, 혐오는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오해는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달리 이해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을 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그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오해와 편견으로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 “히잡을 처음 쓰는 날”, “디스코 파티” 이 세 권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

(원제 : It Feels Good to be Yourself – A Book about Gender Identity)
테레사 손 | 그림 노아 그리그니 | 옮김 조고은 | 보물창고
(발행 : 2020/11/10)

열네 살 때 트랜스젠더임을 커밍아웃한 그림 작가 노아 그리그니는 이 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라는 말을 접할 기회가 없는 지방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 힘들었고 그저 보이지 않고 고립된 존재라고 느꼈다. 정확한 말을 알게 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아주 친절하게 다양한 젠더 정체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지정성별(sex assigned at birth), 간성(intersex),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 젠더 표현(gender expression), 시스젠더(cisgender), 트랜스젠더(transgender), 논바이너리(non-binery),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퀘스처너리(questionary), 퀴어(queer) 등과 같은 용어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작가가 말한 정확한 말을 알게 되면 얻을 수 있다는 큰 힘이란 바로 자신과 타인을 진실한 마음으로 더 넓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힘 아닐까요?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

자신의 성별에 대해서 당신이 느끼는 바는 진실합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당신의 젠더 정체성이 무엇이든,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아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언제나 사랑합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행복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나와 내 이웃이 서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림책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입니다.


히잡을 처음 쓰는 날

히잡을 처음 쓰는 날

(원제 : The Proudest Blue – A Story of Hijab and Family)
이브티하즈 무하마드, S. K. 알리 | 그림 하템 알리 | 옮김 신형건 | 보물창고
(발행 : 2020/11/10)

이 책은 미국이라는 기독교 기반의 사회에서 무슬림의 전통과 문화를 따르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미국 국가대표 사상 최초로 히잡을 쓴 채 올림픽에 출전해서 여자 펜싱 단체전 동메달을 딴 이브티하즈 무하마드와 이 책의 글을 쓴 S. K. 알리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합니다.

무슬림 여성은 열두 살 무렵부터 히잡을 쓰기 시작하나봅니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누구나 비슷한 시기에 히잡을 쓰고 살게 되니 아무 문제 될 것 없지만, 종교적 기반이 전혀 다른 사회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물며 한참 장난기 가득한 청소년기 아이들이 머리에 보자기 같은 걸 두르고 나타난 아이를 가만히 놔둘리 없죠.

어떤 사람들은 히잡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거래요.

혹시 다른 사람들이 마음 아픈 말을 하더라도 개의치 말라고 엄마는 말했어요.
우리 마음에 담아 둘 말이 아니래요.
그런 말들은 그 말을 한 사람들 몫일 뿐이래요.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고 있으면 타인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결국은 그 말을 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이제 막 히잡을 쓰기 시작한 딸아이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들려주는 엄마의 조언이 인상적입니다.

히잡을 처음 쓰는 날

무슬림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그저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만 여겼던 히잡이 그들의 자긍심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배우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나를 남들과 달리 보이게 만드는 부분이 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디스코 파티

디스코 파티

(원제 : Disco!)
프라우케 앙엘 | 그림 율리아 뒤르 | 옮김 김서정 | 봄볕
(발행 : 2020/10/12)

“디스코 파티”는 함께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삶의 정체성을 가진 그들의 부모들이 겪는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해 젠더 정체성이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뜨려주는 그림책입니다.

디스코 파티

빨강색과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 자유분방한 성격에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 여자는 축구 하는 거 아니라거나 남자가 분홍색 옷 입으려면 고추를 떼어 버려야 한다는 남자 어른, 그런 편견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선생님들. 이렇게 다양한 아이와 어른들이 한데 섞여 갈등을 겪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뒤 디스코 파티를 통해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냈습니다.

여자 색깔 남자 색깔 이런 게 있을까요? 그런 건 없죠. 내가 좋아하는 색깔만 있는 겁니다. 남자 옷 여자 옷 이런 게 따로 정해져 있나요? 아니죠. 누구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되요.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마음대로 고르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언제 어디서든 입고,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면 그 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고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자고 말하는 그림책,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도 안되고 내 잣대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된다고 말하는 그림책, 다름으로 인한 차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고 말하는 그림책 “디스코 파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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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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