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은 역설적이게도 공존의 시대입니다. 물리적으로는 방역을 위해 서로 거리를 두어야 하고 국경을 엄중히 관리해야 하지만, 재앙과도 같은 이 전염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나라에서 이 감염병이 종식되지 않는 한 그 어느 나라도 안심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눔과 연대의 의미가 새삼 소중합니다. 이 지구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두가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내가 여기에 있어”, 기발한 이야기와 독특한 그림으로 공존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서부 시대”, 이 두 권의 그림책으로 나눔과 연대, 그리고 공존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원제 : Le Grand Serpent)
글/그림 아드리앵 파를랑주 | 옮김 이세진 | 웅진주니어
(발행 : 2020/10/20)

※ 2020 볼로나 라가치상 수상작(픽션부문 스페셜 멘션)

기억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드리앵 파를랑주는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로 처음 만났었던 작가입니다. 작가는 반복되는 시각적 설정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는 것을 이번 그림책에서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소년과 뱀의 기묘한 만남을 통해 이 세상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나를 위로해 줄 누군가가 언제나 내 주변에 있음을,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전해진 누군가의 배려 덕분이었음을 보여주는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

이른 아침 누군가 자꾸 건드리는 것 같아서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난데 없이 뱀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는 게 보입니다. 아이는 꼬리의 주인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여기에 있어

마당으로 나와 담을 넘고 거리를 지나 숲을 가로 지르고 작은 강을 건너 아이는 걷고 또 걷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 긴 꼬리의 주인인 뱀을 만납니다. 오랜 시간 깊고 깊은 동굴 속에서 혼자서 살아온 뱀은 아이에게 이 세상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 자기는 늘 혼자여서 외로웠다면서 말이죠.

늘 혼자였다는 말에 아이는 “무슨 소리야. 네 주위에 얼마나 사람이 많은데.”라며 지금껏 뱀을 찾아 오던 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무관심한 도시의 거리에서, 너는 어떤 연인을 하나로 묶어 주었어. 가냘프고 여린 풀들을 행인들의 발길로부터 보호해 주었어. 누군가에게 비를 피할 우산이 되어 주었고, 지쳐 잠든 여행자의 머리를 받치는 베개가 되어 주었지. 둥지에서 떨어지는 알이 깨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아 주기도 했어. 너는 토끼들이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느릿느릿 달팽이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주었어. 작은 쥐를 성난 새 떼로부터 지켜 주었고, 그 성난 새 떼를 노리던 무시무시한 이리들을 막아 주었지. 마지막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여우 한 마리가 푹신한 네 몸에 기대어 자고 있어.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났었냐구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위의 그림들 하나 하나 잘 살펴 보세요. 그런 일들이 정말 일어났었는지. 사실 아이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빼먹었어요. 자기 자신이 뱀 덕분에 낯설고 기묘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

내가 여기에 있어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뱀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뱀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요. 그동안 혼자라고 느끼며 동굴 속에 갇혀 지냈던 뱀을 이 세상과 연결시켜 준 아이가 뱀에게 말합니다.

“널 다시 보게 되면,
네 몸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선 두개를 그려 줄게.
그건 우리 둘만의 신호야.
‘내가 여기에 있어.’라는 뜻으로 말이야.”

무심코 스쳐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작고 가냘픈 풀 한 포기에서부터 크고 무시무시한 맹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에 의해 이어진 채 얽히고설키며 살아가고 있음을 끝도 없이 길고 긴 뱀을 이용해 명료하게 보여주는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

세상을 가로 지를 듯 거대한 뱀은 여러분을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연결시켜주는 통로고, 이 그림책은 그 통로로 들어가기 위한 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 “내가 여기에 있어”는 세상과 연결된 그 문을 열어줄 암호입니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우리들만의 신호 “내가 여기에 있어”, 잊지 마세요!


서부 시대

서부 시대

(원제 : Farwest)
페터 엘리오트 | 그림 키티 크라우더 | 옮김 김영미 | 논장
(발행 : 2020/11/20)

책표지만 봐서는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활극이 한바탕 벌어질 것 같지만 책장을 넘겨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진 그림책 “서부 시대”. 뒤쪽 표지엔 작가이자 뮤지션이기도 한 글작가 페터 엘리오트가 직접 만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QR code도 있으니 기왕이면 노래를 틀어놓고 광활한 서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발한 이야기에 빠져 보시길 권합니다.

🎧 페어 엘리오트의 ‘FARWEST : Wonderful People’ 듣기

“서부 시대”의 이야기는 ‘사냥 나간 사람은 자리를 뺏긴다’는 프랑스 속담(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성경이 그 원조라고 하는군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라도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갈등, 그 해법으로 작가들이 제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지 함께 보시죠.

서부 시대

어릴 적 주말 밤마다 보다 졸다를 반복했던 무수한 서부영화들 속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나오던 낯익은 장면. 끝도 없이 광활한 초원, 그 위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는 들소 무리. 그 풍경 속에 등장한 처음 사냥에 나선 카우보이와 그를 따르는 사냥개 한 마리.

서부 시대

무사히 첫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카우보이 자리를 낯선 자가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를 당황시키는 건 지금껏 친구였던 녀석들 중에서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방금 전까지 그와 함께 사냥터를 달렸던 개마저…

(그나저나 산 정상에서 그윽하게 들소 떼를 바라보던 저 카우보이는 왜 달랑 토끼 한 마리만 들고 있는 걸까요? ^^)

“사냥하러 나간 사람은 자기 자리를 뺏기는 거야!
어쩔 수 없어.”

한 친구의 말에 이 어색한 상황은 간단히 정리되고 말았습니다. 그랬던 거구나. 카우보이는 처음 사냥을 나간 거라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원한다면 집에서 계속 지내도 되고 작은 의자에 앉아도 된다는…

서부 시대

낯선 자의 이름은 코코. 처음엔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 멋대로 카우보이의 옷을 입고, 그의 말을 말도 없이 타고 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카우보이의 여자 친구와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기까지…(다행히도 그날 저녁 여자 친구가 열이나고 아파서 그 약속이 취소되긴 했지만…).

그런데 지내면 지낼수록 코코는 꽤 괜찮은 친구였어요. 가끔씩은 카우보이가 청소 당번인 날 그 대신 청소를 해주기도 하고 이런 저런 재주가 많아서 아주 재미있는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에게 빼앗긴 카우보이의 원래 자리가 아쉽지 않을만큼 말이죠.

서부 시대

그리고 코코도 어느 날 사냥을 나갑니다. 코코는 카우보이보다 낫네요. 들소 한 마리를 잡아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코코도 ‘사냥 나간 사람은 자리를 뺏긴다’는 이 집의 단 하나의 규칙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카우보이는 테이블 한 켠의 작은 의자에 여전히 앉아 있었지만 원래 그의 자리였던 코코의 자리엔 새로운 친구 로자가 앉아 있습니다.

서부 시대

그렇게 끝이냐구요? 아니요. 이 책 한 권으로는 이야기를 끝맺을 수가 없습니다. 마틴이 로자 자리를 차지했고, 그 다음엔 패티가 마틴 자리를, 러셀이 패티 자리를, 제인이 러셀 자리를, 장고가 제인 자리를, 빅토르가 장고 자리를, 넬리가 빅토르 자리를… 원래 내 자리였던 그 자리의 주인은 끝없이 바뀌었으니까요. ^^

키티 크라우더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옆으로 활짝 펼쳐지는 길다란 그림 한 장에 담았습니다.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피부색도, 머리 모양도, 입고 있는 복식도 저마다 제각각인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활짝 웃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혹 어색하거나 당황한 듯한 표정들도 보이긴 하지만 제 생각엔 그들도 이내 웃음을 지엇을 것 같습니다.

자리를 비우면 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여러분은 어떻게 극복하시겠습니까?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사냥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독특한 스토리와 그림으로 작가들이 제안하는 것은 불안해 하지 말고 마음껏 사냥을 다녀와서 낯선 자를 진심으로 반기자는 겁니다. 밀어내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낯선 자들을 기꺼이 환영해줄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힘든 일이 아니겠죠.

서부 시대

잠깐 그림책의 앞부분으로 돌아가볼까요. 속표지에 아까 카우보이가 서 있던 산 정상에 카우보이가 아닌 자가 서 있습니다. 아마도 끝없이 주인이 바뀌던 그 자리의 제일 처음 주인이 아닐까요? 자, 지금부터가 이 익살스러워 보이는 그림들 속에 그림 작가 키티 크라우더가 숨겨둔 묵직한 이야기들이 시작됩니다.

속표지에 서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인디언이라고 추측이 가능합니다. 복식은 백인들의 것처럼 보이지만 모자에 달린 깃털 장식과 안장 없이 말에 올라탄 걸 보면 문제의 그 자리뿐만 아니라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틀림 없습니다.

백인들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환영을 구했을까요? 사이 좋게 함께 살자고 제안을 했었을까요? 천만에요. 백인들은 그 드넓은 땅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공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빼앗았죠. 그리고 그 땅에서 원래의 주인들과 공생하며 살아가던 들소들 역시 무차별하게 학살해서 결국엔 멸종 위기까지 내몰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새로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든다는 건 아이러니죠.

침략과 약탈의 역사에 대한 풍자로 나눔과 연대를 통한 공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 “서부 시대”, 우리들 마음의 상처를 감성적으로 어루만져주는 데 참 탁월한 작가라 여겼던 키티 크라우더가 사회적 문제를 예리하게 꿰뚫는 통찰력도 보통이 아님을 알게 해줘 더욱 반가운 그림책입니다.


참고로 그림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름들은 자유와 인류애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서 넣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 로자 파크스 : “일어나요 로자” 참고
  • 마틴 루서 킹 : “마틴 루터 킹” 참고
  • 패티 스미스 : 아름다운 펑크 음악을 부른 미국의 혁신적 가수이자 시인
  • 러셀 민스 : 아메리카 원주민 운동가이며 배우
  • 캘러미티 제인 :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 여장부
  • 장고 : 전설적인 흑인 보안관 배스 리브스를 모델로 한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속 인물
  • 넬리 블라이 : 선구적 저널리즘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뉴욕 블렉웰섬 정신 병원의 환경 폭로한 글과 72일간의 세계 일주 여행기를 씀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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