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21/01/20
■ 마지막 업데이트 : 2023/06/15


아파트, 빌라, 다세대주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공동주택들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층간소음. 관련된 뉴스들이 넘쳐나고 그 내용들을 보면 참담합니다. 윗층에 보복하기 위한 장치들을 인터넷에서 버젓이 팔고 있고, 앙갚음하기 위해 윗층의 윗층으로 이사하는 사람까지 생겨나는 기이한 상황. 하지만 그 기이함이 우리들에게 결코 기이하지 않고 평범하다는 우울한 현실.

모두가 똑같은 크기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사실 갈등이 생길 일도 없겠지만 층층이 사는 사람들마다 그 마음이 제각기 다르다 보니 늘 문제가 되는 거겠죠. 이 문제를 놓고 이해하면 된다, 조금 더 배려하자는 식의 말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빗자루로 천정을 두들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층간소음이란 게 막상 내 문제가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최선은 윗층 사람, 윗층의 소음이 아니라 이웃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소음공해를 겪고 그것이 분노를 생산해내기 전에 말이죠. 윗층이 시끌벅적한 건 그 집 할머니 생신 잔치 때문임을, 옆집이 쿵쿵 대는 건 피아노 전공하는 딸내미 마음 놓고 연습하라고 방음 공사중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면 조금은 더 이해하고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소설가 오정희의 콩트에 조원희 작가의 그림을 더한 “소음공해”, 펠트 인형과 미니어처로 만든 실사 그림책 “쿵쿵 아파트”, 이 문제를 다룬 두 권의 그림책이 층간소음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어루만져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윗층에서 나는 소음이 공해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삶의 소리임을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음공해

소음공해

오정희 | 그림 조원희 | 길벗어린이
(발행 : 2020/07/01)

“소음공해”는 1993년에 발표된 소설가 오정희의 동명의 콩트가 원작입니다. 극적 반전, 정곡 찌르기, 풍자와 비판 등 콩트의 교과서적 설명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거기에다 조원희 작가가 ‘나야말로 콩트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지!’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기가 막힐 정도로 이야기를 잘 살린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소음공해

성실한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에 흠잡을 데가 없고, 정기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자원 봉사 활동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엔 클래식을 즐길 정도로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 중년 여성.

그런데, 첼로의 선율에 젖은 채 고상함에 푹 빠져 있던 어느날 그녀의 자부심을 통째로 뒤흔드는 일이 일어납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소음이 음악 감상을 방해한 겁니다. 윗층에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와 뒤섞인 피아노와 첼로의 멜로디는 더 이상 음악이 아니라 공해였고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전축을 꺼버렸습니다.

소음공해

일주일을 참다가 나는 인터폰을 들었다. 인터폰으로 직접 위층을 부르거나 면대하지 않고 경비원을 통해 이쪽 의사를 전달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품위와 예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직은 품위와 예절을 지킬만큼 교양을 내던지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성. 하지만 본인만 모르고 있을뿐입니다. 윗층의 소음으로 인한 화풀이를 경비원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터폰을 집어든 순간 교양도 품격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소음공해

경비원에게 아무리 스트레스를 줘봐야 아무 소용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모든 입주자들에게 경비원은 그저 힘 없는 ‘을’일 뿐 문제를 해결할 권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니까요.

천장에서 쏟아내려지는 소음이 거실을 꽉 채우던 날 이후 경비원 호출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화를 풀 수 없게 되자 결국은 인터폰으로 윗층을 직접 불러내고야 맙니다. 수화기에 대고 한바탕 쏟아붓고 나자 수화기 건너편에서도 그에 질새라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여보세요. 난 날아다니는 나비나 파리가 아니에요. 내 집에서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나요? 해도 너무하시네요. 이틀거리로 전화를 해대시니 저도 피가 마르는 것 같아요. 절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소음공해

화가 날수록 침착하고 부드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은 나이가 가르친 지혜였다. 지난 겨울 선물로 받은, 아직 쓰지 않은 실내용 슬리퍼에 생각이 미친 것은 스스로도 신통했다. 선물도 무기가 되는 법, 발소리를 죽이는 푹신한 슬리퍼를 선물함으로써 소리를 죽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소리로 인해 고통 받는 내 심정을 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리라. 사려 깊고 양식 있는 이웃으로서 공동생활의 규범에 대해 조곤조곤 타이르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여성은 직접 윗층을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 와중에도 나이가 가르친 지혜에서 나온 신묘한 방책을 떠올린 자신을 신통해하며 교양과 삶의 품격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는 그녀. 과연 자신의 계획대로 푹신한 슬리퍼를 이웃의 면전에 던지며 공동생활의 규범에 대해 조곤조곤 타이를 수 있을까요?

소음공해

신경질적으로 벨을 눌러댄 후 한참만에 문이 열립니다. 지금껏 분노의 대상이었던 주인공이 열린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는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여자의 텅 빈, 허전한 하반신을 덮은 화사한 빛깔의 담요와 휠체어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며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슬리퍼 든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관심은 이해를 싹틔우고, 이해는 배려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새로 이사온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먼저 인사 나눌 수 있었다면 여성의 분노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인터폰으로 경비원을 호출하기 전에 이웃에게 먼저 눈을 돌렸다면 오늘 같은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테구요.

이웃이 반가움의 대상이 아니라 귀찮고 성가신 존재, 경우에 따라서는 공해 취급까지 하게 된 세태를 아프게 꼬집는 그림책 “소음공해”입니다.

※  내용 추가(2023/06/15)

2023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뉴스를 보다 그림책 “소음공해”의 원작자인 오정희 작가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가담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본 내용 추가합니다

오정희 작가는 2015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활동을 시작했고 2017년에는 위원장직무대행까지 역임했었으며, 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을 위한 위원회’ 조사에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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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아파트

쿵쿵 아파트

글/그림 전승배, 강인숙 | 창비
(발행 : 2020/05/29)

“쿵쿵 아파트”는 ‘토요일 다세대 주택’이라는 제목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원작입니다(애니메이션 보기). 포근한 느낌의 양모 펠트 인형과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소품들이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그림책입니다.

쿵쿵 아파트

쿵쿵 아파트 1층엔 가수가 꿈인 염소 청년이 살아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윙윙 대는 소리에 도저히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어디로 가려는 걸까요?

쿵쿵 아파트

쿵쿵 아파트는 5층입니다. 2층에는 새로 이사 온 기린 아저씨가 살아요. 요즘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입니다(윙윙거리는 소음의 범인은 바로 기린 아저씨였군요). 3층에서는 엄마 토끼가 조용조용 아기 토끼를 재우는 중이었는데 역시나 기린 아저씨가 내는 기계음에 잠이 깨서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4층 코알라 할아버지는 글을 쓰는 중인데 아랫층에서는 아기가 울어대고 윗층에서는 쉬지 않고 탁탁대는 소리가 들려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탁탁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5층 곰 아주머니. 요즘 훌라후프 돌리기에 푹 빠져 있는데 아직 능숙하지가 못하거든요.

그런데, 기린 아저씨가 작업중에 건드려선 안 되는 걸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벽을 뚫다가 걸린 전선을 무심코 자르다가 그만… 으아아악 하는 아저씨의 비명 소리와 함께 쿵쿵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 되고 맙니다.

쿵쿵 아파트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었어요.
탈탈탈탈 세탁기, 덜덜덜덜 선풍기,
웅성웅성 텔레비전, 드르륵드르륵 청소기,
칙칙 밥솥, 쿵쿵 러닝 머신,
모두모두 멈췄어요.

정전이 되어 아파트에서 나던 모든 소음이 잠잠해지자 방금 전까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 쿵쿵 아파트 입주자들은 소리를 따라 한 층 한 층 위로 올라갑니다. 노랫소리에 이끌려 모두가 도착한 곳은 아파트 옥상. 멋진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1층 염소 청년이었죠.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인사 나누는 게 처음인 경우도 있었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웃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혔던 소음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2층의 요란한 기계음은 기린 아저씨의 집을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 탓이었고, 코알라 할아버지를 괴롭혔던 탁탁 소리는 운동을 게을리하면 큰일 난다는 의사의 경고에 겁먹은 곰 아주머니의 걱정 때문이었네요.

쿵쿵 아파트

그렇게 이웃들간의 대화가 한창이던 때 염소 청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난간을 향해 달려갑니다. 나비를 쫓아 다니던 아기 토끼가 갑자기 난간 위로 올라갔지 뭐예요. 염소 청년을 따라서 다른 이웃들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기 토끼는 염소 청년이 간신히 잡았고 염소 청년은 기린 아저씨가, 기린 아저씨는 엄마 토끼가, 엄마 토끼는 코알라 할아버지가, 코알라 할아버지는 곰 아주머니가 붙잡고 다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쿵쿵 아파트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쿵…

다들 어떻게 됐을까요?

쿵쿵 아파트

쓰러진 쿵쿵 아파트는 이웃들끼리 옆으로 나란히 살아가는 곳으로 멋지게 변신했습니다. 쓰러지면서 상한 곳들을 구석구석 찾아 다니며 기린 아저씨가 말끔하게 수리를 했고, 이웃들 모두가 힘을 합쳐 새로 페인트 칠도 하고 멋지게 꾸몄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아파트의 새 이름도 지었어요.
<토요일 다세대 주택>
토요일 다세대 주택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어요.
언제나 토요일같이 즐거운 곳으로 만들 거예요.

현실에선 쿵쿵 아파트처럼 한 방에 층간소음을 해결할 수야 없겠지만, 이웃간에 서로 관심 갖고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이야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위험에 빠진 아기 토끼를 구하기 위해 이웃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는 과정을 겪으며 그동안 무심했던 이웃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게 되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 쿵쿵 아파트 입주민들에게서 이웃을 배려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그림책 “쿵쿵 아파트”, 새로 탄생한 ‘토요일 다세대 주택’을 통해 대안 공간이라는 새로운 발상과 슬기로운 공존 방식에 대한 메시지는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 내용 추가 : 2021/01/27

🎬 <토요일 다세대 주택> 무료 감상하기

“쿵쿵 아파트”의 원작 ‘토요일 다세대 주택’이 <인디그라운드 청소년 추천 독립영화 30편>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인디그라운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한 독립·예술영화 전문 플랫폼입니다. 1월 31일까지 가입하면 무료로 감상 가능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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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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