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땅이 혹시 지옥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나 가정 폭력 사건, 떠들썩하게 이슈가 될 때쯤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저렇게 되도록 주변 사람들은 왜 몰랐을까, 왜 좀 더 일찍 관심 갖지 못했을까 자책하게 됩니다. 아동 학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 폭력 사건은 부끄러운 가정사를 알리고 싶지 않다거나 혹은 개인 사생활 문제로 여기고 신고를 하지 않아서 일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렇기에 피해자의 용기와 행동이 필요한 일이며 이웃들의 관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으며 홀로 성장하는 아이 이야기를 그린 “달 밝은 밤”, 엄마의 동거인에게 당하는 가정 폭력 문제를 그린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그림책 두 권입니다.


달 밝은 밤

달 밝은 밤

글/그림 전미화 | 창비
(발행 : 2020/10/05)

텅 빈 하얀 여백 속 노란 달에 가만히 손 얹고 있는 아이, 신발도 양말도 없이 맨발로 선 아이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고 힘겨워 보입니다.

달 밝은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술기운으로 웃는 아빠, 아빠는 술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갑니다. 사라진 웃음, 한숨 소리, 싸우는 소리로 가득한 집안… 그럴 때마다 아이는 달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아이 따로, 따로따로 차려진 밥상이 쓸쓸합니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란 말이 무색합니다. 결국 엄마가 떠나버렸어요. 아빠는 술에 취해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 말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너무 멀리 있고 아빠는 의지할 수 없어요. 결국 아이는 결심합니다. 나 자신 외엔 무엇도 믿지 않기로.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하얀 여백으로 가득한 화면은 텅 빈 아이 마음처럼 보입니다. 술에 취해 웃는 아빠의 얼굴은 가면을 쓴 모습 같아요. 가족이 나오지만 가족들의 얼굴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뒷모습, 머리에 가려진 옆모습, 술병 가득한 집안, 각자 따로 놓인 밥상, 어둡고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의 상징적인 그림을 통해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지요. 작은 달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시간 속에 아이 마음도 단단하게 여물어 갑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 의지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믿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아이 얼굴을 커다랗게 보여줍니다. 굳게 다문 입에서 그 의지가 느껴집니다.

암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노란 달, 그건 바로 아이 자신입니다. 어둠 가득한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빛으로 가득한 자신을 믿으며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는 그 길 끝에서 행복을 꼭 찾기를. 온 마음 다해 아이를 응원합니다.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

(원제 : Le Grand Méchant Loup Dans Ma Maison)
발레리 퐁텐 | 나탈리 디옹 | 옮김 유아가다 | 두레아이들
(발행 : 2020/11/25)

늑대와 아이가 마주 앉은 식탁에 묘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섬뜩한 표정의 늑대, 잔뜩 겁먹은 아이, 식탁에 놓인 시든 장미 한 송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는 엄마의 동거인에 의한 가정 폭력을 그린 그림책이에요.

처음에 아주 다정한 고양이처럼 엄마에게 다가온 늑대. 늑대에게 안겨 가만히 눈 감고 있는 엄마는 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늑대의 차가운 눈빛과 날카로운 이빨을 보았어요. 아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늑대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우리 집에 늑대가 살아요

엄마가 늦게 들어오던 날 늑대는 본격적으로 본성을 드러냈어요. 엄마에게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말을 퍼부은 것을 시작으로 집안의 물건을 부수고 소리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아이는 몸에 생긴 멍 자국을 긴팔 옷으로 감추고 점점 안으로 숨어 들었어요. 아무도 모르게 벽돌로 만든 마음의 집 속으로.

가장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 가장 불편하고 위험한 장소가 되고 말았어요. 아이에게 늑대는 저항할 마음조차 가질 수 없는 끔찍한 두려움입니다. 두 눈을 뜨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함에 빠져들었을 때 엄마가 나섰어요.

“우리는 이제 여기를 떠날 거야. 얼른 네 곰 인형을 찾아오렴!”

두 사람이 늑대를 피해 찾아간 곳은 여자와 아이들만 사는 커다란 집입니다. 가정 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 같은 곳이겠지요.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잡아먹은 동화 속 커다란 늑대로 묘사된 엄마의 동거인, 폭력에 속수무책 당하는 아이는 집안 곳곳을 바라보며 동화의 구절을 생각합니다. 무서운 소리가 들릴 때 담요로 만든 피신처는 짚으로 만든 벽 같다고 생각하고 불쑥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늑대를 보며 나무로 만든 문은 늑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보호시설에서 잠드는 동안 아이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이 집은 허물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비로소 편안하게 잠이 듭니다.

엄마가 집에 늦게 돌아오던 날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늑대의 폭력성, 가정 폭력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기에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지요.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내가 잘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폭력은 감정을 헷갈리게 하고 판단력을 떨어뜨리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해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면 너무 늦을지도 몰라요.

엄마가 용기 내어 나서지 않았다면… 지옥은 아이 눈앞에서 계속되었을 거예요.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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