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거리면서 바쁘게 살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세 번째 울리는 알람을 간신히 끄면서 오늘 아침 제가 그랬습니다. ^^ 너무 바빠 주변뿐 아니라 잠시 나 자신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일상, 나만 시간이 부족한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더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나 혼자 생각하곤 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바쁘게 사는 이들을 위한 그림책”. 오늘 하루 시간에 쫓겨 달리느라 한숨 돌릴 시간조차 없었던 분들, 잠시 커피 한 잔 들고 찬찬히 그림책을 감상해 보세요. 나의 하루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나의 하루를 무엇으로 채우고 싶나요? 그림책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세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원제 : Vite Viet Vite!)
글/그림 클로틸드 페랭 | 옮김 나선희 | 책빛
(발행 : 2021/05/30)

가로로 긴 판형 속에서 한 아이가 빠르게 달리고 있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나와 서둘러 옷을 입고 대충 씻고 쏜살같이 집을 나와 바쁘게 뛴 이유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이들을 해변에 내려놓았고 이들은 다시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두릅니다. 달리고 달리고… 서두르고 서두르고 모두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어요. 무엇이 있는지 왜 달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어요.

빨리 빨리 빨리!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는데 아이는 비행기를 놓쳐버렸어요. 멍하니 멀리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는 알게 되었죠. 빨리 달리느라 보지 못한 것들, 알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껏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아이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느껴봅니다. 작은 배의 부드러운 흔들림, 잠자리의 날갯짓,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 길가에 핀 노란 민들레…

앞만 보고 달려갈 때 화면 아래쪽에서 길게 나오는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면서 다급하고 바쁜 느낌을 강조하고 있어요. 숨 쉴 여유조차 없음을 문장으로도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여유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의 글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뒤처지면 큰일 날 것 같아 조바심 내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는… 오히려 멈추고 나서야 진짜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독특한 구성으로 보여주는 그림책 “빨리 빨리 빨리”, 아이가 놓친 비행기 이름이 울트라 스트레스였어요. 거기 올라탔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요.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


루이의 특별한 하루

루이의 특별한 하루

(원제 : Hector Et Louis)
글/그림 세바스티앙 무랭 | 옮김 박정연 | 진선아이
(발행 : 2021/04/13)

루이의 특별한 하루

정해진 일과에 맞춰 정해진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던 루이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에 그만 지쳐버렸어요. 매일 같이 루이의 모든 일정을 챙기던 엑토르 아저씨는 그런 루이를 위해 특별한 하루를 준비합니다. 흙냄새나 꽃향기를 맡고, 나뭇잎 악기 연주하는 방법, 해로운 식물 구분하는 법, 대나무로 바람총 만드는 법, 숲에서 위장술까지 배우며 아저씨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덕분에 루이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행복한 상상을 하는 법,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지요.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으리으리한 대저택, 나를 위해 준비된 모든 것들? 그런 것이 루이의 아프고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는 없었어요. 짧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루이의 마음을 병을 고칠 수 있었지요. 내가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달팽이

달팽이

글/그림 김민우 | 웅진주니어
(발행 : 2021/06/11)

형들을 따라 달리고 싶었지만 페달 없는 자전거로는 두발자전거를 탄 형들을 따라갈 수 없었어요. 느릿느릿 따라가던 아이는 되돌아가라는 형들의 말에 그만 풀이 죽고 말았죠. 돌아오는 길 돌부리에 걸려 언덕에서 구르기까지 합니다.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하루를 원망하며 잔뜩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데… 아이 눈에 들어온 작은 달팽이.

달팽이

나무를 타고 천천히 오르는 달팽이를 따라 아이도 나무에 오릅니다. 나무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짜증으로 가득했던 오늘 하루 일을 모두 잊을 만큼 아름다웠어요.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생각했어요.

‘느리면 어때. 하늘 보며 가면 되지.’

누군가 비교되어 괜스레 마음 어수선한 날,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날, 가만히 하늘 한 번 올려다보아야겠어요. ‘느리면 어때. 하늘 보며 가면 되지’ 되새기면서…


키키의 산책

키키의 산책

(발행 : KiKi En Promenade)
글/그림 마리 미르겐 | 옮김 나선희 | 책빛
(발행 : 2021/05/30)

키키의 산책

쥘리앵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어요. 여기까지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산책하는 즬리앙의 자세를 살펴보세요. 산책하는 사람 치고는 여유가 좀 없어 보이지 않나요? 개에게도 산책에도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앞만 보고 걸어가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듯 보입니다.

이 자세를 유지하며 계속 앞만 보고 걷는 쥘리앵. 처음 ‘가자, 키키!’ 하고 말한 것 외에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산책길 풍경은 엄청나게 다채롭게 변합니다. 그리고 쥘리앵 뒤를 따르는 동물들도 계속해서 바뀌지요. 강아지 키키였다가 독수리로 호랑이로 박쥐로… 동굴도 지나고 바위산도 지나고 바다도 건너지만 쥘리앵은 오로지 앞만 보고 걷습니다. 키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주변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렇게 걷고 또 걸어 드디어 산책이 끝났어요. 그제서야 쥘리앙은 뒤를 한 번 돌아봅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동물들은 어쩌면 키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 좀 바라봐 줘, 제발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줘’ 하는. 도대체 이 산책은 누구를 위한 산책인 걸까요? 혹시 오늘 산책하러 나갔던 내 모습도 저랬던 건 아닐까요?


걷다 보면

걷다 보면

글/그림 이윤희 | 글로연
(발행 : 2021/02/25)

걷다 보면

동네 한 바퀴 찬찬히 걷다 보면 발견하는 다양한 것들의 풍경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어른들 눈에는 잘 보이는 않는 것들. 깨진 보도블록의 사슴 무늬를 보면서 정답게 안녕 인사하는 아이. 묘하게 금이 간 시멘트 벽에서는 생쥐와 여우를 발견합니다. 평범한 길 곳곳 숨어있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여유롭게 동네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

연필로 그린 흑백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매일같이 걷는 길을 떠올리며 찬찬히 읽기 좋은 그림책입니다. 어찌 보면 별것 없어 보이는 적막한 길에서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을 바라보는 세심한 눈, 다정한 마음,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걷다 보면 발견하는 나만의 세상, 그곳에 웃음과 행복, 평화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2 Comments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신은정
신은정
2021/08/23 13:43

ㅎㅎㅎ제가 먼저 읽고 제 자신을 돌아봐야겠네요~좋은 책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2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