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 ‘아!’. 그림책을 보면서 그런 경험해 본 적 있나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을 만나 웃고 울고 놀라고 감동받았던 그런 경험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그림책은 짧은 시간 감동을 안겨주고 단번에 깨달음을 얻게 하는 데 참 효과적인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편견과 고정관념,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돕는 그림책들 발상의 전환, 반전의 매력을 가진 그림책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익숙한 생각에서 벗어나 비틀어 보기, 낯설게 바라보는 방법을 통해 생각의 유연성, 사고의 폭을 넓혀 보세요. 이전과 다른 더 넓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 안에 무슨 일이?

집 안에 무슨 일이?

(원제 : Look through the window)
글/그림 카테리나 고렐리크 | 옮김 김여진 | 올리
(발행 : 2021/03/26)

그림책을 넘기기 전 먼저 표지를 보면서 생각해 보세요. 그림책 제목 그대로 지금 집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러고 나서 표지를 넘겨보면….

집 안에 무슨 일이?

어떤 가요? 내가 생각했던 상황과 비슷한가요?

이 그림책은 작은 창을 통해 집안의 일부를 보여준 다음 전체 집안 풍경을 보여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직접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창문으로 보이는 핏발 선 눈,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늑대, 뭔가 집안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또 하나의 반전은 빨간 모자를 읽는 중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표정이… ^^)

자상해 보이는 할머니의 집 안쪽을 들여다보면 손님들을 쥐와 바퀴벌레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물약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상해 보이는 할머니가 실은 마녀였어요. 집에 불이 난 줄 알고 놀라서 들여다보면 용이 아침 식사로 베이글을 굽고 있는 중이구요. 해골로 가득한 으스스한 집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보고 있는 중이지요.

안과 밖 전혀 다른 실상을 보여주는 반전 그림책 “집 안에 무슨 일이?”,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우리는 부분만 보고 전체를 다 알고 있다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작가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와 편견을 작은 창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글/그림 고미 타로 | 옮김 이종화비룡소
(발행 : 2000/12/22)

크리스마스이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주러 마을로 내려갑니다. 재미있는 건 산타 할아버지가 순록 대신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는 사실! ^^ 할아버지는 창문으로 슬쩍 들여다보고는 각각의 동물 친구들에 맞춰 선물을 나눠주시는데… 문제는 창문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았을 때와 집안의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창밖에서 보고 산타 할아버지는 이 집이 얼룩말의 집일 거라 생각해 얼룩 무늬 목도리를 선물로 두고 갔는데…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알고 보니 이 집에 살고 있는 건 목이 기다란 학 세 마리였다는 사실!

이렇게 산타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오해를 거듭하며 엉뚱한 선물을 두고 갑니다. 그 엉뚱한 선물 때문에 다음 날 아침 마을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마지막 결말이 너무나 유쾌하고 사랑스러우니 꼭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림책 “창문으로 넘어온 선물”,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함께 나누며 사랑하라는 크리스마스 정신까지 잘 녹여낸 그림책입니다.


저는 늑대입니다만

저는 늑대입니다만

(원제 : Imagine a wolf)
글/그림 럭키 플랫 | 옮김 김보람 | 불의여우
(발행 : 2021/06/28)

눈을 감고 가만히 늑대를 상상해 보세요. 늑대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할머니로 변장해 빨간 모자를 속이는 무시무시한 늑대? 아기 돼지 집을 훌훌 날려 버리는 힘센 늑대?

털실 가게 앞에서 늑대를 만난 돼지들은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면서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었어요. 그림책은 아기 돼지들이 두려워하는 늑대의 이빨을 아주 가까이에서 비춥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저는 늑대입니다만

내가 이 날카로운 이빨로 무얼 할 것 같아요?

저는 늑대입니다만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을 물레를 돌리느라 손발이 바쁠 때 털실을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한대요. 다시 보니 이빨이 드러나 있지만 이전과 달리 순둥순둥한 모습이에요.

하지만 세상의 고정관념을 피해가는 일이 쉽지 않아요. 다들 늑대의 번득이는 눈과 커다란 귀를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늑대의 이빨, 늑대의 눈, 늑대의 귀가 차례차례 클로즈업 됩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은 어김없이 깨져버리지요.

늑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상징하고 있어요. 이 그림책은 늑대의 이야기를 통해 겉모습, 혹은 직접 실체를 확인하지 않고 떠도는 소문만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좋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늑대를 통해 세상의 고정관념에 맞서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해와 편견에 상처받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늑대의 진실한 면을 결코 알 수 없었겠지요. 흐르는 눈물 속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늑대의 진정한 용기, 진실은 꼭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반전의 이야기 속에 치유와 포용, 용기를 그린 그림책 “저는 늑대입니다만”, 두 눈 크게 뜨고 귀 쫑긋 열고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판단해야 합니다. 허울뿐인 눈과 귀로 살아가지 말자고 용감한 늑대가 이야기하고 있어요.


문어 팬티

문어 팬티

(원제 : Octopants)
수지 시니어 | 그림 클레어 파월 | 옮김 한미숙 | 천개의바람
(발행 : 2021/04/09)

문어 팬티

주인공 문어에게는 부끄러운 비밀이 하나 있어요. 다들 흔하게 입고 있는 팬티가 자신에게는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 팬티를 구하러 바닷속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그때마다 문어는 비웃음을 당하고 말았어요. 다리를 여덟 개나 넣을 수 있는 팬티는 없다면서.

어느 날 문어는 없는 물건 빼고 다 있다는 큰바다 백화점을 찾아가 보았어요. 따개비들을 위한 방울 모자, 춤추는 뱀장어를 위한 턱시도와 드레스, 뾰족한 성게가 입을 수 있는 우주복까지 온갖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한 백화점에서 문어는 가게 주인인 해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어요.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를 위한 팬티가 있는지.

잠시 문어를 빤히 바라보던 해마가 이렇게 말했어요.

“오, 이런. 우리 백화점에는 문어 팬티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팬티가 필요 없어요.
당신의 다리는 다리가 아니니까요.
그건 여덟 개의 ○이에요!”

문어에게 달린 그것이 다리가 아닌 ‘○’이라 말한 해마, ‘○’이 무엇인지 예측해 보세요. 그날 문어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구멍 여덟 개짜리 팬티는 찾지 못했지만 그것을 대신할  멋진 선물을 받을 수 있었어요. 모든 건 해마의 발상의 전환 덕분이었습니다.

팬티를 찾아 헤매는 문어처럼 어쩌면 우리 역시 고정관념에 박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고정관념은 우리 시야를 좁게 만들어 뻔한 것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그림책 “문어 팬티”, 한바탕 웃고 다시 그림책을 펼쳐 찬찬히 살펴보세요. 실은 팬티를 입지 않은 바닷속 친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다들 좋아하는 것을 입고 쓰고 개성 있는 모습을 뽐내고 있지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지나치는 오징어도 찾아보세요. 문어처럼 다리가 많은 오징어는 고정관념을 어떻게 벗어나 살고 있는지.


반전 결말을 가진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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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ohn
2021/11/17 15:38

항상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풀어내는 가온빛 님의 이야기에 홀딱 반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꾼으로서의 이야기도 부럽습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1/11/18 22:43
답글 to  John

가온빛지기들이야말로 늘 칭찬과 격려 아끼지 않는 John님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

Kim
Kim
2021/12/04 22:26

오래 전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와 ‘신데 왕자’ 읽고 고정관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가온빛을 통해서 못 봤던 책들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전래나 명작을 읽히지 않고 있지만 어린이집이나 tv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일이 많다 보니 일부러 이런 종류의 책들을 찾아 읽히는데 예전에 비해 출판물이 많아진것 같아 반갑네요~^^

가온빛지기
Admin
2021/12/06 22:39
답글 to  Kim

Kim님 반갑습니다!
우리 그림책 초창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가온빛 처음 시작한 2014년과 비교하더라도 한 해동안 출간되는 신간 그림책의 양이 최소 너다섯 배는 늘어났습니다. Kim님 말씀처럼 반가운 일이죠. 가온빛에서 좋은 그림책들 많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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