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

존 버닝햄 (John Burningham)


존 버닝햄은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교육에 관해서 진보적 성향을 지닌 부모님의 영향으로 대안학교인 서머힐 스쿨에 다녔던 존 버닝햄은 학교를 졸업한 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등록해 2년 3개월동안 병역 대체 근무로 산림관리 위원회, 런던 신경 쇠약 환자 전용 국립병원에서 환자를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국제 평화 봉사단에서 일하면서 빈민가를 재건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낙후 된 곳에서 학교 짓기 등 사회 복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병역 대체 근무 기간 중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병역 대체 의무가 끝난 후, 런던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3년간 공부했고 이 때 같은 학교에 다녔던 헬린 옥슨버리를 만났습니다.

디자인 분야에서 국가 자격증을 받고 학교를 졸업한 존 버닝햄은 잡지나 포스터, 카드에 그림 그리는 일을 의뢰 받아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의뢰가 들어와 포스터 그리는 일을 했던 존 버닝햄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기로 하고, 1963년 첫 그림책으로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를 출간했는데 그는 처음 만든 이 그림책으로 1964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에 헬린 옥슨버리와 결혼도 했습니다. (존 버닝햄이 다녔던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원래는 무대 디자인을 전공했던 헬린 옥슨버리 역시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는 존 버닝햄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중 하나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존 버닝햄의 최신작 : 동물원 가는 길(2014)


Kate Greenaway Medal : 영국에서 초판을 발행한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터를 대상으로 1955년 시작된 상.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케이트 그린어웨이의 이름을 땄다고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 수상자에게는  독특한 부상이 주어지는데, 수상자가 원하는 도서관에 500파운드 상당의 도서를 기증해 준다고 하는군요.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한 영국인들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참고로, 2000년부터는 5,000파운드의 상금이 수여되는 Colin Mears Award도 함께 받는다고 합니다.(콜린 미어스는 회계사이자 아동도서 수집가라고 합니다)

이후 꾸준하게 직접 글과 그림을 담당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 했던 존 버닝햄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그림책 작가이며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찰스 키핑과 함께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는 작가입니다.

존 버닝햄 그림책의 특징

존 버닝햄의 그림책의 특징은 쉽고 반복적인 글과 자유롭게 그려진 그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메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스케치 한 듯 슥슥슥 그려진 그림 속에 등장인물들이 계속 반복적 사건을 되풀이하면서 이야기가 전개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또 그림책 속에 컬러와 흑백의 대비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구분해 표현하기도 하고 색채의 차이로 어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를 나누기도 합니다. 또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진 그림책이 많습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어린이는 작고 나약한 존재지만 환상의 나라에서 어린이들은 대단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요. 또한 그림책 속 어른들은 때론 친구 같은 다정한 사람, 때론 어린이의 다양한 상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존 버닝햄의 대표작 들여다 보기

간결한 글 속에 숨어있는 심오한 주제와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존 버닝햄, 그의 대표 작품들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원제: Borka)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엄혜숙, 비룡소

깃털 없이 태어난 기러기 보르카, 엄마는 그런 보르카를 위해 털옷을 짜주지만 보르카는 여전히 그런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데다 물에도 들어가지 못해 날기와 헤엄치기를 배우지 못합니다. 결국 모든 기러기들이 따뜻한 곳으로 날아 갈 때 보르카는 혼자 남게 되지요. 여기저기 머물 곳을 찾던 보르카는 배에 올라타 그곳에서 만난 친절한 개와 사람들 덕분에 긴 여행을 하게 되고 여행 끝에 런던에 있는 큐가든에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는 존 버닝햄의 첫 번째 그림책으로 1964년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어린이 책을 만들기로 생각한 존 버닝햄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잡지사와 어린이책 출판사를 찾았을 때 첫 반응은 ‘포스터에 가까운 그림이지 일러스트레이션은 아니다.’라는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존 버닝햄은 직접 모든 것을 해 보기로 하고 글과 그림을 써서 보르카 이야기를 완성해 출판까지 하게 됩니다. 보르카 이후 존 버닝햄은 ‘다른 이야기는 언제 받을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는 컬러 석판화로 그려진 작품인데, 트루블로프, 험버트의 아주 특별한 하루, 하퀸, 대포알 심프, 사계절 등 그의 초기 그림책들은 보르카처럼 색채가 강렬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르카의 경우에는 진한 색상 위주에 테두리는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보르카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배에 올라탄 이후의 장면에서는 단순하고 톤이 밝아지기는 하지만 후기 작품들에 비해서는 강렬한 색감을 보입니다.

보르카를 통해 존 버닝햄은 함께 사는 삶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 편견 등을 너무 교훈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리뷰 보기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원제 : Mr. Gumpy’s Outing)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이주령, 시공주니어

초기 작품인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이후 몇 편의 그림책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색채에서 탈피해 편안한 느낌으로 그려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는 존 버닝햄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림책 입니다. 검피 아저씨와 신나게 뱃놀이를 떠난 아이들과 동물들의  이야기를 흑백의 그림과 컬러그림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컬러그림과 글이 전개하고 있는 시간은 일치하지만 흑백 그림은 컬러 그림의 시간보다 앞서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존 버닝햄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에 이어 두번째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습니다.

존 버닝햄은 검피 아저씨가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는 캐리커쳐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피 아저씨와 존 버닝햄!!! 얼마나 닮았는지 한번 비교해 보세요.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리뷰 보기


장바구니

장바구니

(원제 : Shopping Basket)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김원석, 보림

엄마 심부름을 간 스티븐,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물들이 나타나 스티븐에게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동물들을 차례로 곤경에 빠뜨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만 엄마는 겨우 달걀 여섯 개, 바나나 다섯 개, 사과 네 개, 오렌지 세 개, 도넛 두 개, 과자 한 봉지를 사는데 왜이렇게 늦은거냐며 스티븐을 야단 칩니다.

“장바구니”는 글의 전개가 삽화를 끌고 나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글로 이야기를 던진 후,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그림을 통해 남은 이야기를 해주는 패턴을 반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비슷한 상황의 반복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존 버닝햄의 그림책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반복되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상황을 예측해보고 책장을 넘겨 자기가 예상한 것과 내용이 맞아 떨어지면 더없이 즐거워 합니다. 이 책을 읽을때는 엄마와 아이의 상상력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원제 : Granpa)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박상희, 비룡소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로만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하지만 그 대화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웃음을 줍니다. 그림책의 왼쪽 페이지는 할아버지나 손녀의 과거 추억이나 상상 등을 무채색으로 단순하게 그려냈고 오른쪽은 파스텔톤 컬러를 사용해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한 사건을 담고 있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계절의 흐름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존 버닝햄의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막내 딸 에밀리의 모습을 관찰해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글 역시 에밀리와 자신의 아버지가 나눈 대화를 엿듣고 썼다고 해요.

마지막 장, 초록색 빈 의자를 무채색으로 그려진 손녀가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슬픈 여운을 남겨 줍니다.

“우리 할아버지” 리뷰 보기


지각대장 존

지각대장 존

(원제 :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The Boy Who Always Late)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박상희, 비룡소

아침부터 서둘러 학교에 가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갈때마다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늘 지각을 하지요. 선생님께 지각 한 이유를 말하지만 선생님은 존의 이야기를 한번도 믿어주지 않고 존에게 점점 더 많은 양의 반성문을 쓰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아무 사고 없이 학교에 제 때 도착한 존은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잡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구해달라고 소리치는 선생님에게 존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하지요.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지각을 해서 선생님 앞에 서 있는 존의 모습과 선생님의 모습은 다분히 대조적입니다. 선생님의 모습은 존에 비해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고 배경 묘사 없이 검정과 회색 빛으로만 존과 선생님을 부각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존이 상상의 세계에 있는 장면이 화려하게 그려진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지요.또 혼날 때마다 존은 주눅 든 얼굴로 선생님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선생님은 존을 바라보지 않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릴라에 잡힌 선생님을 외면하자 선생님의 권위적인 지팡이가 천장에서 떨어지는장면도 눈여겨 보세요.

1987년 발표 된 “지각대장 존”의 원제는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 The Boy Who Always Late”로 굉장히 긴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란 이름은 존버닝햄이 재판소에서 피의자의 이름을 생략하지 않고 전부 부르는 관습을 보고 그림책에 적용해 보았다고 합니다.(아마도 재판장의 엄숙한 분위기를 교실로 끌고 들어 온 듯한 느낌이 들어요.)

또 면지가 굉장히 독특해서 눈여겨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원서에는 이런 반성문이 실려있습니다. 손글씨 반성문은 실제 존 버닝햄의 막내딸 에밀리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해요. 에밀리는 거짓말의 철자를 처음에는 ‘lies’로 바르게 썼지만 점점 지루해졌는지 나중에는 ‘lise’로 썼다고 합니다. 존 버닝햄은 그걸 고치지 않고 책에 그대로 실었다고 해요.

면지에 감춰진 그림책의 은밀한 이야기
(참고 : 면지에 감춰진 그림책의 은밀한 이야기)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는 서머힐 스쿨에 다녔던 존 버닝햄이 “지각대장 존”을 쓴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면서도 그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녀가 만난 존 버닝햄의 책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박상희, 비룡소

우리 아이에게도 그림책을 좀 골라줘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서점에 가서 이 책 저책을 찾다 처음 만난 책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였답니다. 두돌이 채 안된 아이는 기차와 동물에 관심을 가질 무렵이어서 그랬는지 자신이 고른 첫 그림책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정말 정말 좋아했었지요.

나중에는 고무줄을 묶어 기차 놀이를 하면서 집 안 곳곳에 동물 인형들을 놓고 아이와 기차 놀이를 하다 중간중간 동물인형들을 태우며(비닐을 들고 거기에 주워담는 식으로…^^) 노는 놀이도 했었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나서 딸아이가 자기가 어린 시절 기차랑 동물들 때문에 마냥 좋아했던 그 책이 실은 ‘환경’에 대한 심오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면서 어릴적 추억에 젖더군요. 그런 딸아이 모습 보면서 저 역시도 ‘우리 아이가 언제 이만큼 컸나…’하며 추억에 잠겨 봅니다 ^^


“우리 할아버지”를 읽었을 때 저는 마지막 페이지의  빈 의자를 보고 눈물이 찔끔 났었지만 할아버지를 좋아했던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이 막대 사탕 다 먹으면 또 사주실래요?”

라고 그림책의 대사를 흉내내곤 해서 모두들 즐거워했었어요.

“지각대장 존”을 읽을때는 존의 지각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환상세계 장면을 좋아했고, “장바구니”에서는 스티븐이 기발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골탕 먹일때마다 깔깔대며 좋아했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머나먼 롤리폴리 골짜기에 사는 하비 슬럼펜버거를 떠올리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는 잘몰랐던 것이 새롭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는데, 좋은 그림책이 주는 여운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그림들을 제멋대로 해석을 하고 즐겁게 웃었던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서도 그 그림책을 기억할 수 있고 다시 들여다 보면 그 때 몰랐던 것을 새삼 알 수 있게 된다는 점… 아니 꼭 새로운걸 깨닫지는 않더라도 유년 시절의 좋은 기억으로 그림책의 한장면이 아이의 기억 속에, 아이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존 버닝햄은 우리 모두에게 참 고마운 “Grandpa”(‘우리 할아버지’의 원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존 버닝햄의 최신작 : 동물원 가는 길(2014)


존 버닝햄의 그림책들

※ 참고도서 : 존 버닝햄 – 나의 그림책 이야기, 글/그림 존 버닝햄, 옮긴이 엄혜숙, 비룡소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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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최은희
2016/11/28 15:28

안동 송천초 그림책 연수때 뵈었습니다. 홈피 방문하니 더 따뜻함과 공들여 운영하시는 손때가 묻어나 보입니다. 잠시나 초등 학모가 되어서 즐겨있던 그림책 에서 지식 그림책으로 전환 하기에 급급했던 제 마음의 조급함을 그날 한발 내려놓았습니다. 만화만 요즘 즐겨봐서 고민였는데, 제가 고른, 그리고 아이가 고른 그림책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 보고, 아이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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