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일 : 2014/08/03
■ 업데이트 : 2014/12/03

일러스트레이터 김동성

그림책을 펼치고 글을 읽기 전에 우선 그림부터 한 장씩 넘기며 끝까지 봅니다. 그림 덕분에 촉촉해진 마음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글을 찬찬히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그림책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림을 들여다 봅니다. 아 여기선 이런 이야기의 맛을 살리려고 이렇게 그렸구나, 이 부분은 이런 분위기를 살리려고 이런 구성으로 그림을 배치했구나… 이렇게 다시 한번 더 그림의 맛을 느껴 봅니다.

바로 김동성 작가가 그린 그림책을 보는 방법입니다. 물론 다른 그림책이라고 해서 보는 방법이 이와 다르지는 않겠습니다만 그의 그림책은 누가 이렇게 하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이렇게 보게 됩니다. 그림을 들여다 보는 순간 글로 눈이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빠져 끝까지 그림을 먼저 보고 나면 대충의 이야기와 그 느낌이 어느새 가슴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져 글을 찬찬히 읽게 됩니다. 글을 읽어 가다 보면 이야기가 녹아든 그림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림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김동성 작가가 내 놓은 그림책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시나 동화, 소설 등을 자신의 그림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식상할 수도 있을텐데 그의 그림책은 새롭고 신선합니다. 이 것을 가능케 하는 첫번째 힘은 자신이 그려 낼 이야기를 골라내는 탁월한 심미안이고, 두번째 힘은 그의 치밀한 기획력과 탄탄한 연출력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고른 후 치밀한 기획과 연출을 바탕으로 그려낸 그림은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주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책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글로만 읽었을 때보다 더 크고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줍니다.


영화를 보는 듯한 치밀한 기획과 탄탄한 연출

김동성 작가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치밀한 기획력이 돋보인다는 점입니다. 마치 잘 연출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엄마 마중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 마중“(2004)의 한 장면입니다. 한 장면에 주인공 꼬마가 두번 그려져 있습니다. 전차정류장으로 걸어 오는 모습과 정류장 위로 올라서는 모습을 동시에 한 장면 안에서 보여 줌으로써 마치 움직이는 영상을 보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엄마 마중

전차정류장 주변 풍경 속에 아주 작은 점처럼 묘사된 아이가 점점 클로즈업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 가득 들어 온 아이의 모습, 코끝이 벌개진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안스러운 모습입니다. 글 한 줄 없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

위 두 장의 그림은 “나이팅게일“(2005)의 첫 장면입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나이팅게일이 살고 있는 숲의 그림으로 시작해서 다음 장으로 넘기면 황제가 살고 있는 궁궐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기면 그림책 제목이 나오면서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치 영화의 인트로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들꽃 아이

들꽃 아이

들꽃 아이

들꽃 아이

들꽃 아이“(2008)에서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보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선생님의 여정을 카메라가 쫓아 가는 듯한 느낌으로 살려 내고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선 길, 그런데 잠시 후 자전거로는 갈 수 없는 산길이 시작됩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숲 속으로 들어서는 선생님의 모습은 곧이어 깊은 숲속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이내 날은 저물고 어두워진 숲속에서는 선생님의 옆모습을 따라 잡으며 그림이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멀리 보선이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엔 숲을 무사히 통과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카메라는 다시 선생님의 뒷쪽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몽환적 이미지를 통한 김동성식 판타지

김동성 작가의 그림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몽환적인 느낌의 그림을 통해 그림책 속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의 느낌을 살리거나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는 점입니다.

엄마 마중

엄마 마중

엄마 마중

“엄마 마중”에서는 전차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지루함과 엄마를 곧 만날 생각에 들뜬 심정을 위 세장의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왼쪽엔 지루하고 힘들고 배고픈 아이의 상태를 모노톤의 단조로운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죠. 이와는 대조적으로 저 멀리서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전차의 모습은 풍부한 색감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저 전차에 엄마가 타고 있겠지?’하는 아이의 들뜬 기대 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1998)은 그림책은 아니지만 김동성 작가가 어린이책을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군대에 간 삼촌은 휴가를 나와서 선미를 자전거에 태우고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동네로 향합니다. 어릴 적 뛰놀던 개울과 버드나무는 간 데 없고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과 도로들… ‘삼촌 어렸을 때는 저기 흐르는 개울에서 송사리도 잡고, 저쪽 커다란 버드나무에 매달려서 타잔 놀이도 하고…’ 하며 뒤에 태운 조카 선미에게 옛 추억이 어린 이야기들을 해 줍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미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며, 재잘거리며 멱감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삼촌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뜨자 도로 주변으로 촘촘이 들어섰던 건물들은 사라지고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스팔트길은 어느새 흙길로 변해 있고 자전거가 지나는 뒤로는 흙먼지가 피어 오릅니다.

삼촌의 등에 매달린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삼촌의 이야기에 빠져든 선미의 상상일까요? 아니면 삼촌과 선미를 태운 자전거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의 경계선을 넘어섰던걸까요? 저녁 노을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던 옛풍경을 잃은 채 살아가는 도시의 스모그 속을 달리는 것 같기도 한 몽환적인 그림(위 그림 중 가운데)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의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영웅 주몽

해의 신 해모수의 아들이요, 강의 신 하백의 외손자인 주몽이 하늘을 향해 외치는 순간입니다. 바로 “고구려를 세운 영웅, 주몽“(2009)의 한 장면입니다. 주몽의 뒤에서 펼쳐지는 서광은 그가 역사 속의 인물을 초월해서 신화적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눈앞에 펼쳐질 판타지는 전혀 허황된 일이 아님을 보여 주려는 듯 말이죠.

고구려를 세운 영웅 주몽

어디선가 몰려 든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고 주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무사히 강을 건넙니다. 물고기떼들이 만들어낸 다리는 강건너가 아닌 구름을 너머 하늘 위로 이어져 있는 듯 합니다.

고구려를 세운 영웅 주몽

무사히 강을 건넌 주몽의 눈 앞에 자신이 나라를 세울 땅이 펼쳐집니다. 산의 정상은 하늘에서 내려 온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주몽이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존재임을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시와 소설의 감성을 극대화 시켜 주는 서정미

김동성 작가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추억, 저마다의 감상에 빠져들게 하는 서정미가 진하게 흐릅니다. 때로는 아련한 추억으로, 때로는 그림책 속 인물들과의 교감을 통한 애잔한 감상으로 다가서는 그의 서정적인 그림들은 그가 골라낸 시와 소설들이 애초에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감성을 극대화 시켜 주고 있습니다.

엄마 마중

“엄마 마중”의 엔딩입니다.

하늘 가득 내리는 눈이 달동네의 지붕들마저 온통 뒤덮어 눈천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마중 갔던 아이는 드디어 엄마를 만났습니다. 내리는 눈 속에 엄마 손을 꼬옥 붙잡고 하루 종일 기다렸던 엄마 얼굴 올려다 보며 걸어가는 아이의 다른 한쪽 손엔 무언가 쥐어져 있습니다. 달디 단 사탕일까요? 아니면 내일도 또 하루종일 혼자 집지킬 아이를 위해 사준 장난감일까요?

이 마지막 장면은 원작자인 이태준의 글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글의 맛을 한층 더해 주면서 깊은 여운을 남겨 주는 장면입니다.

메아리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을 향해 뭐라뭐라 소리를 질러댑니다.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질 듯 합니다. “메아리“(2001)의 한 장면입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읽었던 바로 그 메아리(이주홍)입니다. 아동문학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원작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 않았을텐데 김동성 작가는 원작이 주는 서정미를 한층 더 살려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원작이 아닌 그림책 “메아리”에 대한 부담으로 그림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이가 선뜻 나서기 힘들 정도로 말이죠.

들꽃 아이

“들꽃 아이”의 선생님이 드디어 보선이가 사는 산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밤 열시가 넘은 늦은 시간,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기만 한 산골 마을 사람들은 별빛 아래에서 선생님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손님과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술상이 별빛 아래 차려지고 좁다란 평상에서 피어난 웃음 소리들이 숲 속 가득 퍼져 나갑니다.

들꽃 아이

군 입대를 앞두고 이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선생님이 창밖으로 하염 없이 내리고 있는 눈을 멍하니 내다 보고 있습니다. 그의 뒷모습뿐이지만 그의 시선은 눈덮인 산을 넘고 넘어 보선이가 사는 산골 마을에 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때문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보선이, 늘 자신의 책상에 들꽃을 꽂아 주던 들꽃 아이 보선이에게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한 선생님의 뒷모습입니다. “메아리”와 “엄마 마중”을 통해 다져진 김동성 작가의 서정미는 “들꽃 아이”에서 완성되는 듯 합니다.


김동성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그는 동양화나 그림책 어느 한 분야에 자신의 영역을 고정시켜 두고 있지 않는 듯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활동들을 보면 그는 그림이 필요한 곳에서 그림으로 그 무언가의 가치를 더 높여 주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을 좇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참고로 2011년 2월 이후 업데이트가 안되는 듯 하긴 하지만 블로그 ‘Illustrator Kim‘에서 그의 다양한 활동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수묵채색화를 바탕으로 한 그의 한국적 화풍의 그림책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우리 문학의 서정과 우리 이웃들의 삶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점, 미디어 범람 속에서 잊혀져 가는 우리 문학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좋은 글들이 다시 읽히게 한다는 점에서 김동성 작가의 작품활동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동성 작가의 작품 연보

그림책

기타


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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